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생인 조카가 얼마전 평생 기억에 남을 호된 경험을 했다. 같은 반 꼬마 다섯명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막내 동생 부부는 금쪽같은 외아들이 밤새 고열과 잠꼬대로 시달리는 모습을 보며 충격과 분노로 며칠 밤잠을 설쳤다.
사건 전말은 이러했다. 같은 반에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여자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급우들을 자기 하인으로 거느리며 여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겁이 나서, 혹은 “(그 아이) 하인이 되면 다른 아이들이 건드리지 않아 좋다”며 자청해서 하인이 되었는데 고집불통 조카는 “죽어도 하인이 되기는 싫다”며 버티다가 몰매를 맞았다.
동생 부부가 담임교사를 찾아가 항의를 하면서 학교는 발칵 뒤집히고, 관련 아동들의 엄마들이 백배 사죄를 하면서 사태는 진정이 되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벌써 이런 폭력 사태가 벌어진다는 사실에 우리 가족 모두는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아이들 세계가 왜 이렇게 무법천지일까.
무법천지의 극치를 보인 사건이 지난주 한국에서 터졌다. 밀양 지역 남자 고교생 41명이 여학생 5명을 1년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집단 성 폭행한 사건이었다. 피해자 중 중학생 자매의 가족이 울산 경찰서에 신고, 비공개 수사를 하다가 청소년들이 무더기로 연행되면서 사건이 외부로 드러났다.
중학생이라면 만으로 열 두서너 살 - 그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여러 명이 한꺼번에 돌아가며 성폭행을 했다니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리는 일이다. 10대의 주체 못할 충동성과 공격성으로 생긴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겁에 질린 여학생들을 보복 공포로 옭아매면서, 주기적으로, 수십 명이 가담한 사건이다. 아이들이 어쩌다 이런 짐승, 이런 괴물로 자랐을까.
도덕이란 무엇일까. 인간 사회가 영속되기 위해 필요한 장치라고 본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 아니라면, 허허 벌판에서 혼자 사는 존재라면 아마도 도덕은 필요 없을 것이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적정한 선을 그음으로써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때 궁극적으로 집단이 살아남는다는 깨달음이 도덕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부시맨 부족을 보면 짐작이 된다. 사막에서 짐승들을 사냥해 살아가는 부시맨들은 기본적으로 공격적이다. 공격성 없이 사냥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족끼리는 아주 평화롭게 지내는 데 비결은 도덕성 교육이라고 한다. 남과 사이좋게 지내는 행동 규칙을 어려서부터 가르친다.
남을 괴롭히는 행위, 그로 인한 싸움은 부족 최대의 범죄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공동체가 둘로 갈라져 싸움을 하면 오래 전에 멸종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여주는 행동규칙을 따라 익힘으로써 종족을 이어간다. 도덕 교육의 실질적 힘이다.
이번 밀양 성폭행 사건을 두고 한국에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성교육 부재, 남성 중심의 성문화, 인터넷 포르노 등 환락 문화 … 모두 지적되어 마땅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어른’없는 사회에서 옳고 그름을 따끔하게 배우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본다.
10여 년 전 미국에서도 비슷한 충격과 지적이 있었다. 글렌 리지 10대 성폭행 사건이다. 글렌 리지는 뉴저지의 부유층 백인 거주지역으로 1989년 봄 그곳에서 고교 폿볼 선수 3명이 정신 박약 여학생을 성 폭행해 미국이 발칵 뒤집혔었다.
가해자 3명중 2명은 쌍둥이형제인데 이들이 정신연령이 8살밖에 되지 않는 동년배 소녀를 집 지하실로 데려가 변태적으로 성폭행을 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자리에 10여명이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이웃 소녀를 무참하게 짓밟는 현장을 10여명이 같이 동조하며 지켜봤다는 말이다.
재판 중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들 쌍둥이 형제는 유치원 때부터 남을 괴롭히고 교사들에게 못되게 굴어 악명이 높았지만 한번도 처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자녀 교육의 현장에서 왜 ‘어른’이 사라졌을까. 부부 맞벌이, 결손가정 등으로 인한 물리적 부재도 있고, 입시 경쟁이 너무 치열해 인성교육이 뒤로 밀린 탓도 있으며, 아이들 기 살리기에 치중한 교육문화 탓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자식은 먼저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순서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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