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불명 용어…’귀족’은 근대국민국가 일본의 발상
총제작비 100억원을 들여 최근 방영에 들어간 KBS 2TV HD특별기획 50부작 수-목 드라마 `해신’(연출 강일수)은 동명의 최인호 씨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신라인 장보고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660년 백제에 이어, 668년은 고구려를 멸하고, 이윽고 한반도 직접지배를 노리던 당군(唐軍)까지 격멸함으로써 일통삼한(一統三韓)을 달성한 신라라는 왕국이 해체 일로를 걷던 시기가 시대적 배경이 되고 있다.
난세는 영웅을 낳는다. 종래 요지부동할 것은 같은 중앙권력이 와해되면서 왕권에 숨죽이며 지내던 세력들이 곳곳에서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사학계에서는 장보고를 필두로 하고, 곧이어 등장한 궁예와 견훤, 왕건의 트로이카가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나말여초(羅末麗初)를 흔히 호족(豪族) 혹은 귀족(貴族)의 연립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이들 소위 호족이나 귀족 그룹 외에도, 종래 왕권이 확고하게 서 있던 시기 같으면 감히 역사의 현장에 명함을 들이밀기 힘들었던 장보고라든가, 양길과 같은 도적 혹은 해적 출신도 역사의 주역으로 떠오른 역동의 시대가 나말여초였다.
한데 이 드라마에는 종래 역사학계가 유력 기득권층을 가리킬 때 즐겨 쓰는 `귀족’이라든가 `호족’이라는 말이 남발되고 있다. 장보고를 포함한 신라인들 스스로 권력과 상권을 틀어쥔 종래 유력 집권층을 `귀족’이나 `호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귀족’이나 `호족’은 이 시대에 존재해 본 적도 없는 허상이다. 제 아무리 각종 자료를 뒤져도 이런 용어는 좀체 보이지 않는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질까? 말할 것도 없이 이 시대에 그런 용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용어가 역사책은 물론이고 드라마에도 침투해 남발되는 까닭은 종래 역사학자들이 별다른 고민없이 이런 용어를 어거지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첫째, 설혹 이런 용어가 없었다고 해도 종래 역사학계가 귀족이나 호족이라고 규정한 유력 지배계층은 분명 존재했으며, 둘째, 각종 기록에는 귀족 혹은 호족에 해당하는 용어가 분명히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귀족 혹은 호족에 해당하는 용어는 무엇인가? 신라말이 그러했던 것처럼 후한(後漢) 제국이 와해일로를 걷던 시대를 몸소 겪은 왕부(王符. 서기 85-162?)라는 사람이 쓴 현실정치개혁이론서인 잠부론(潛夫論)이란 문헌이 있다.
지난해 건국대 중문학과 임동석 교수가 완역본을 내기도 한 이 잠부론에는 민(民)은 팽개치고 부패와 사치에 골몰하면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부류를 맹비판하면서 그런 부류들로서 왕후(王候)와 총신(寵臣)과 귀척(貴戚)과 주군(州郡)의 세가(世家)와 갑문(甲門)과 봉군(封君)과 호부(豪富)를 대서특필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용어들은 사실 이후 중국사는 물론이고 한국사에도 침투해 거의 그대로 정착해 쓰였다. 이들 다양한 용어 중에서도 굳이 귀족(貴族)과 호족(豪族)에대응되는 적당한 말을 고르窄?단연 귀척(貴戚)과 호부(豪富)가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삼국사기 김대문(金大問) 열전에는 그를 가리켜 귀문자제(貴門子弟)라고 표현하고 있다. 소위 권문세도가라는 의미로 귀문(貴門)을 쓰고 있음을 본다.
이런 용어들이 얼마든지 존재함에도, 역사학계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그 족보를 좀처럼 찾기 힘든 출처 불명의 귀족(貴族)이나 호족(豪族)이라는 일본에서 수입된 용어를 고집하고 있다.
사실 귀족이라는 용어만 해도 그것은 철저한 근대국민국가 일본의 발상이다. 서구식 발전모델을 채택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정부는 서구식 귀족제도를 본떠 귀족이라는 신분을 창설하고 귀족원까지 창설하게 되는 바, 이런 근대 혁명기 국민국가일본이 서구 문물을 도입하면서 만들어낸 귀족이라는 용어가 어찌된 셈인지, 천 수백년을 거슬러 올라가 한반도 고대사에 침투하는 희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대목은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국가 일본의 국가체제가 만들어낸 `귀족회의’라는 개념이 신라사회에 침투해 소위 `화백’(和白)이라고 하는 신라의 군신(君臣)간 회의도 `귀족회의’라고 규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한국고대사학계가 왕권을 견제하면서 소위 귀족들의 이해를 대변한 집합체이자 그 통로라고 주장하고 있는 화백은 실상은 신라의 화백과는 하등 상관이 없으며, 1888년 국회 개설과 동시에 출범한 일본 귀족원, 이토 히로부미가 그 의장을 맡은 근대국민국가 일본 귀족원의 모습이 짙게 투영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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