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결혼식을 보러 오셨던 누님과 매형을 덜레스 공항으로 배웅하고 돌아온 10월 중순 화요일 오후였다. DC에 있는 기차 정거장의 안내센터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나의 이름을 확인하더니 사람을 바꾸어 주었다. H대 법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H씨였다. 그는 필자가 작년에 K대 언론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있을 때 미국법을 안 잊어버리기 위해서라도 H대 법대에서 미국 헌법 강의를 자청해서 하고 있었던 때 만난 학생이었다. 워싱턴에 올 길이 있으면 들리라고 한 것을 기억하고서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워싱턴 부근에 친구나 동창생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없다니까 며칠이지만 우리 집에 묵으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H씨는 말이 대학원생이지 사실은 법과대학 교수들도 하기 어려운 일을 미리 해낸 사람이었다. 석사과정 끝날 때 하버드 법대의 어느 유명 교수의 책 하나를 번역해서 출판했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도 법학도답게 혼자서 하는 관광도 연방대법원부터 시작한 사람이다. 그런데 H씨가 인상에 남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그 하나는 그가 석사과정 시절 미 헌법에 대한 강의를 이미 들은 바 있어 내 강좌를 들었댔자 학점도 안 나오는 청강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이 준비하고 가장 많이 발표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서울을 떠나던 날 그가 전화를 걸어 부탁한 일 때문이었다. H씨를 제외하고는 학생이 네 명뿐이었던 바 그 중 하나에게는 B 학점을 주었는데 H씨의 어려운 요청은 C씨의 학점도 A로 해 달라는 것이었다. 송구스럽다면서 하는 이야기인즉 한국 대학원 학생들에게 B학점은 낙제나 마찬가지이며 사실은 적어도 학생이 네 명이어야 강좌가 취소 안되기 때문에 자기가 나의 강의를 들을 욕심으로 C씨를 억지로 등록시켰기에 책임 같은 것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떨떠름한 기분이지만 남의 장래를 망칠 일을 왜 할까 싶어 C씨의 학점을 고쳐주고 떠났다. 집에 온 지 며칠 안되어서 K대 언론대학원에서 나의 미국 언론역사 강의를 수강한 일곱 학생 중에서 가장 공부를 못했기에 좀 봐줘서 B 마이너스를 준 여학생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낙제점수라면서 징징 우는 소리였기에 인정상 A 마이너스로 올려줄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한국 대학원 교육, 아니 한국 교육의 현주소라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또 나 자신도 원칙을 타협하지 않았는가 라는 자괴심이 들었다.
한국 대학원 출신들이 전부 A이기 때문에 미국 대학원들이 한국 점수를 안 믿어 준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간다. 점수의 뻥튀기와 또는 대학진학에 있어 수능시험과 병행되는 내신의 과장 때문에 학생들 참 실력을 변별하기가 어렵다는 게 이해가 되는 것 같다. 같은 고등학교 성적이 ‘수’인 학생들이 몇 백명일 때 대학 입학 당국자들의 변별력이 도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 교육의 문제는 그밖에도 허다하다. 현 총리 이해찬 씨도 교육부장관 시절 일조했다는 학교 (하향)평준화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조령모개 식으로 자주 바뀌는 교육정책도 문제다. 최근 수능시험에는 일부 학생들이 휴대폰을 통해 집단 부정을 저지른 사건이 발생하여 한가지만 잘 해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고 말한 이해찬 씨를 꼬집는 신문 만화에서 “문자 메시지만 잘 보내도” 그럴 수 있다고 풍자되었다.
이해찬 씨는 조선과 동아일보를 민족의 반역자라고 취중발언을 한 다음부터 그가 두 신문으로부터 무척이나 얻어맞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씨가 서울 정무 부시장 시절 자기 형의 부동산 등기가 어느 구청직원의 실수로 누락되었을 때 그 직원과 담당 국장을 부시장실로 불러놓고 반말지꺼리로 힐문하는 데 더해 무릎까지 꿇고 빌던 그 직원에게 손찌검까지 했다는 게 목격 증인들의 입을 빌려 월간조선에 보도되었던 게 한 가지 예다.
중고교 평준화 이후 그 방향이 하향성이라는 점, 일단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 경향, 학교 성적 및 내신의 과장성 내지 허위성, 대학입학을 둘러싼 부정의 연결고리, 교원노조의 친북 반미 교과과정, 노무현 정부의 소위 4대 개혁 중 하나라는 사립학교법으로 대학을 포함하는 사립학교들의 자율권을 빼앗으려는 시도 등 정말 한국 교육계는 한심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H씨처럼 그런 환경에서도 꾸준한 면학파도 있어 어떤 환경에서도 개인적인 예외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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