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담토크] ‘겨울연가’ 연출자 윤석호
거짓말 좀 보태면,그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뚜렷한 4계절’ 덕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가 있었을까. 드라마 ‘겨울연가’의 연출자 윤석호 PD(47).
2000년 ‘가을동화’와 2002년 ‘겨울연가’,그리고 지난해 ‘여름향기’까지 계절 드라마 시리즈를 잇따라 히트시킨 그는 완결판 격인 ‘봄의 왈츠’ 준비를 앞두고 있다. 2004년 겨울의 일본 열도는 ‘겨울연가’로 인해 델 것처럼 들끓고 있는데,정작 그 드라마를 빚어낸 그는 조용히 ‘마지막 계절’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 가을향기
그의 사무실 한켠에는 ‘감독님,수상을 축하드립니다!’라는 메모가 적힌 예쁜 화분이 놓여 있었다. ‘겨울연가’의 여주인공 최지우가 보내온 선물이다. 그는 30일 일본 키네마준보상의 한·일 우호 공로상을 수상했다. 얼마 전에는 교도통신이 그의 작품을 조명하는 무크지 ‘윤석호의 세계’를 출간하기도 했다.
‘욘사마’ 배용준 못지않게 일본 내 ‘윤사마’ 인기도 만만찮은 모양이다. “지난달 일본에 갔다왔는데 어떻게들 알아보시고 사인도 부탁하고 사진도 찍자 하셔요.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싶을 정도로 드라마 인기가 정말 뜨겁더라고요.”
항상 연두빛 꿈만 꾸고 솜사탕 같은 단내음만 풍기는 사람일 줄 알았는데 그의 마음속 가장 큰 정서는 ‘막연한 그리움’이다. “내 얘기를 계절 드라마로 만든다면 제목은 글쎄요,아마 ‘만추’쯤 되지 않을까요. 늦가을의 쓸쓸한 분위기,햇빛보다는 달빛에 가까운 느낌…. 그게 제 색깔입니다.”
■ 겨울동화
서울시립농대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휘경초등학교부터 중동고 2년 때까지 11년간 캠퍼스 내 관사에서 살았다. 과수원과 목장,화원이 있는 그곳은 도심 속의 작은 농촌이었다. 그의 화면에서 아름다운 자연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도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고교시절 음악에 푹 빠졌던 그는 부모님의 반대로 가수의 꿈을 포기했다. 그리곤 대학 입시에서 연거푸 낙방. “당시의 패배감이 나를 참 많이 다치게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뒤늦게 복을 많이 받고 있는지도 모르지만요. 두번 다시 다치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결혼도 안 할 정도로 말이죠,하하하.” 20대 초반의 기억은 그에게 겨울 바람처럼 매운 상처였다.
■ 여름연가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미혼이다. 무크지 ‘윤석호의 세계’를 살짝 엿보니 그동안 밝히기 꺼렸던 첫사랑 이야기가 소개됐다. 고등학교 2년 때 교회에서 만난 동갑내기 여고생. 대입 실패와 곧이은 군입대로 그녀와는 자연스레 헤어졌다.
“아이구,한국에서는 이 잡지를 못 보니까 상관없겠다 싶어서 얘기한 건데,들켜버렸네요. 그 친구랑은 그후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에휴 이 나이에 만나면 괴롭지∼. 그냥 추억으로 묻어두고 있어요.”
결혼을 아직도 안하는 이유는? “첫사랑 때문은 아니구…,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러데요. ‘로맨스를 이루려면 같이 잠을 자면 안 된다’고. 생활에 毒仟?자신이 없어요. 영원한 사랑에 대한 자신이 없는 거죠.”
■ 봄의 왈츠
“드라마를 이끌 장치를 아직 마련하지 못했어요. 이를테면 기억상실증이라든가 출생의 비밀 같은 것 말이죠. 그래서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는데,‘봄’을 4계절의 마지막에 둔 이유가 희망을 주고 싶어서였던 만큼 밝은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에요.” ‘봄의 왈츠’를 끝내면 그는 그동안 마음속에 두고 있던 영화를 시작할 생각이다.
일 때문에 이리도 바쁜데 연애나 결혼은 언감생심,꿈도 못 꾸겠다고 속으로 단정지을 무렵,그의 한마디에 생각이 바뀌었다. “제 꿈은요,행복해지는 거예요. 인간인 이상 가족을 만들고 싶잖아요. 똑같이 술을 마셔도 딴 사람은 다음날 꿀물 타주는 사람이 있지만 전 일어날 힘도 없어서 누워서 냉장고만 쳐다보고 있거든요! 그래서 전 스트레스 풀 때도 술은 안 마셔요∼ 하하.”
/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 anju1015@sportstoday.co.kr
/사진=김대규 daekyu@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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