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77세에 열반한 숭산 스님은
한국불교 해외 포교 불사에 헌신
32개국 130여개 선원 5만여 제자배출
무량·현각등 외국인 제자만 50여명
“반짝이는 눈과 ‘스승다운’ 면모를 지닌 네모나고 단단한 모습”
“전적으로 선사의 모습 그대로였던 스님“.
지난 달 30일 서울 화계사에서 “다 걱정하지 마라. 만고광명이 청산유수니라”라는 임종게를 남긴 채 세수 77세(법랍 57세)로 홀연 열반에 든 숭산스님을 두 백인제자 무량스님(태고사 주지)과 무상스님은 그들의 저서에서 이 같이 소개하고 있다.
“버스 속에서 스님은 그냥 잠을 자 버렸고, 호텔 방에서는 룸메이드가 방 정리를 하고 있는 데도 잡지를 들어 툭툭 털어내기도 했다” “관광을 할 때, 선사님의 우선 순위는 명확하다. 첫째, 가까운 가게에 간다. 둘째, 식사하기 좋은 식당을 찾는다. 셋째,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극장에 간다”
스승과의 소중한 만남을 담은 ‘오직 할 뿐-내가 만난 숭산대선사’(무량·무상 공저)에서 고인의 제자들이 묘사하고 있는 일상 속 숭산대사의 꾸밈없고 인간미 넘치는 생전 모습이다.
또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자 스님이 ‘직진’이라고 소리쳤다. ‘좌회전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으니 ‘때로는 직진이라는 말이 좌회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고 하였다”라는 대목에서는 세월이 읽히지 않는 해맑은 미소와 장난기 넘치는 천진한 스승으로 그를 그려내기도 한다.
1970년대 초반 숭산스님이 프로비던스에서 포교를 시작하던 당시, 스님으로서 함께 생활했던 현 OC법보선원장 정정달 법사는 “한국서 큰 스님이셨음에도 까마득히 젊고 무명인 나를 가리켜 ‘이 스님은 나의 친구’라고 소개하는 무척 개화된 분이셨다”고 회상하고 “특히 모두 채식하던 당시, 지친 몸을 일으키지 못하던 내게 스님은 소꼬리를 조리해 먹여주며 ‘수행자가 몸이 아프면 육식을 할 수도 있다. 몸이 있어야 도를 닦을 수 있기 때문’이라 했던 기억은 지금도 깊은 감회를 불러일으킨다고 전했다.
이처럼 다정한 친구, 푸근한 어머니의 모습과 함께 숭산스님은 한국불교의 해외포교를 향한 끓는 열정과 쪼개듯 명쾌한 설법, 친밀한 가르침으로 진리에 목마른 젊고 명석한 세계의 두뇌들을 구도의 길로 이끈 든든하고 믿음직한 스승이었다.
“큰스님은 설명을 하지 않는다. 대신 제자들이 질문을 하는 바로 그 순간 제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고통을 끌어내는 것이다. 자기 마음을 볼 수 있는 맑은 거울을 들이미는 것이다.” 저서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로 유명한 현각스님은 그의 저서에서 자신을 잡아 끈 숭산스님의 매력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또 테하차피에 10년간 손수 짓고 있는 태고사의 주지인 무량스님은 예일대 재학시절을 돌아보며 “외부적 조건들이 내 삶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길을 잃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길을 잃지 않고 바로잡는 게 중요한 것임을 큰스님은 알려주셨다”고 신간 ‘왜 사는가’(2004·열림원)에서 회고하고 있다.
숭산스님은 1927년 평남 순천에서 태어나 1947년 출가, 화계사 주지와 불교신문사 초대사장, 조계종 비상종회 의장 등을 지낸 고인은 1966년 일본을 효시로 한국불교의 해외포교불사에 생을 바쳤다.
1972년 프로비던스 홍법원 발족에 이어 이듬해 LA달마사를 남가주 최초의 한국사찰로 건립 이후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이라는 화두로 뉴욕, 시카고, 보스턴, 버클리, 시애틀, 캔사스, 켄터키 등 미주 도처에 한국선을 전하며 사찰과 선원을 세운 결과 무량(태고사주지), 현각(화계사 국제선원장), 무심(계룡산국제선원 무상사 주지), 무상, 대봉, 현문, 명공, 명행, 해량, 청안스님 등 현재 출가한 외국인 승려 중 직계 제자만 50여명, 세계 32개국에 130여 개의 선원에 약 5만 여명의 제자를 배출했다. 최근 수년간은 한국 화계사 조실과 대한불교 조계종 원로스님으로 활동했다.
한국시간 1일 수덕사로의 법구이운식에는 무량·현각·무심스님을 포함한 30여명의 외국인 제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존 케리 미 상원의원은 “숭산대선사와 함께 뜻을 같이 해온 모든 분들께 애도를 전한다”는 내용의 추모사를 전송했으며 지금도 제자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어 4일 영결식에는 1,000여명 이상의 외국인 제자들이 운집할 것으로 보인다.
장례식은 현지시간 4일 오전 10시30분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원로회의장으로 봉행되며 다비식이 이어질 예정이다.
한편 남가주사원연합회(회장 현일스님)는 당초 4일로 예정됐던 LA에서의 추도식을 신도들의 많은 참석을 위해 5일(일) 오후 2시 LA달마사에서 발인 및 영결법회로 거행한다고 밝혔다.
<김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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