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는 국제사회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권의 주제어다. 미국에서 북한 인권법이 제정될 정도다. 자유를 찾아 목숨 걸고 고향을 떠난 탈북자들, 자유를 찾아주겠다는 일념으로 탈북을 지원하는 중개인들, 탈북자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적응하도록 돕겠다는 미국, 이들이 한데 어우러지면 동일한 지향점에 무난히 당도할 수 있다.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는 탈북자의 각오라면 숭고하다. “단 한 명에게라도 자유를 선사하겠다”는 중개인의 신념이라면 존경심이 솟는다. “남의 나라 일이지만 도저히 외면할 수 없다”는 미국의 인류애라면 지구촌의 동참을 끌어낼 만하다.
그러나 밖으로 끄집어낸 레토릭과 주머니 속에 숨긴 본심이 판이하면 이들의 삼각관계는 변질되고 만다. 이 경우 자유를 내세우지만 정작 지향하는 바는 3인3색이다. 탈북자가 치켜세운 ‘자유,’ 중개인이 탈북자에게 안겨주겠다는 ‘자유,’ 미국이 인류애 차원에서 선사하겠다는 ‘자유’의 발음은 같지만 의미는 제 각각이다.
북한 인권법이 제정되면서 탈북자들이 들떠 있다. 법 내용을 숙지하지 않고 미국에 가기만 하면 수억원의 정착금을 받는다는 헛소문을 진실로 믿는다. 탈북 후 한국에 둥지를 틀었다가 미국으로 발길을 돌렸거나 돌리려는 탈북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에 일단 자리를 잡아 한국 정부로부터 정착금을 받은 사람은 미국 망명이 허용되지 않는데도 무작정 보따리를 싼다.
탈북자는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은 용기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한국에 정착해 그토록 그리던 자유를 찾았다. 만족스럽진 않겠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이제 마음이 바뀌어 미국 행을 결심했다면, 한국인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 오는 것과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해야 한다. 법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자신을 구해주고 받아준 사회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면, 자유에 목숨 걸었다던 용기를 의심받게 된다.
돈 더 벌고 더 잘 살기 위해서 미국에 온다면 특혜를 잊어야 한다. 다른 이민자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다시 이를 악물고 시작해야 한다. 한국 정착을 미국에서 ‘일확천금’을 따내기 위한 징검다리쯤으로 여긴다면 그동안 외쳤던 자유는 기만에 불과하다.
탈북의 연결고리인 중개인도 인권보호의 궤도에서 빗나가선 안 된다. 바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달콤한 “인생역전” 귓속말로 탈북을 부추긴다면 자유의 전도사랄 수 없다. 순진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탈북자를 오도해 나락으로 떨어뜨린다면 그 업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북한 주민의 자유보다는 탈북 유도 분야에서 1인자란 명성에 더 관심이 쏠려 있다면 그가 내미는 손은 마수일 뿐이다. 한국에 사는 탈북자를 미국에 보내주겠다고 꼬여 정착금 등을 빼먹고도 입만 열면 ‘자유’를 말하는 악덕 중개인들의 죄질은 탈북자를 두 번 죽이는 것에 버금간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관한 일에 법을 만들면서까지 개입할 정도라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인권의 수호자라는 칭호로 불릴 만하다. 그런데 미국 망명 신청자들을 수개월간 구치소에 가두어놓고 나중에 망명불허 판정을 내린다면 자유와 기회의 땅에서 꿈을 펼치려는 탈북자들을 ‘국제 미아’로 낙인찍는 일이다. 탈북자들의 눈에 미국이 어떻게 비쳐지겠는가.
미국의 인도주의가 북한 주민들을 불쌍히 여긴 데서 생성된 것인지,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고려에서 비롯된 것인지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가 1974년부터 17년간 집권하면서 수많은 국민이 고문과 학정에 시달렸지만 미국은 친미정권 유지를 인권보호보다 앞세웠다. 친미정권의 인권과 반미정권의 인권은 이중잣대로 측량되어 왔다. 탈북자의 인권이 정치 게임의 소산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은 역사의 편린에서 얻는 교훈이다.
자유와 부귀를 헷갈리는 탈북자는 진정한 탈북자가 아니다. 구사일생으로 얻은 자유에 감사하고 땀흘려 살려는 게 참 탈북자의 자세다.
탈북자 지원을 매명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중개인은 자유에 기생하는 독버섯이다. 정확한 정보로 탈북자를 도와야 맞춤 중개인이다.
맘에 안 드는 정권 교체의 도구로 사용하는 ‘인권’은 정치적 속셈을 코팅한 미사여구다. 오로지 북한 주민만을 염두에 둔 인권이 코팅 안 한 인권이다.
박 봉 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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