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순PD, SBS ‘유리화’ 연출의 변
이창순 PD. 1996년 드라마 `애인’으로 세련된스타일의 멜로 드라마를 선보였다. 유부남과 유부녀의 불륜이 이처럼 아름다운 멜로드라마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드라마 표현력을 확장시킨 연출가다.
이후 `신데렐라’(97년), `추억’(98년), `안녕 내 사랑’(99년)을 성공시키며 `스타 PD’로서 감정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감성적인 연출을 해왔다.
2001년 `가을에 만난 남자’에서 흔들렸고, 2003년 초 형부와 처제의 사랑이라는파격적인 소재를 선보였던 `눈사람’은 그의 장점이 무엇인지 새삼 확인시켰다. 그러나 올초 최수종과 최진실을 내세운 MBC TV 주말극 `장미의 전쟁’은 `가을에 만난 남자’ 이상의 타격을 줬다. 작품성도 내세울 수 없었고, 시청률도 부진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연출작중 가장 젊은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12월 1일 방송되는 SBS TV `유리화’가 그것이다. 이 드라마에는 김하늘, 이동건, 김성수가 출연해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과 갈등이라는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그는 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보도자료에 오자가 난 것 같다. `멜로 연출의 귀재 이창순’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말은 잘못 나간 거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해 눈길을 끌었다.
배우들에게 기자들의 인터뷰가 몰리는 사이 따로 이 PD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가 아닌 이 PD의 참담한 고백이었다.
그는 일단 요즘 드라마는 연출이 누구라는 건 상관없다. 나 역시 이미 기획과캐스팅이 일부 돼 있는 상태에서 (연출로) 들어왔고,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제작 현실을 꼬집었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 예전 생각대로, 내 방식대로 일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시청률은 무슨 환율 공시처럼 매일 공개되고, 대부분의 언론 기사는 시청률과 관계된 것이다. 이제 드라마는 작품이 아닌, 제작사의 기획 상품이다. 요즘 드라마는 `코믹으로 시작해 진지한 멜로가 나온후 주인공은 죽는다’는 게 공식처럼 돼있다. 시사회에서 보여진 편집 화면에 코믹한 장면과 상황이 몇차례 선보였다. 설마 `유리화’에서도 주인공이 죽을까.
이 PD는 고려중이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갈등속에서 한명은 떠나야 하는데 그게 죽음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 드라마 속에서는 사람이 살면서 평생 일어날일이 1년도 안되는 시간 설정 속에서 다 일어나 버린다. 사건과 이벤트가 없으면 70분짜리 드라마 20회를 어떻게 끌고 가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난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끄집어내는 연출가다. 그런데 요즘 시청자들은 그런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며 복잡한 심경을 표출했다.
기획상품이 된 드라마의 제작 풍토 역시 그를 힘들게 한다.
`유리화’가 한국과 일본에서 거의 동시에 방영되고, 이 점때문에 일본을 공략하는 첨병같이 소개되는 것도 부담된다.(그는 간담회 도중 일본 기자의 질문에도 일본에서 어떻게 보여지는 것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찍었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나? 아니다. 일본에서 찍고 왔는데, 모르겠다. 꼭 그래야만 했는지. 일본 촬영을 하느라 오히려제작 일정이 너무 촉박해졌다. 일본 시장을 고려하고, 이로 인한 수익구조 때문에기획 단계에서 부터 결정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시청률이 좋았으면 한다. 왜? 창창한 젊은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데 그들에게 실패를 안기면 안된다. 성공시켜야 할 것 아니냐라는 답이다.
기자는 그래도 `이창순 표’라는게 뭔가 있을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인물의 무게를 싣기 위해 노력했다. 현 드라마의 추세를 인정하지만, 그래서 다소 늘어진다는평을 받더라도 각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비중을 뒀다. 또 한가지 놓치고 싶지 않은건 극중 동주와 기태, 두 남자의 우정과 애증이다.
김하늘이 중심이 될 멜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들의 관계에 대한 욕심을 내보고 싶다고 했다. 사람의 관계는 정상 같지만 비정상적인 면이 존재한다. 우정이 사랑 앞에서 애증이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친구와 경쟁처럼 벌이게 되는 집착같은 애정, 남자 간의 관계에 대해 작가와도 공을 들이자고 했다. 그래야 이 드라마가 오로지 사랑 싸움만 하는 것을 넘어설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에 이 드라마가 끝나면 애들이 있는 미국으로 가 한동안 오지 않을 생각이다. 거기서 내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돌아와 영화를 준비할까 한다. 이런 드라마 제작 환경은 나랑 맞지 않고, 내가 변할 수 없으면 하지 않아야 하겠지…라며 씁쓸한 분위기를 더 가라앉혔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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