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살다보면 우리는 자주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대한다. 어찌 보면 죽음을 대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사이기도 하다. 사실 날마다 크고 작은 사고나 병으로, 혹은 전쟁터에서 죽어 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의 죽음이 아니면 다른 이들의 죽음에는 무관심하다. 하기야 하루하루 살기가 바쁜 판에 어디 잘 모르는 사람들의 죽음에 일일이 관심을 가질 겨를이 있으랴.
어제 오전에는 아는 사람들이 먼저 돌아가신 부모님들과 조상들을 위하여 올리는 천도재(薦度齋)에 참석하여 법문을 하고 왔는데, 저녁때에는 또 다른 아는 분의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부음이 날아들었다.
천도재에 참석한 한 분에게 왜 천도재를 지내시냐고 조금은 장난스럽게 넌지시 물어봤다. 그 분의 대답은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극락왕생을 위해서 천도재를 올린단다. 내친 김에 짓궂게 다시 물었다. 천도재를 지내면 본인과 남아있는 가족들이 좋다고 해서가 아닌가 하고. 그 분은 정색을 하면서도 다소 겸연쩍어 하며 얼굴을 붉혔다.
물론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조상님들과 부모들이 다음 생에는 보다 안락한 삶을 누리고, 이왕이면 다시는 고통스러운 세계에 윤회하지 말고 자유롭고 지극히 즐거운 극락 세계에 가시라는 마음을 내는 것이 자식으로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바램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은연중에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윤리적 관념 속에는 자신들도 복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불교에서는 지극 정성으로 천도재를 베풀면 그 공덕의 7분의 1만이 조상들에게 가고 나머지 7분의 6은 천도재를 베푸는 본인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기복신앙을 부추길 것 같은 이러한 가르침에는 굉장히 합리적이고 설득력있는 지혜가 담겨있다.
많은 사람들이 재(齋)와 제사(祭祀)를 혼동하고 있는데, 재(齋)는 심신을 청정하게 가지고 행동을 삼가고 마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제사(祭祀)와는 그 뜻이 다르다. 원래 ‘재(齋)’는 산스크리트어, upo adha의 번역어로 ‘비시(非時)’, 즉 ‘때가 아니다’란 의미이다. 이것은 초기 인도 불교의 출가 수행자들은 정오가 지나면 먹지를 않는 계율이 있었는데, 식사를 해서는 안되는 시간, 즉 비시(非時)를 ‘재(齋)’라고 했다. 그래서 한낮이 지나면 먹을 때가 아니라는 뜻에서 재는 바른 때의 식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유래된 재는 흔히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삼가며 생각과 행동을 반성한다는 의미의 ‘재계(齋戒)’라는 말로 쓰이는데, 말 그대로 지켜야 할 계율을 어길 때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재(齋)를 올리는 것은 심신을 깨끗이 하고 삼가서 나쁜 마음이나 어지러운 생각이 들 때마다 이럴 ‘때가 아니다’, 좋지 못한 행동을 할 때마다, 이럴 ‘때가 아니다’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천도재를 올릴 때 외우는 불경의 내용을 요약하면, 탐진치(貪瞋痴), 즉 욕심 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세 가지 나쁜 마음인 삼독심(三毒心)을 버리면, 번뇌와 미망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며, 그러한 자유로움을 깨달으면 다시는 윤회하는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천도재는 죽은 영혼에게 이제 새로운 생을 받게 될 때이니, 이승에서 살아 있을 때처럼 욕심 낼 때가 아니다, 성낼 때가 아니다,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고 삼가고 반성하며 마음을 바르게 하면 내생에는 더 좋은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가르침을 전해주는 의식이다.
물론 사후에도 영혼이 있으며, 윤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의식이 가능하겠지만, 이런 의식을 통해서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이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행동을 삼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천도재를 올리는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스스로 그 가르침을 되뇌이며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 올바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계기가 되니 그 복을 본인들이 받게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다. 언제 우리 자신의 일이 될지 모른다. 세상살이의 사소한 시시비비(是是非非)에 휘말려 어리석게 성내고 탐욕을 부리며 우왕좌왕 할 때가 아니다. 두려움과 불안감 없이 언제든지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것은 매일 매일 무엇을 할 때가 아닌지를 반성하고 삼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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