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이 곳 양로보건센터에 오시는 분들과 이야기해 보면 말은 잘 안 하지만 누구나 공통적으로 두 가지 소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죽을 때 고통 없이 평안히 죽는 것이고 그 다음은 죽을 때까지 정신을 놓지 않고 깨끗이 살다 죽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죽을 때 고생 안하고 추하지 않게 죽는 것을 바라고 계시다. 노망 또는 망령이라고 일컫는 치매는 두뇌의 뇌 신경세포의 기능이 점점 저하되어 정상적인 기억력과 판단력이 상실되고 때로는 성격이 난폭해지기도 하며 대소변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는 몹쓸 병 중의 하나이다.
어느 날 갑자기 모시고 살던 노부모나 배우자가 당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어떨까? 상상하기 조차 끔찍한 일이지만 황혼의 불청객인 치매는 언제, 누구에게 그리고 어떻게 다가올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병이다.
치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뇌 혈관의 동맥경화와 같은 혈류 장애와 이로 인한 뇌세포 퇴화로 생기는 것이고 둘째는 이상 단백질이 뇌 신경세포에 달라 붙어 뇌신경 퇴화 현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츠하이머 병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흔치 않지만 알코올 중독이나 뇌 종양 또는 뇌부 손상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었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른 채 레이건 대통령의 말년을 폐인으로 보내게 한 알츠하이머 병은 미국인70세 이상의 사람 열 명 중 한 명이(10%)이 걸리고 85세 이상 노인에게서는 두 사람 중 한 사람(50%)으로 급증한다고 하니 과연 연세 드신 모든 분들이 걱정할만한 병이기도 하다.
우리 양로보건센터에 오시는 분 중에 좀 심한 치매 환자 할머니가 계시다. 주변 상황에 대해 잘 모르고 현실에 만족하며 사신다. 기본 적인 것만 제공되면 만족해 하시고 항상 웃으시는 분이시다. 남이야 자기로 인해 좀 불편해 해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기 이름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 모르지만 불평을 들을 수 없고 늘 미소가 가득하다. 한번은 이 곳을 슬며시 빠져 나가 찾을 수 없었다. 화장실에 간 줄 알았다가 뒤늦게 실종 사실을 안 직원들이 갈만한 곳을 다 찾아보고 주변 LA 한인타운 중심가를 찾아 다녀보았지 만 찾을 수 없었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한국 라디오 방송국에 연락하여 방송하게 하는 등 걱정하며 여러 모로 애를 많이 썼다.
다섯 시간 정도 지난 후에 한 식당에서 반가운 전화가 왔다. 어떤 고마운 젊은 부부가 식당에 식사하러 가는 도중에 길거리에 앉아있는 이 할머니를 발견하고 인적 사항을 물어보아도 아무 사실을 알 수 없음을 알았다. 우선 저녁 식사를 대접할 양으로 평소에 잘 가는 식당으로 데려 갔었는데, 마침 식당 주인이 그 할머니가 누구인 줄을 알아보고, 그리고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던 차에 우리 센터로 연락하였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던지. 그러나 정작 돌아온 그를 보고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등을 물어보아도 할머니는 시종 웃고 만 계셨다. 누구의 말대로 치매에 걸리면 주변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참 편한 병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 교회에 나와 동창인 친구의 형님이 계시는 데 대학 선배로 평소에 가깝게 지내시던 분이시다. 50대 초반부터 점점 기억력이 없어지고 만나면 했던 질문을 또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점점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한번은 운전하다 길을 잃어 하루 종일 길거리를 방황하다 돌아와서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겁에 질려 걱정하기도 했다. 얼마 가지 못해 정상적인 직장생활도 접게 되었다. 그러더니 점차 더 나빠져 주변 상황에 대해 그리고 평소 가까이 지내던 가족 식구들마저 전혀 몰라보는 지경이 되었다. 그의 아들과 딸도,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마저도 몰라보았다. 평소에 자상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호인이었는데 방문하는 우리 내외를 몰라보고 말도 못하는 아주 딴 사람이 되어 있음을 보았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마음 아파했는지 모른다. 그를 보며 순간 나도 이런 치매 환자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오래 전 동구의 한 교구장(敎區長)이 치매에 걸렸다고 한다. 그 때만 해도 일반 사람들은 치매에 대한 상식이 없어 기억력이 없어진 그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노려대기 일수였다.
“목사님, 저의 이름이 뭐에요?”
“목사님, 이름은 뭐에요?” 그리고 친척 청년을 가리키며,
“누군지 아세요?”
이런 질문에 그는 불안하고 겁먹은 얼굴로 고개만 가로 저었다. 교인들이 재미 있어 킬킬거리고 웃으면 같이 따라 웃기도 하고. 그러다 어떤 교인이
“예수님에 대해 아세요?? 예수님이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금새 얼굴이 환해지며 웃는 모습으로, “아, 예수님, 예수님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신데, 우리 모두를 참으로 사랑하시는 분이시지……”하며 한참 동안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열심히 하셨다.
나도 늙어 만일 치매환자가 된다면 그래서 나의 두 아들의 이름도 모르고, 내 이름조차 몰라도,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아내마저 몰라봐도 오직 예수님만은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로 알고, 그리고 그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은 그런 치매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김평웅
약 력
▲평북 강계 출생.
▲‘한국수필’ 신인상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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