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어머니들은 자녀 양육하는 일과 가르치는 최초의 교사요, 또는 남편의 아내 역할로서 가정을 이루고 가꾸는 주역이 되고 있다. 그래서 아내의 어원을 `안 해’에서 찾을 수 있는 `가정 안에서의 해’ 즉 `가정의 태양’ 이라는 역할 해석으로 보아도 그렇다.
오늘 어머니는 자녀의 가정생활뿐 아니라 가정교육도 맡고 있어 ‘모든 사랑을 초월한다’고 그랬는지 모른다. 그런 사랑은 부부의 교감에서 발생하여야 옳을 것이다. 수마트라 섬 밀림지대 샤 망이라는 원숭이는 일부일처로 가족을 이루어 매일 아침 그들 부부는 노래를 불러서 사랑의 교신을 나누면서 부부교감으로 새끼를 기른다고 한다. 이들 원숭이 중에서 억지로 짝을 짓게 하였더니, 새끼는 낳지만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하는데, 사랑도 자녀 교육도 부부의 교감에서 빚어질 때 아름다운 것이지 어느 한 쪽만 일방적이거나 과잉이 될 때 그것은 극성으로 문제화 될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자녀 중심으로 핵 가정의 모델에서 과잉보호형, 수용형, 그리고 전제형과 방임형이 있지만, 어떤 것이라도 지나친 것 즉 과잉은 좋은 면보다 좋지 않은 면이 많다. 영양분 공급을 많이 하면 비만이 오고, 소금, 설탕이 지나치면 성인병을 불러들이는 과잉은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마산 어느 여고생들이 모 특수학교를 방문하고 돌아와 쓴 소감 글에서 거의가 `나를 건강하게 낳아준 어머니, 또는 부모님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의 글을 읽고, 그런 어머니를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인데, 자녀 사랑은 부부교감이 되어 있을 때 더 바람직한 가정이 된다는 것이다.
온 세상을 다 얻었다 해도 돌아갈 가정이 없으면 그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라 할만큼 중요한 어머니의 역할, 부모의 위치가 그 어느 때보다 안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핵가족에서 오는 새로운 생활패턴에서 흔들리고 있지나 않는지 걱정되는 것은 어머니들의 자녀 과잉보호 문제다. 그런 사랑의 주체 역할과 샘이 되고 있는 어머니를 나는 여섯 살에 여위었다. 그 때는 어리고 철부지여서 그런지 어머니 얼굴 모습이나, 어머니 사랑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장년이 되었고, 기성인이 되면서부터 때때로 어머니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느낄 때마다 내가 하는 무모 역할이 바른가를 생각해 왔다. 내 누이동생은 천지를 분간 못하고 방긋거릴 줄만 아는 때 그러니까, 낳은 지 6개월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이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성인이 된 후에야 어릴 때 일들은 같은 것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물론 결손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 당시는 대 가족구성 시대여서 할머니나 삼촌 등 여타 가족의 우산 속에서 양육되어진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핵가족 시대를 맞아 기르는 나의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만은 자제해야 하겠다는 결심은 분명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자녀들은 대체로 잘 자라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핵가족 시대로 바뀐 가정마다 자녀 한두 명에 과잉보호로 양육하는 부모가 지나치게 많아진 것 같아서 걱정이다. 언젠가 자녀를 마마보이와 공주를 만들어버린 어머니의 자녀 기본적 사랑에의 배려에 혼선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서울에서는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선진 외국으로 조기 영어교육을 위해 많은 핵 가정들이 몇 명 안 되는 가족들과도 이산가족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부유층 가정에서는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잘못 생각으로 부족함을 모르게 길렀다는 자녀가 가출하는가 하면, 부모 과잉보호 속에서 아집만 자라 부모를 업신여기는 망나니, 장래를 위해 유학까지 뒷바라지하는데 안간힘을 쏟았는데도 돌아와서는 항의하고, 불만 해결이 안된 다고 부모를 세대 차로 지탄해 버리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개혁이 된다 하여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 졌어도 어머니는 자기자리에 있어야 하고 다 떨어진 부모도 부모는 부모인 것이다. 이것이 시대 변화에 수반되는 일이라 해도 기본적인 인간관계만은 남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 이 같은 부모의 끝없는 자녀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에게 자녀는 그 은혜를 평생 다해도 갚을 수 없기에, 그 자녀가 다시 부모 되어 자기 자녀에게 그 사랑을 더하며 흘러가는 것이 역사인 것이다. 그렇게 희생을 감수한 어머니를 산 속에 버렸어도 고려장 당하는 고려시대 어머니들의 아들에 대한 자애의 마음은 오늘도 모든 어머니들 가슴에 그대로 남아 흐르는데, 어쩌자고 부모에 대한 관심과 공경은 이토록 달라져 가고 있는 것일까! 빠르게 세상이 바뀌고 모든 생활이 달라져 가고 있음을 보면서도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관심, 그것도 내 자식만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 같아서 씁쓸한 심정이다.
이창규
약 력
‘수필공간’으로 등단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원
수필집 ‘바람이 남긴 자리’ 이외에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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