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대 190. 혼전을 거듭하는 대통령 선거에서 두 후보가 각각 확보한 선거인단 예상수치가 아니다. 미 전국 신문업계의 동향을 다루는 잡지 ‘Editor & Publisher’ 최신호에 실린 수치다.
미국의 대다수 신문들은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면 사설을 통해 지지 후보를 밝히는 전통을 갖고 있다. 위의 숫자는 선거일 이브인 1일 현재 두 후보에 대한 신문들의 공식 지지 분포다. 208개 신문이 존 케리를 지지했고 조지 W. 부시 지지 사설은 190개 신문에 게재됐다. 대통령 지지후보를 천명한 신문의 수로는 케리가 우세하다.
2,079만336명 대 1,445만5,046명. 후보의 인기도를 지지 신문의 산술적 우위로만 판단할 일은 아니다. 군소 신문 여러 개의 지지보다는 대형 신문 하나의 지지가 더 큰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독자가 사설을 읽고 마음을 정하거나 바꾸는 것을 전제로 그 영향력을 가늠해야 변별력을 지닌다. 그렇다면 독자 수를 따져봐야 한다. 위의 수치는 두 후보 지지 신문의 독자 수를 합한 것이다.
케리를 지지한 신문의 구독자는 2,000만 명이 넘고 부시를 지지한 신문 구독자는 이보다 약 500만 명이 적다. 전체 유권자에 대한 표본조사가 아니므로 민심을 정확히 대변하지는 않는다. 지지후보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신문과 그 독자까지 통틀어 계산하면 좀 더 설득력이 있겠지만, 아무튼 두 후보에 대한 지지 신문과 독자의 수에서는 케리가 여유를 보일 만하다.
신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속성을 띤다. 부시 행정부가 신문의 공격을 당할 소지가 많고 트집을 잡힐 공산도 그만큼 크다. 그리고 지조를 중시하는 신문은 대통령지지 후보를 선택할 때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에 대한 전통적인 호 불호가 있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가 민주당 후보를, 시카고 트리뷴이나 애리조나 리퍼블릭이 공화당 후보를 감싸는 것도 그 한 예다. 그러니 특정 신문의 노선을 무작정 따르기는 곤란하다.
‘60개 이상’ 대 ‘10개 미만.’ 지난 2000년 대선에서 부시를 지지했던 신문 가운데 60여 개가 이번에 케리 쪽으로 돌아서거나 중립을 표방했다. 4년 전 민주당 후보였던 앨 고어를 지지했다가 이번에 공화당으로 신발을 바꿔 신은 신문은 10개 미만이다.
4년 전엔 그토록 열광하더니 이번에 부시를 배반한 신문은 미시건의 플린트 저널, 워싱턴의 시애틀 타임스, 뉴멕시코의 알부쿼키 트리뷴, 펜실베니아의 모닝 콜 등 수두룩하다. 2000년 민주당을 밀다가 이번에 공화당 후보인 부시로 갈아 탄 신문은 콜로라도의 덴버 포스트, 미시건의 맥콤 대일리, 펜실베니아의 요크 데일리,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헤럴드 저널 등이다.
공신력을 생명으로 하는 신문의 사설로 후보를 지지했다고 해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신문이 회사의 입장인 사설을 통해 ‘전통’을 깰 때는 다르다. 웬만해선 그러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손바닥을 뒤집은 신문이 있다면 그 사설 내용을 차근차근 읽어볼 만하다. ‘변절의 변’은 유권자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도움을 준다.
저마다 ‘최고’라고 외치는 유세 바닥에서는 흑백조차도 분간이 안 될 지경이다. 견강부회, 아전인수, 아니면 말고 식의 발언이 난무한다. 박빙의 선거전이라 더 그렇다. 경쟁자의 장점엔 눈을 질끈 감고 단점엔 초강력 플래시를 비추는 게 선거전이다. 부시가 퍼붓는 말만으로는 “4년 더”슬로건에 합류하기 찜찜하고, 케리가 쏟아내는 공약만으로 “새로운 출발” 캐치프레이즈 아래 모이기 미심쩍다. 후보들은 작은 자랑거리는 침소봉대하고 실책은 애써 축소하려 들기 때문이다.
아직도 표심을 정하지 않은 유권자들에게 신문들의 ‘변절의 변’을 읽을 것을 권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저마다 정론을 자부하는 신문들이 왜 노선을 좌우로 180도 틀었는지 궁금해할 만하다. 그 논지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후회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려는 유권자에게는 절대 헛수고가 되지 않을 것이다.
부동층은 전체 유권자의 4-5%정도로 추산된다. 이번 선거처럼 용호상박의 혈전에서는 바로 이들 부동표가 당락을 가른다. “그깟 내 한 표” 할 게 아니다. 부동층에 적어도 미국의 4년이 달려 있다. 선거일이 밝았는데도 마음이 왔다갔다하면 인터넷에 올라 있는 이들 ‘문제의 사설’을 읽어본 뒤 투표소에 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박 봉 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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