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숙<수필가>
이젠 그만 떨쳐 버리자. 가을이 되자 그녀는 더 이상 남편과 아들부부 보기가 민망해 억지로 기운을 차렸다. 자신이 쳐져있던 여름 내내 한집에 사는 가족들 또한 마음고생이 심했으니까.
다시 한 번 일을 해보면 어때. 당신이 강의 있는 날은 내가 대신 보람이를 봐주면 되잖아.
남편의 부추김에 힘입은 그녀는 우선 기업체들에 자신을 알리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당혹스럽게도 전에 낯을 익힌 담당자들 대부분이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그녀는 새삼 3년 반 공백의 무게를 묵직하게 느꼈다.
‘고품격 식탁매너, 강사 홍미자’ 명함에 인쇄된 그녀의 공식직함이다.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해외공관생활을 했던 그녀가 남편의 퇴직 후 새롭게 시작한 직업은 식탁매너강사. 당시엔 경제가 그럭저럭 괜찮았던 시절이라 직원 복지차원에서 기업들의 강의요청이 심심찮게 이어졌다. 그러나 첫손자가 태어나자 그녀는 일을 접고 자청해서 아이의 양육을 맡았다.
눈먼 사랑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옹알이, 짝짜꿍, 걸음마, 그리고 보드란 뺨의 감촉... 그녀는 어쩌다 외출을 해서도 코끝으로 불쑥 손자의 냄새를 맡았다. 녀석도 당연히 저녁에만 잠깐 보는 제 부모보다는 할머니를 더 좋아했다. 아니, 그런 줄만 알았다.
지난여름 다섯 식구가 함께 휴가를 떠나온 날, 보람이는 오후 내내 백사장에 앉아 모래장난을 했다. 녀석은 고사리 같은 제 손을 넣어 두꺼비집을 세 개나 만들어 놓았는데 그 모양이 하도 앙증맞아 그녀가 장난 삼아 물었었다.
아유, 멋져라. 그런데 이게 다 누구 집이야?
으응, 요건 엄마 집, 요건 아빠 집, 그리고 요거는 보람이 집!
그럼,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어디에 살고?
몰라.
그녀는 어린애가 한 말을 가지고 무얼 그리 상심하냐며 자신을 거듭 다그쳤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시리고 허전한 가슴 때문에 그녀는 여름 내내 춘추용 차렵이불을 덮고 살았다.
따르릉 이른 아침부터 전화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지만 그녀는 심드렁했다. 어차피 대부분의 전화가 이런저런 감투를 쓰고 있는 남편 거였고 가물에 콩 나듯 간간이 그녀를 찾는 전화들도 결국 일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니까.
안녕하세요? 홍미자 선생님이시죠? 저 혹시 선생님께서 조수를 채용하실 계획이 있으신가 해서요. 급여는 작아도 상관없어요.
조수 자리를 구한다고? 개점휴업상태에 웬 조수? 명함을 돌린 지 한 달, 하지만 불경기 탓인지 그 동안 그녀는 단 넷 건의 전화를 받았을 뿐이다. 그중 세 건은 오늘아침처럼 일종의 취업문의였고 나머지 한 건만이 강의를 의뢰하는 전화였다. 그나마도 그쪽에서 제시하는 사례비가 너무 터무니없는 바람에 계약은 초반에 무산되고 말았다. 전화를 끊고 나자 남편은 아내 보기가 민망한지 보람이를 데리고 슬그머니 아파트 놀이터로 내려갔다.
집안이 조용해지자 그녀는 어제 저녁 며느리가 사다 준 여성잡지를 집어들었다. 이게 누구야? 무심코 독자의 난을 넘기던 그녀가 활짝 웃고 있는 보람엄마의 사진에 눈길이 멎었다. 며느리의 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딱 보름만 있다오는 거다. 네 에미 힘들어서 더는 안돼. 할머니는 연신 엄마가 힘들까봐 그런다고 했지만 어린 맘에도 사실은 할머니 자신이 허전해 그러신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연초에 어린 동생들만 데리고 부모님은 앞서 서울생활을 시작하셨지만 맏이인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방에 남겨졌다. 정말로 객지에서 세 아이를 돌보기 힘들만큼 엄마의 건강이 좋지 않았는지 아니면 노인 두 분만 달랑 남겨놓는 게 미안해서였는지 지금까지도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른다.
딱 일 년 만이라고 했지만 엄마, 아빠가 떠난 자리는 너무 쓸쓸했다. 마침내 약속한 보름이 지나자 나는 할머니께 내려가지 않고 엄마랑, 아빠랑 함께 살겠다며 막무가내로 버텼다. 마음 약해진 부모님이 일단 내려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드리고 짐을 챙겨 다시 오라고 했지만 나는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며칠 후 내 대신 짐을 챙겨 올라오신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서럽게 우셨다. 그리고는 노환으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당신은 그때 일을 두고두고 말씀하셨다.
세월이 흘러 나도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낳기만 했지 직장생활을 하느라 아이를 기르는 건 온전히 시어머니의 몫이다. 때문에 세 살이 된 내 아이는 지금도 졸리면 나보다는 제 할머니를 찾는다. 그 옛날 내가 그랬듯이.
그런 아이가 얼마 전 새삼 제 할머니를 제쳐두고 부모인 우리부부만 챙겨 어머님을 몹시 서운하게 했다. 죄송하고 민망한 노릇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분이 손자에게 쏟은 사랑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걸. 할머니 가슴을 그렇게 멍들게 했던 나도 살면서 힘이 들 때면 습관처럼 그분을 떠올린다. 그분의 가슴을 더듬고 그분의 냄새를 맡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깊이를 알 수 없는 평안이 잔잔하게 밀려왔다.
물론 내리사랑에 비하면 치사랑은 형편없이 함량미달이다. 그러나 비록 이기적인 형태지만 치사랑도 엄연한 사랑이다. 어쩌면 지금 어린 내 아이 가슴엔 엄마, 아빠, 그리고 자신의 공간만이 존재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아이도 어느 날 나처럼 홀연히 깨닫게 될 것이다. 이미 자신의 공간 안에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이 공기처럼 녹아있음을.……
읽기를 마친 그녀는 베란다로 달려가 활짝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그네를 타고 있는 보람이를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할-무-니- 한참만에야 올려다본 녀석이 그녀를 향해 마주 손을 흔들었다. 참 좋은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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