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는 미국이 왜 전쟁중인가를 아직 이해 못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테러를 어떻게 단지 ‘nuisance’ 정도로 볼 수 있겠 는가.
핵무기가 테러리스트 손에 들어가는 사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더티 밤‘(dirty bomb)을 말하는 게 아니다. 수만의 인명피해를 가져오는 진짜 핵 폭탄 말이다. ‘더티 밤‘이라면 그야 케리 의 말대로 nuisance에 해당되겠지만.
거리의 치기배, 매춘부 등이 저지르는 불법행위가 nuisance다. 몹시 성가시지만, 근절이 잘 안 되는 그런 불법 행위를 말한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이 케리와의 인터뷰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테러리즘을 그런 정도로 보고 있고, 경찰이나 동원하면 될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는 거다. 그러자 새삼 불거진 게 안보논쟁이다.
“미국이 맞은 전쟁은 정확히 말해, 이슬람 지하드와의 전쟁이다. 서방문명을 극도로 증오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파괴하려 드는 회교원리주의자와의 전쟁이다.” 한 보수 논객의 정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다시 늘어놓는 건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는 모양이니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야유다.
그 말싸움은 시국관 논쟁으로도 이어진다. 1952년과 1968년, 아니면 1972년과 1980년. 현 상황은 어느 시점과 흡사한가가 논쟁의 포인트다.
한국전과 월남전 와중에 치러진 대선이 1952년과 68년의 상황이다. 어떻게든 전쟁은 종식시켜야 한다. 당시 미국의 정치권이 보인 공통의 인식이었다. 그리고 선거 후 실제로 그렇게 됐다.
이라크 전쟁을 제2의 월남전으로 본다. 그러면 답은 정해져 있다. 어떻게든 전쟁은 종식시켜야 한다는 쪽이다. 선거의 결과도 그리고 보나마나다.
소련 세 팽창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72년 닉슨의 주장이었고, 80년 레이건의 주장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결국 옳은 것으로 증명됐다. 정면으로 대응한 결과 소련제국이 무너졌으니까.
이라크 전쟁을 테러전쟁이라는 세계전쟁의 한 단계로 본다. 이 판단이면 선거 후 정책의 방향성은 결정된다. 제2의 월남전으로 본 것과 정반대 방향으로다.
일파만파 논쟁은 계속 번진다. 그 가운데 이런 논리도 제시된다. ‘전쟁이 반드시 악(惡)은 아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일종의 가정법에서 출발한다. 이라크 전쟁을 예를 들자.
사담 후세인은 여전히 건재하다. 미국이 공격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어느 시점.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를 마침내 보유하게 됐다. 커다란 악성종양으로 자란 것이다. 결국은 군사적 해결방안 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 때 가서 이라크를 붕괴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가 이다.
전쟁으로밖에 해결이 안 된다. 그런 결론이 불가피하다면 차라리 일찍 전쟁으로 가는 게 피해를 극소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너무 늦게 시작해 엄청난 손실을 가져온 대표적 전쟁은 2차 대전이다.
서방연합국이 히틀러의 공갈에 굴복하지 않고 1939년이 아닌, 1936년에 나치 독일을 공격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엄청난 인명피해를 줄이고, 그 후 세계정세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대다수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런 관점에서 적지 않은 관측통들은 이라크 전쟁의 도덕적 당위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런 주장까지 하고 있다. “선제공격을 꺼리지 않는 W 부시가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서방세계는 감사해야 할 것이다.”
매파 중 매파의 논리인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네오콘 비판 그룹이 제기한 논리여서 하는 말이다.
이 논란에서는 그런데 뭔가 섬뜩한 시사가 발견된다. 안보관이 거의 180도 다른 케리와 부시가 한 가지에서만 공통된 시각을 보여서다. 앞으로 미국이 맞은 최대 안보상의 위기는 북한의 핵 위협으로 지적한 점이다.
그 시사란 건 다른 게 아니다. 조기 전쟁론이 바로 북한 핵 문제 해결에 혹시 원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쳐서다.
그건 그렇고,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nuisance’라는 단어를 사용해 케리는 무의식적으로 본심을 노출시켰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안보 이슈에서 열세인데, 막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박빙의 접전이다. 결국 케리가 패배한다면 아마 이 말 탓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옥 세 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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