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보셨습니다
눈은 마음에 거울인가, 흐린 날씨에 풍경을 보는것 처럼 글이 아물아물 거릴 때가 있다. 눈물을 많이 흘릴 때나 글을 장시간 읽는다든가 하는 때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자연현상이지만 때로는 착시 현상으로 오아시스를 착각하는 신기루 현상도 있다. 그러나 백내장이나 녹내장으로 인하여 사람의 형상이 희미하게 보여 목소리만 알아 듣는 사람을 보면 어머님 생각이 난다. 백내장을 치료하고 눈에 렌즈를 끼워 넣으면 좋다고 하여 입원을 하여 시술을 했는데 마찬가지라고 하셔서 재 수술을 하신 후 결국 한쪽 눈을 실명하신 채 돌아 가신 어머님이 불현듯 떠 오른다.
사람은 겉으로 나타나는 것과 속사람이 다른 것을 아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인데 결국 어려운 처지를 당하고서야 자신을 깨닫는 진리가 있게 마련인가 보다. 옛말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했는데 지금은 열길 물속도 모르고 한 길 사람속은 더더욱 모른다는 신 격언이 생겨나서 예전에 그 사람이 아니야 하는 소리가 농담 아닌 진담으로 들어야 하는 세상. 그렇게 선하던 사람이 무슨 물을 먹었는지 영 다른 영악한 사람으로 탈바꿈한 일들이 어디 하나 둘이랴, 학생 때는 안 그랬는데 ㅇㅇ가 되더니 목에 힘주고 반면 교사로 얼굴을 돌리는 심성들을 보고 웃어야 할 일인지 개탄할 일인지 잘 못 본 일일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실재 현실로 증명되는 건지 아니면 한 번 체면이나 권위를 잃으면 영 되찾을 수 없다는 선배들의 가르침으로 속에 들은 것은 없으면서 솔선하는 일도 없고 공부하지 않고 자질이 부족한 지도자로 군림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의 눈을 의심하는 것도 결국 잘 못 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어쩌랴. 프랑스의 격언에 술은 입으로 들어가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 간다고 남자는 훤칠한 키에 잘 나고 볼일이고, 여자는 무조건 예쁘게 생기고 볼일이 아니던가, 심지어 목사 후보인 신학생들도 다 같이 예쁜 여자들을 좋아 한다니 믿어야 할까?
누구나 옷을 잘 입은 사람이나 잘 생긴 사람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쩌면 본성인데 잘 못 보는 것도 당연한 일 같다. 인격 수양은 옛말이고 성현이나 어른들의 가르침에는 외면이나 골동품으로 여겨 무시하고 불편한 마음을 안고 앞에서는 거짓 웃음으로 뒤돌아 서서는 눈흘기는 표정은 참으로 서글픈 세대가 아닌지, 내가 잘못 본것은 아닌가 ?
< 파란 안경 파란 세상, 노랑 안경 노란 세상>이란 글에 미워하는 마음의 안경으로 보면 똑똑한 사람은 잘난척해 보이고, 착한 사람은 어수룩해 보이고, 얌전한 사람은 소극적으로 보이고, 활기찬 사람은 까불어 보이고, 잘 웃는 사람은 실없어 보이고, 듬직한 사람은 둔하게 보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의 안경으로 보면 잘난척 하는 사람은 똑똑해 보이고, 어리숙한 사람은 착해 보이고, 소극적인 사람은 얌전해 보이고, 까부는 사람은 활기차 보이고, 실없는 사람은 맑아 보이고, 둔한 사람은 듬직해 보인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로 어떤 안경을 쓰고 사람을 보고 있나 자문해 볼 일이다.
거울을 들여다 보는 정성과 심정으로 마음을 살펴 본다면. 물건을 고르는 정성으로 말과 행동을 거른다면, 질투와 시기만큼 배려와 양보의 나눔을 가진다면, 갖고 싶은 욕심만큼이나 베푸는 심정을 갖는다면, 설교하는 내용과 열정과 정성으로 솔선하는 행동이라면, 거창한 구호나 캠패인보다 작은 보람 으로 묵묵히 실천하노라면 이웃에서 지켜 보던 마음과 마음들이 그 동안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저런 갸륵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속단한 미안함을 안고 진심으로 존경하고 도전을 받는 마음들이 줄줄이 환한 얼굴로 돌아 왔으면 하는 바램으로. 잘못 본 눈이 제대로 보는 눈으로, 언젠가 모르게 비틀어진 생각을 바로 잡는 고백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박보명
약 력
자유문학 신인상. 북미주 동아일보 신춘문예 입상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원
미주기독교문인협회 회원
내 할머니세대의 표현법
도무지 따라가지 못할 속도의 변화속에 살고 있다. 시대 감각이 뒤쳐져 엉뚱한 오해를 사는 일도 생긴다. 옛날 할머니가 하시던 표현을 생각해내며 똑 같은 뉴앙스로 상황을 묘사했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오도가도 못하고 구석으로 몰린다. 말조심 하란다.
어릴적 우리집엔 고종 사촌언니가 함께 살았다. 할머니의 외손녀다. 고모네 집안이 어려워 언니만 우리집에 얹혀 살게된 상황이었다. 당연히 할머니의 친손녀인 내가 집안의 귀염둥이가 돼야 하는데 귀염둥이는커녕 언니의 후광에 가려 존재조차 있는둥 마는둥 찬밥 신세였다.
그건 언니의 미모가 특출났던 때문이라 생각 들었다. 내가 봐도 언닌 이쁜 얼굴이다. 그 당시 남산 초등학교 6학년이던 언닌 공부도 잘했다. 공부로 따진다면 청계 초등학교 3학년인 나도 언니만 못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얼굴이다. 언니만 못하단 표현도 필요하지 않은, 아예 비교를 할 수 없는 정도의 차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내 얼굴이 그 정도로 평가 받았던 시절이다.
할머닌 언제나 언니만 품에 끼고 산다. 애비 일찍 죽고 에미마저 떨어져 외가댁에 얹혀사는 어린 것 신세가 너무 불쌍하단다. 먹는것, 입는것, 뭐든 언니가 우선이고 마치 공주마마 모시듯 차별대우가 심하다.
그 땐, 나도 사정상 엄마 아빠 떨어져 할머니한테 옮겨 살던 시기다. 위로 오빠가 둘 있지만 엄마 아빠만큼 의지되는 존재는 아니다. 게다가 오빠들은 할머니에게 내가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사는지 알지도 못한다. 더구나 미모에 얽힌 차별이란걸 짐작인들 할 수 있겠나 말이다.
그 당시 문간방에는 공군아저씨가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어느날 저녁, 집에 돌아온 공군아저씨가 언니에게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건넨다. 무슨 특별한 날도 아닌 것 같은데 선물이라니 당연히 궁금했다. 선물을 뜯는 언니의 손이 참 이쁘기도 했다. 넙적한 필통이 유행이던 때, 좁고 작은 필통이다. 앙증스럽고 이쁘다. 나도 갖고 싶었다. 이어지는 공군아저씨 왈, 희자 닮은 아주 이쁜 필통을 샀다나. 저런 멀대 같은 자식, 아니, 애들이 둘이 사는데 하나만 사오다니, 정신나간사람이네. 내 생각엔 진짜 정신병자처럼 보였다. 나이 든 어른이 어떻게 그런 차별을 할 수 있는가고 초등학교 3학년 어린애가 어른들을 비판하는 모양새였다. 정말 한심한 사람 이라고 깔보기까지 했다. 물론 내가 뒤 늦게 합류한 이유도 있다. 그렇다 해도 애들인데. 더구나 난 언니보다 세 살이나 아래가 아닌가.
그날밤, 할머니는 언니를 끼고 누워서 하는 말, 에구 우리 희자 사내놈들이 가만 놔 두겄나. 양귀비가 왔다가 울고 갈 이 미모를 어떤놈이 채 갈지……….
어린맘에도 이쁜여자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말로 알아들었다. 사내놈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미모를 나도 갖고 싶었다. 내평생을 돌아보면 어느남자 하나 내게 추근덕 대는 일이 없었다. 내가 생각할 땐 여인의 미모를 칭찬하는 말로는 아주 최고의 표현이란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래서 어느누구에게도 해 주지 않던 표현이다.
지인의 아들 결혼식에서 그만 그 아끼던 말을 후하게 사용했다. 내 나이도 이젠 옛날 할머니 나이가 가까왔고, 샘이 나서 한 번도 입밖에 내지 않던, 내가 그렇게 듣기를 갈망하던 말을 진짜 너그러운 마음으로 곁에 있는 중매쟁이에게 선심쓰듯 표현했다. 아니, 이댁 며느님 전직이 혹시 탈랜트? 저런 미모에 어디 사내놈들이 가만 놔 뒀겠나. 정말 굉장한 미모네. 이어지던 중매쟁이의 사실은 그래요 란 말을 내가 하는 칭찬에 동의한다는 뜻인줄만 알았다.
세월은 흘러 50년이 지났으니 할머니 흉내를 내어 표현 해 본다면 큰 낭패가 날 수도 있다 그 옛날의 아이들과 요즘의 아이들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요즘 세상엔, 뛰어난 미모에, 나이 30이 가깝도록 혼자라면 그야말로 사내놈들이 가만 두질 않아서 온전치 못할 수도 있을거란 현실을 난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당연히 온전하다고 믿고 아끼던 칭찬을 할머니 식으로 했다가 많은 사람들 얼굴이 파래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혼절할 만큼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이 세상. 무슨수로 쫓아 가며 살아야 할지,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하다. 결국 할머니가 표현했던 그 칭찬은 내 시대에선 욕이 된다는 사실이다. 한 번 들어보고 싶었던 그 표현을 다시는 칭찬의 도구로 삼을 수가 없게 된 현실이 내게는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노기제
약 력
문학세계 수필 당선
한국수필 등단
재외동포재단 문학상 우수상
부활을 꿈꾸는
비오는 고속도로 한 켠,
느릿느릿 자동차 한 대, 견인차에 끌려간다
뒷덜미 잡혀가는 뭉개진 삶
충혈 된 과거가 두 눈에 껌벅이고
비 젖은 낡은 발뒤축
동그라미 두 개가 아스팔트를 끌고 간다
양심 추월했던 위태로운 욕망
배수구에 흘려 보내며
서슬 퍼렇던 클랙슨 비명도 잠재우고
신열 든 한 세상
앞으로만 내달았던 생애가
지금 들 것에 실려 간다
쉼 없던 날들의 긴장과 곤두서던 날카로운 신경 줄
세상에 미끄러지며 곤두박질쳤을까?
짓이겨진 상처 아린 혀로 핥으며
가뭇없이 사라질 어둠 속에서도
부활을 꿈꾸고 있을까?
내일을 알 수 없는
막막한 공중 위에서의 일단 멈춤
붉게 번져 가는 눈시울을 빗물이 헹궈낸다
난폭한 생존 앞에서
잠시 궤도 이탈한 헐거운 육신 위로
참 선한 빗방울 퍼지고
온 몸으로 덜그럭거리는 저 신음소리
시간이 움켜 쥔 생명 풀어놓는 고단한 표정 위로
꽃잎 같은 바람 몇 개 펄럭이고
어디선가 피비린내 난다
장태숙
약 력
창조문학등단
제6회 창조문학상 수상
미주한국문인협회 사무국장
백내장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보고보고
옆에 있어도 또 보고
검은 눈이 하해 지도록 보았을까
이제는
만져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다 아는데
저 멀리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아니
그곳에서 바람만 불어와도
이제는
다 아는데
당신이라는 것
꼭 수술을 해야 합니까.
정어빙
약 력
창조문학 신인상 수상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 사람들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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