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 돼볼까
아니면 마릴린 먼로?
마켓마다 주황색 호박이 전시되고 주택가에는 거미줄에 유령의 모습이 하나 둘 등장하는 걸 보며 또 핼로윈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핼로윈은 미국의 어린이날. 10월의 마지막 날을 어린이들은 1년 동안 손꼽아 기다린다. 재미있는 의상을 입고 친구들과 캔디를 얻으러 다니는 것은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가 아닐까.
작년보다 한 뼘 이상 몸이 커진 것은 물론 지난 해 입었던 라이언 킹 의상을 더 이상 입고 싶어하지 않는 자녀들을 위해 할로윈 의상 샤핑에 나설 때가 됐다. 하지만 핼로윈 의상 쇼핑이 어린이들만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핼로윈에 캔디를 얻으러 다니는 것은 어린이들의 몫이지만 어린이 같은 맑고 깨끗한 심성을 가진(?), 조금은 철딱서니 없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인가.
특히 핼로윈 밤 샌타모니카 대로에 모여드는 기괴한 의상의 주인공들을 보면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어디에서 저렇게 특이한 옷을 구해 입고 거리로 뛰쳐나왔는지 궁금해진다. 구입처만 안다면 빠지지 않고 온 동네 시선 총 집중하게 차리고 나갈 텐데.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리는 법. 정말 튀는 의상이 많은 핼로윈 의상 전문점을 발견했다. 노스할리웃에 위치한 ‘웨스턴 의상 컴퍼니’(Western Costumes Company)가 바로 그곳. 이곳은 평소에는 일반에게 문을 열지 않지만 일년에 4주간 핼로윈을 앞두고 핼로윈 의상을 빌려주고 있다.
핼로윈의 퍼레이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영화 주인공들의 의상과 가면, 가발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어 핼로윈을 앞둔 요즘,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1912년부터 할리웃 영화의 의상을 담당해 왔던 웨스턴 커스튬은 할리웃의 숨겨진 보배다. 그들이 담당했던 영화의 리스트를 살펴보며 자신들의 역사가 할리웃 영화사와 동의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지난 90년 동안 무성 영화 시대, 첫 번째 아카데미 시상식, 칼라 영화 시대의 개막을 함께 해온 웨스턴 커스튬은 현재도 의상을 통해 영화사의 한 획을 엮어 가고 있다.
그들이 의상을 담당한 영화는 1915년부터 십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데보라 카 주연의 왕과 나, 마릴린 먼로 주연의 뜨거운 것이 좋아,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 클레오파트라, 사운드 오브 뮤직, 대부, 늑대와의 춤을, 킴 베싱어가 까만 우단 케이프를 우아하게 입고 나왔던 LA 컨피덴셜, 타이태닉, 매트릭스 시리즈 등 무려 340편에 이른다. 오즈의 마법사 제작에도 참여해 그 유명한 주디 갈란드의 빨간 구두를 만들기도 했다.
12만평방피트가 넘는 웨 하우스 안에는 7마일의 옷걸이에 걸린 300만점의 수많은 의상 외에도 신발, 모자를 갖추고 있다. 의상 디자인, 소도구 준비, 염색, 세탁, 수선 등의 서비스는 물론 전 세계 최대의 의상 연구 도서관이자 찾기 힘든 빈티지 헝겊 스토어, 고급 남성복 수선, 구두 맞춤 서비스도 겸하고 있다.
그렇게 소장품이 많으면서도 웨스턴 커스튬 컴퍼니는 새로운 의상 구입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구매 담당자들은 빈티지 스토어를 뒤지기도 하고 촬영과 제작이 끝난 영화 프로덕션과 방송국을 종횡무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엄청난 물량과 종류의 의상을 갖추고 있다 보니 영화와 TV, 연극의 의상 담당자들은 가장 먼저 이곳에 들리게 되는 것. 브로드웨이 투어 팀들의 의상 역시 거의 이곳에서 담당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임대되는 핼로윈 의상은 무얼까. 여성의 경우 할로윈 퍼레이드에서 가장 눈에 자주 띄었던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백설 공주의 의상일 것이라 짐작했지만 이것은 오해. 뜻밖에도 스파이더 우먼과 간호사 의상이 1위였다.
스파이더 우먼이야 까만 색 드레스에 망사 스타킹이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한다지만 간호원이라니 의외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남자들의 성적 환상에 대해 한 가지 알게 된 셈이다. ‘무기여 잘 있거라’ 등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 나왔던 간호원과의 사랑에 대한 동경 때문일까. 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적 환상 가운데 하나가 하얀 캡을 올려 쓴 간호원에게 주사를 맞는 것이라니 후후, 우습다.
남성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의상 가운데 하나는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번쩍번쩍 빛나는 장식이 붙은 하얀색 무대 의상이라고 한다. 여기다가 머리까지 뒤로 넘기고 구레나룻 수염을 쫙 붙이고서 건들건들 걷는 남자들, 금년에도 샌타모니카 대로에서 참 많이 마주치겠지.
로저 이벌트의 영화 ‘인형의 계곡 너머’(Beyond the Valley of the Doll)에 나왔던 Z Man 역시 그 남성적 매력으로 여러 남자들이 많이 찾는 의상이라고.
여자가 되보고 싶다는 환상 한번 해보지 않은 남자가 어디 있을까. 분홍색, 아이보리 색, 색깔도 고운 드레스와 왕관, 화관 등 도저히 여자 몸에 맞지 않을 만한 커다란 드레스는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남자들이 챙겨 입고 샌타모니카 대로의 먼지를 모두 휩쓰는 의상들. 이밖에 이탈리아 베니치아 스타일의 깃털로 화려하게 장식된 가면도 여러 종류 쇼룸을 장식하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의상은 디즈니를 비롯한 영화 주인공들의 것. 슈퍼맨, 닌자, 카우보이, 원더우먼, 인어 공주, 포키몬 등 그 목록은 영화의 수만큼 끝도 없이 이어진다.
올해는 영화의 영향인지 해적의 의상이 가장 인기라고 한다. 거북이, 풍뎅이, 무당벌레 등 동물 형상의 의상 역시 항상 수요가 많다. 어릴 적 꼭 한번 만나고 싶어하던 천사의 날개도 있다.
금년 핼로윈에는 자녀들 분장한 것 멀뚱멀뚱 바라만 보지 말고 저 천사 날개를 달고 직접 퍼레이드에 참여해 보자. 트로이의 패리스 왕자, 헬레네 왕비가 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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