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기백 (전 의회도서관 한국과장)
나와 내 나라의 이익과 성숙과 위신을 강조코자 이 글을 썼다. 여기 쓰는 것은 중국을 꼬집어 비난코자, 그리고 그들의 좋은 점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중국 북쪽에 있는 세 곳인 산동성, 만주 그리고 조선을 동북삼성 또는 동삼성이라 한다. 청말 중당(총리)이었던 이홍장이 이 세 곳을 겸임해 그의 직속으로 다스렸다. 이는 이홍장이 우리나라의 실권자란 말이다. 이게 이른바 이홍장의 ‘조선책’이다. 그의 심복인 24살 풋내기 원세개가 이 ‘조선책’을 실시하려 조선에 와 우리 임금이 있는데도 총독으로 갖은 행패를 부렸다. 임금을 때리려까지 했다. 그러나 이른바 한다한 선비들은 내나라 임금에게가 아니라 이 애송이에게 붙어 아부했다. 맞서 싸우라 한 서재필을 빼놓고 우리 겨레 가운데 그 누구하나 중국의 부당성과 이자의 행패에 맞선 사람이 있단 말 오늘까지 못 들었다.
조선총독 명함을 찍어 돌리면서 오만하게 군 원세개를 주한 외교사절단이 이홍장에게 부당성을 들어 항의했다. 이홍장은 “그 자가 나이 어려 그러니 타이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남인 미국사람 데니가 의분이 있어 이홍장과 원세개의 행패를 온 세상에 폭로했다. 그는 이홍장이 우리 나라에 보낸 사람인데 말이다. 이럼에도 이날도 이런 중국을 우리는 숭상한다.
중국은 우리국기 ‘태극기’를 ‘고려 속국기’라 했다. 데니가 살아난다면 이 국기를 보고 뭐라 할까. 그는 우리의 중국 속국설을 부인, 역설했다. Percival Lowell은 그의 저서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p.86)에서 구한말의 우리를 보고 ‘중국원숭이’ 노릇 해 중국사람만 그들 앞에 ‘대대하게’ 굴게 한다(In copying, therefore, the customs of China, the Koreans thought it fine to ape its pump)고 했다. ‘중국 속국기’를 국기로 자랑하는 우리다. 그가 오늘 있다면 우리를 보고 뭐라 할까. 난 중국 원숭이 노릇 안하고 그들이 우리 앞에 ‘대대하게’ 못 굴게 한문과 한자 안 쓰고, 한문 책 없이 도서관 장서 마련했고, 국기를 바꾸자 역설하지만 열이면 열 다 이런 말한다고 등을 돌린다. 우리는 아직 멀었다. 국가와 독립과 자주가 뭔지 알 때까지는.
이러면서 이젠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말로 ‘동북삼성’을 재탕한다. 그리고 고구려를 중국 역사로 편입한다 야단법석이다. 세상이 다 우리나라를 ‘고려’(Korea)라 한다. ‘Korea’란 말, 이는 ‘고려’다. 그런데 우리만 고려라 안 하고 조선, 또는 한국이라 한다. 영어로는 덩달아 Korea라 하면서. 이는 모순이 아닐까. Dr. Johnson, 그리고 초정 박제가는 “말과 글이 같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마치 “구거”를 ‘국어’라 하듯 우리나라 이름도 말과 글이 다르다. 우리도 우리나라를 ‘Korea’라 한다면 우리말로도 우리나라를 ‘고구려’ 또는 ‘고려’라 했어야 하지 않을까. 만일 이렇게 했다면 어떻게 중국이 이제 와서 ‘고구려’가 중국역사라고 할 수 있을까.
보라, 고려 태조 왕건이 “고구려의 후손이기에 나라 이름을 ‘고려’라 했다” 안 했는가. 그리고 중국사람이 아직도 우리 보고 “Kaoli”(고려)라 않는가. ‘동북공정’은 다 우리 스스로 만든 함정이다. 왜 내 나라 이름을 중국이 지어준 이름인 조선, 그리고 한국이라 해야 할까. 태극기가 ‘중국 속국기’라 해도 자주 독립국가로 자처한 우리가 속국이란 치욕인 줄 모르니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우리 임금이 있는데도 원세개가 총독으로 왔어도 우리나라가 중국 속국임을 자부했으니 말이다. 연암과 초정의 말대로 자지 않고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내가 이곳 우리대사관 사료실 고문으로 있을 때 펴낸 ‘미의회 의사록 요약집’(1878-1949) 머리말에 이홍장의 ‘조선책’ 예를 들어 ‘경중’ 그리고 ‘화일’(일본과의 화친)해야한다 했다.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말을 우리 식자들과 나눠보면 모두 딴 전을 본다. 이름난 학자와 정부와 사회 지도자와 외교관 일수록 그렇다. 왜 지나간 굴욕의 역사를 청산 못하고 이에 매달려 뒤만 돌아다보고 살까. 이래야 민족혼 있다, 애국한다, 그리고 학박사라 행세하니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중국이 조선 독립 선언한 다음 독립국과의 외교관례로 대사를 우리나라에 보내니 우리 임금이 그의 숙소에 가 절했다. 이리 안 하면 신하들이 사사건건 ‘대의명분’을 걸고 대드니 임금도 어찌할 바가 없었다. ‘독립’이 뭔가 모른 우리가 아니었던가 한다. 이덕무(1741-1793)는 그의 ‘청장관전서’에 “날은 이미 대낮인데 아직도 우리는 꿈속에 잠자고 있다” 했다. 몽매하지 않은 바에야 어떻게 이렇게 아직도 꿈속에 노닐까. 겨레여, 깊은 단잠에서 어서 깨어나자.
자신있게 말한다. 만일 이 나라에서 한문과 유교와 태극기 등 중국의 탈을 벗는 운동을 일으키면 우리에 대한 그들의 위상이 달라진다고. 왜냐하면 우리의 위치가 그들에겐 더 긴박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말한다. 만주와 중국을 치기 전에 우리나라를 정복했다. 그리고 ‘일청전쟁’도 그렇다. 만일 우리와 같은 퉁구스족인 만주와 형제의 의를 맺고, 그리고 고려말 신숙주의 유언대로 일본과 화친했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Historicity’로 알려져 있는 ‘역사반복설’을 잊지 말자.
워싱턴 포스트 보도(10/8/03)에 새로 취임한 미 UN대사가 “한반도 문제는 뭐가 됐든 일본 생존권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이 뭘 말하는 걸까. 나 같은 하급 관리도 학술회지에 실린 글과 연설문, 이른바 ‘Clearance’라 해 승인 절차를 받는데 하물며 대사의 연설문에 이르러서야.
보라, ‘7대 한’을 내 걸고 한족을 노예 삼아 그들 한을 푼 만주족을.
그 까짓 한문 글자 버리고, 전쟁으로 중국문화 물리치고, 로마자로 국어 삼고, 그리고 미국과의 전쟁 끝나자마자 총칼로 국경에서 중국을 몰아낸 월남을. 그들의 원조 받아 미국과의 전쟁을 치른 그들이건만, 그리고 중국과의 상거래 우리와 견줄 바 아니지만 이제도 중국 국경에 군사를 배치, 중국을 경계한다. 우리가 언제 중국 경제에 붙어살았나.
전 국방장관 맥나마라는 그의 자서전에서 월남이 중국을 싫어한다 했고, 그리고 이런 월남을 존경한다(해리만 대사도)했다. 그러나 임진난 때 유성룡 장군을 우리 임금 앞에서 채찍으로 때린 이여성을 우리는 도왔다 그를 ‘대의명분’으로 섬겼고, 만주에 있던 ‘책문’과 압록강변 우리 땅을 고스란히 빼앗겼다. 만주와 월남의 예는 그만두고라도 연암의 말대로 싸우지도 않고 우리 땅을 다 잃었다.
이 날도 중국어선이 남해 앞 바다에 와 고기 잡고 행패를 부려도 한다하는 우리 외교관 하는 말이 중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문제를 안 일으킨다 한다. 왜 해군이 있는 걸까. 남의 나라 배가 자기나라 해안선에 얼씬도 못하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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