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가 판친 섹스물‘충격’
특 징
장편 253편중 23편이 성행위 주제
과감한 노출, 근친상간등 다뤄
“배우가 실연하는 날 머잖다”
새도 하고 벌도 하는 것. 지난 9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된 올해 제29회 토론토 국제영화제(TIFF)의 주제는 섹스라 해도 될 만큼 이번 영화제에는 성을 묘사하고 탐구한 영화들이 유난히 많이 출품됐다. 출품된 장편영화 253편 가운데 섹스를 다룬 영화는 모두 23편. 노아 코완 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도 “올해는 육체가 판을 치고 있다”고 이같은 사실을 시인했다.
대뜸 두 남녀가 호텔 방에서 옷을 벗고 사실적이요 변태적인 섹스를 하는 모습은 개막일 내가 처음 본 오스트리아 영화 ‘안타레스’(Antares)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영화를 비롯해 남녀 배우들이 자신의 성기를 전면으로 노출한 영화가 한두 편이 아니어서 나중에는 그것이 하나의 영화제 경험이 되고 말았다.
인간 성행위의 체위가 선교사형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준 알프레드 킨지의 삶을 그린 ‘킨지’(Kinsey)도 섹스영화. 킨지역의 리암 니슨이 오스카상 후보로 거론된 이 영화는 매우 점잖은 섹스영화다. 영화제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됐던 섹스영화가 영국의 마이클 윈터버틈이 감독한 ‘9개의 노래’(9 Songs)였다. 영화라기보다 젊은 남녀의 노골적인 섹스를 카메라로 찍어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기록필름이라고 부를 작품이다.
상영시간 65분 동안 두 남녀가 밥 먹고 약 먹고 록 콘서트에 가는 것 외에 나머지 시간은 섹스로 때우는데 온갖 형태의 성행위와 자위행위 그리고 성기와 삽입모습 등을 적나라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가 처음 영국에서 상영된 이래 과연 이것이 예술이냐 외설이냐는 논란에 휩싸였던 만큼 일요일 오전 상영 극장은 기자와 영화 관계자들로 초만원을 이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성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왜 내가 저 두 사람의 섹스를 계속 봐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 못지 않게 성기 노출과 성행위 그리고 여성의 몸에 가하는 가혹한 행위 등으로 논란이 된 영화가 프랑스의 카트린 브레야 감독의 ‘지옥의 해부’(Anatomy of Hell-영화평 위크엔드판). 늘 여성의 성의 본질과 정체를 파고드는 브레야의 여성의 육체와 성의 찬가 같은 영화다. 또 다른 프랑스 영화 ‘나의 어머니’(Ma Mere)는 어머니와 아들이 변태적 성행위를 벌이는 일종의 섹스 지침서. 어머니(이자벨 위페르)가 다 큰 아들에게 성행위에 관해 지도를 하면서 사도 마조키스틱한 어두운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손가락 삽입과 자위행위와 집단섹스 등 가공할 장면이 많아 벌린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스웨덴 영화 ‘내 마음의 구멍’(A Hole is My Heart)은 아마추어 포르노영화 제작자와 그의 아들 그리고 포르노 배우 등 4명의 남녀가 외부와 차단된 아파트에서 변태적인 섹스를 하는 충격적인 영화다. 이들 영화가 섹스를 집요하게 탐색했다면 존 워터스의 섹스 풍자영화 ‘더러운 수치’(A Dirty Shame-영화평 위크엔드판 참조)는 만화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들 섹스영화의 대부분은 유럽 작품이다. 유럽 감독들은 섹스를 자연스런 인간 행위로 여기는 반면 미국인들은 섹스에 대해 유난히 보수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어 나온 결과다. 미국영화는 폭력, 유럽영화는 섹스의 등식이 이런 데서 나온다.
이들 섹스영화는 그러나 포르노영화가 아니다. 코완 위원장은 “포르노영화가 성적으로 인간을 자극시킨다면 이들 섹스영화는 인간을 지적으로 자극시킨다”고 말했다. 도대체 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우리는 성을 두려워하고 또 그것을 금기시하는가 하는 문제를 캐묻고 있는 것이다.
유럽 예술영화 감독들은 성의 묘사를 둘러싼 금기사항에 대해 계속해 도전하고 있는데 결국 이들은 인간관계에 관해 보다 깊이 생각하기 위해 섹스를 실험도구로 쓰고 있다고 코완 위원장은 말했다. 그는 이어 “언젠가 배우들이 ‘9개의 노래’에서처럼 진짜로 성행위를 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람기
안락사 원하는 전신마비 남자 그린
스페인 작품‘마음 속의 바다’감동
이번 영화제 출품작을 주제별로 구분할 때 섹스영화가 가장 많았다면 자전적 영화와 정치영화 그리고 아동과 동물에 관한 영화들도 꽤 많았다.
정치영화로 흥미 있었던 것은 션 펜 주연의 ‘리처드 닉슨 암살’(The Assassination Richard Nixon). 소박한 꿈을 지닌 서민층 남자가 꿈이 깨어지면서 그 책임을 닉슨에게 물어 닉슨 암살을 시도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주인공이 비행기를 납치해 백악관에 추락하려고 계획하는 얘기가 9.11테러를 연상케 해 섬뜩하다.
히틀러의 지하 벙커에서의 마지막 10일을 그린 독일영화 ‘몰락’(Downfall)도 강렬하고 사실적인 정치드라마. 브루노 간츠가 열연하는데 이 영화는 히틀러를 동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다.
정치영화가 아닌데도 정치영화 못지 않게 반 부시적인 것이 ‘지금이 때가 아닌가요!’(Isn’t This a Time!). ‘굿 나잇 아이린’을 부른 왕년의 명 포크송그룹 위버스의 재회를 그린 기록영화다. 그들은 부시를 빗댄 ‘죄인’(Sinner)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미국은 지금 갱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면서 “모두 참여해 갈아치우자”고 호소하고 있다.
내가 본 45편의 영화 중 가장 감동적인 것이 스페인의 ‘마음 속의 바다’(The Sea Inside). 목 아래가 마비된 남자가 자신의 안락사를 위해 투쟁하는 눈물과 웃음이 있는 얘기로 하비에르 바뎀의 눈과 음성과 얼굴 표정의 연기가 오스카상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지는 영화가 프랑스의 ‘지금 당장’(Right Now). 젊은 파리지엔과 은행강도 아랍계 청년간의 순애보로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를 연상케 한다. 흑백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 촬영이 고혹적이다.
중국 지하 감독 출신인 지아 장-케의 ‘세계’(The World)는 베이징의 세계명물 축소판 위락공원서 일하는 무희와 경비원간의 사랑과 삶의 드라마. 인간관계와 중국 사회의 실상을 간파한 통찰력 있는 영화다. 세네갈의 원로 우스마네 셈베네(81)의 ‘물라데’(Moolade)는 성기외피 제거 의식을 피해 도망 온 4명의 소녀를 보호하는 의지 강한 중년부인의 드라마로 내적 강렬성과 외적 미를 고루 갖추고 있다.
대만의 명장 후 시아오-시엔의 ‘카페 빛’(Cafe Lumiere)은 일본의 오주 감독에게 바치는 헌사로 촬영이 매우 아름다운 고요한 영화다. 순전히 재미면에서는 벨기에 작품 ‘알츠하이머 케이스’(Alzheimer Case)가 으뜸. 알츠하이머 증세가 있는 나이 먹은 킬러의 박진감 있는 액션 스릴러이다.
기대가 컸던 왕 카-와이와 스티븐 소더버그 및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사랑의 3부작 ‘에로스’(Eros)는 왕 카-와이의 것 하나만 로맨틱했다.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화제작 ‘나쁜 교육’(Bad Education)도 기대만 못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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