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한 부자가 몸이 아파 병원에 갔다. 먹고사는 걱정이 전혀 없는 그는 이상하게 식사를 하면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호소했다. 특별히 고민거리가 없는 부자의 만성질환에 의사도 어리둥절했다. 다른 부자는 자주 가슴이 답답하게 죄어 오는 느낌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자 의사를 찾았다. 불행히 이 의사도 부자의 심한 가슴앓이의 원인을 금방 알아내지 못했다.
이러한 통증에 괴로워하는 환자가 비단 이들 부자에 국한되지 않았다. 다른 부자들도 비슷한 병으로 병원을 찾았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이 병은 남미 특히 멕시코의 민속 질환으로 분류된다. 병명은 ‘엔비디아’(envidia: envy). 의학적으로는 극심한 부러움, 질투, 욕망 등에 의한 질환이다.
남이 잘 된 것을 보고 배아파하는 것도 병이라면 병이지만 흥미를 끌만한 병은 아니다. 엔비디아는 ‘사촌이 땅을 사 생기는 배탈’이 아니라, 부자들과 같이 남의 부러움과 질투를 사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증세에 초점을 맞춘다. 아이를 잘 낳는 여자가 임신했다고 떠벌리다 애 못 낳는 여자의 시기를 사 유산하거나 출산 도중 사망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둘째 아이를 임신한 뒤 첫째 아이를 소홀히 하면서 첫째 아이가 뱃속 아이를 질투해 태아에 해를 끼친다는 이야기와 통한다.
엔비디아는 가슴앓이, 근심, 화병, 고열, 감기, 소화불량, 깜짝 놀라기 등의 증세를 보인다.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됐는데 왜 남들의 질투로 몸이 아파야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하튼 몸이 아픈 것은 사실이다. 전문가들도 이에 대한 정확한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열등 콤플렉스’(inferiority complex) 또는 ‘우등 콤플렉스’(superiority complex)라는 용어가 있지만 이것으로도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질투가 하나로 뭉쳐 부자의 영혼을 통해 몸으로 침투해 발병한다는 신비주의적 해석까지 등장한다.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엔비디아는 사회적, 집단 심리학적, 정신적, 영적, 종교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질환일 것이란 추정만이 있을 뿐이다. 발병 경로는 정확히 모르지만 환자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이 병의 어두운 면이다. 치유가 어렵다는 뜻이다. 여기서 ‘나눔’이 일종의 민간요법으로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멕시코 사람들은 유난히 인심이 좋고 주위사람들과 나누기를 좋아한다. 자기 것이라도, 넉넉하지 않더라도 이웃과 함께 하는 우리들의 미풍양속과 흡사하다.
엔비디아를 확대 해석하면 ‘오늘의 미국’을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세계 유일무이의 초강대국인 미국이지만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과거보다 높다고 장담할 수 없다. 다른 복잡한 요인들은 일단 제쳐두고, 지구촌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질투만을 고려한다면 미국은 지금 원하든 원치 않든 엔비디아를 앓고 있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왜 우리를 질투하는가” 라는 불평도 멕시코 부자들의 볼멘소리와 비슷한 음색을 띤다.
엔비디아는 반드시 환자의 잘못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환자 스스로의 행동으로 병을 낳게 할 수 있다. 엔비디아는 앓는 사람과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동일한 병이다. 미국이 보다 겸손해지고 어려운 이웃 나라들에게 베푼다면 이들의 질투가 오그라들면서 병이 나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한인사회에도 부자들이 상당수다. “나는 엔비디아를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며 무관심해 할 것이 아니다. 엔비디아 환자가 소수라도 이미 사회 전반이 질투와 시기의 늪에 빠져있을 수 있다. 커뮤니티가 건강하지 못하면 그 후유증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단한 부자가 아니라도 사회에 갈린 엔비디아의 토양을 중화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다. 한인서점이 청소년 선도단체인 ‘젊음의 집’에 서적 3만5,000권을 기증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바로 잡고 희망을 심어 주는 일에 동참하겠다는 뜻에서다. 중요한 것은 액수가 아니라 사랑이다.
꼭 소화불량이나 가슴앓이를 하지 않더라도, 그토록 바라된 부자가 됐는데도 예전보다 덜 행복하다면 엔비디아 예비환자다. 힘들어하는 이웃을 돌아보고 자신과 사회 모두를 행복하게 할 일을 찾아 나설 때다. 자신의 일부를 내놓아 공동체를 정화하는 일이 보람의 극치임을 깨달을 때다.
박 봉 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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