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여름학기 강의가 끝나고 이번 주부터 가을학기 강의가 시작되었다. 매 학기 강의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엇갈리는 감정들이 교차된다. 개학 전 강의를 준비하고 첫 시간 강의실을 들어설 때면 매번 이번 학기는 어떻게 강의를 진행해 나가야 할까하는 생각 때문에 약간의 긴장감과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한편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고 새로운 얘기들을 풀어나간다는 기대감과 설레임으로 들뜨기까지 한다.
연애결혼을 하여 한번도 맞선을 본 적은 없지만, 젊은 시절 미팅 경험은 더러 있으니, 어쩌면 미팅이나 맞선을 보러 가는 기분도 이런 게 아닐까? 어떤 사람이 나와 있을까? 서로 얘기가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일까? 그러나, 여러 번 미팅을 하거나 맞선을 본 사람이면 대게 경험했듯이, 그러한 기대감은 ‘혹시나’에서 ‘역시나’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다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어도 이번에는 상대방에게 퇴짜를 맞기가 일쑤다. 세상살이가 어쩌면 그런지도 모른다.
내 강의를 청강한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학기가 끝나고 나면 늘 미팅에서 파트너가 맘이 들지 않거나 퇴짜를 맞은 듯한 바로 그런 기분이다. 왜 사람들은 나를 알아주지 않는가? 왜 이렇게 중요하고 가치있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아, 정말 얘기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이렇게 힘이 드는가? 이런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원망하다가도, 나는 과연 강의를 철저히 준비했는가? 내용 전달에 실수는 없었는가? 진행은 매끄럽게 되었는가? 한 학기 동안 참석자들에게 별로 공감이 되지 않는 말들을 혼자 실없이 떠벌린 것은 아닌가?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면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밀려온다. 괜히 흥분하고 쓸데없이 목청을 높인 것이 부끄럽고, 또 입으로는 동서양 고전에 나오는 성현들의 가르침을 떠벌리면서도 정작 내 삶의 모습은 그들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니 위선자가 된 듯하여 자괴감을 느끼는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교육자와 성직자가 가장 위선자가 되기 쉽다고. 남들 앞에서는 ‘올바르라’, ‘착해라’라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기가 그렇게 실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리라. 언론인이나 문인들도 어쩌면 그런지도 모른다. 사회정의를 말하고, 인생에서 진선미의 가치를 추구하고 표방하면서도 실제 삶에서의 그러한 삶을 살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야말로 가장 위선자가 되기 쉬운 그런 어정쩡한 자리에 있다. 강의를 하는 내용이 주로 종교의 경전이거나 옛 성현들의 가르침이고, 게다가 한 종단의 포교사라는 직함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이렇게 신문에다가 글을 끄적이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학기 『논어(論語)』강의를 하면서 내내 마음에 걸리는 구절이 있었다. 바로 「里仁」편의 다음 구절이다;
군자는 의로움(義)에 깨우치고, 소인은 이로움(利)에 깨우친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차이는 ‘의(義)’와 ‘이(利)’라는 한 글자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의(義)’는 의로움이자 올바름이다. ‘이(利)’는 이익, 이로움이다. 유(喩)는 깨닫다, 기뻐하다란 뜻이다. 그러니 군자는 올바른 것을 깨닫고 기뻐하지만, 소인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알고 기뻐한다는 것이다. 「雍也」편「集註」에는 소위 利라는 것이 어찌 반드시 재화를 증식하는 것만을 말하겠는가? 사사로움으로 공정함을 없애고 자신에게 맞춰 자기편한대로 하여 무릇 天理를 해칠 수 있는 것이 모두 다 利(所謂利者 豈必殖貨財之謂 以私滅公 適己自便 犯可以害天理者 皆利也)라고 한다.
나는 과연 어떠한가? 이익을 위하여 사는가, 올바름을 위하여 사는가? 소인인가, 군자인가? 우리의 현실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은 이상일 뿐인가? 군자의 삶을 전하는 논어를 강의하고 듣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우리들의 인간관계는 올바름을 추구하는 쪽으로보다는 이익을 추구하는 쪽으로
기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가? 利(이익)과 義(올바름) 사이에서, 소인과 군자 사이에서 방황하며, 부끄러움과 당당함, 안타까움과 감사,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면서도, 이미 ‘혹시나’하는 기대가 ‘역시나’로 끝날 줄 알면서도, 매번 그렇게 또 시작하는 것이 삶이런가? 이번 학기에는 ‘혹시’ 어떤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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