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들여다 본 신문에서 어느 주의 한인회장 자리를 두고 자칭 한인회장이라며 싸움을 하는 기사를 읽었다. 내용은 읽을수록 어처구니가 없고 가관이었다. 속언에 처녀가 임신을 해도 할 말이 있다는데 하물며 명색이 자칭 한인회장인 두 분 남정네께서 싸우는 이유가 왜 없겠는가? 이유가 어쨌거나 남정네들이 하는 일이 너무 꼴같잖아서 나는 불현듯 어려서 술래잡기를 할 때 아이들을 불러모으던 생각이 났다. 엄지손가락 하나를 높이 쳐들고 크게 노래를 불렀다. “한인회장 할 사람은 여기 붙어라. 남자는 저리 가고 여자만 붙어라.” 옆에서 냉면을 맛있게 먹던 남편이 내 노래를 듣고 슬그머니 비아냥거렸다. “암탉이 울면 아마, 집안이 망한다지.” “그런 시대감각 떨어진 소리 말아욧. 지금 시대는 암탉이 울면 황금 알 낳는다는 것 잘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해욧!” 남편의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여자가 암탉이라면 그 자칭 한인회장님 네는 수탉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서로 물고 뜯고 치고 받고 하는 꼴이 꼭 수탉들의 싸움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어릴 때 본 수탉들의 싸움이란 언제나 허세스럽고 꼴불견이었다. 대낮 시골 안마당에 물 뿌려 깨끗이 싸리 빗질해 놓으면 할 일 없는 악동들의 부추김에 휩쓸려 온 마당을 헤집고 다니며 흙먼지로 뿌옇게 흐려놓으면서 푸드득---툭탁, 꿱꿱 거리며 싸움질하던 수탉들의 몰골이란 보기만 해도 가관이었다. 그 허세스럽던 붉은 벼슬은 뜯어져서 피가 뚝뚝 흐르고 꽁지는 빠지고 날개는 축 늘어져서 목댓줄만 세워 꽤-액-꿱-꿱 거리다가 결이 난 주인집 아낙네가 부엌에서 설거지 구정물 한 바가지를 퍼서 홱-뿌리면, 그걸 뒤집어 쓰고 비칠거리며 도망가던 그 수탉들의 싸움질과 두분 자칭 한인회 회장님네들의 싸움질을 연결시킴은 내가 너무 무엄한 건가?
그래도 비칠거리면서도 얼른 물러가는 수탉들은 운 좋은 놈들이다. 눈알이라도 한 개 빠져서 꿱-꿱 거리다가는 암팡진 아낙네의 손길에 사정없이 목이 비틀려 뜨거운 물에 튀를 당한채 그날 저녁 바깥주인 술상에 소담한 안주거리가 되고 있음을 두분 남정네에게 일러주고 싶음은 지나친 나만의 노파심일까?
진정한 의미의 수탉 상은 어떤 것일까? 진짜 수탉이라며 여명이 비쳐오는 동녘을 향하여 새날을 알리는 울음을 울어야 한다. 정말 진정한 새날을 여는 기수임을 자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칭 회장님네 싸움질은 때 없이 대낮에 꿱꿱 울어대는 수탉들의 소리로 밖에 안 들리니 불길하다. 촌로들은 대낮에 수탉이 울면 흉조라고 들고 다니던 지팡이로 내리치셨다. 이 흉조로 인한 불길한 예감은 나만의 예감일까? 아니다. 한인교포 모두가 느끼는 걱정일 것이다. 두분 자칭 회장님
네들께서 끝까지 단 위에서 안 내려서겠다는 그 모습을 볼 때 나는 어렸을 때 우리나라에서 들었던 노래자랑 시간이 생각났다. 노래자랑 시간에 후보들이 올라와서
노래를 부르다가 박자나 음정이 틀리면 심사위원들이 ‘땡’하고 종을 치고 그 후보는 떨어지게 되어있기 때문에 부리나케 단을 내려가 버리낟. 어느 날, 어떤 남자후보가 올라와서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노오란 샤스 입은 말 없는 그 사람이 ---”
하는데 그만 ‘땡”하고 종이 울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 남자후보는 계속해서 “땡 쳐도 나는 좋아 끝까지 부를 테야---”하는게 아닌가. 그 때 심사위원과 청취자는 모두 폭소가 터지고 말았다. 그 후보는 애교스럽고 재치있는 구석이라도 있었지만 지금 자칭 한인회장인 두분 남정네의 몰골은 어떠한가? 교민들이 자격도 없으니 둘 다 내려오라고 수도 없이 종을 쳐도 막무가내기로 버티고 있는 꼴이다.
들을 줄 아는 귀와 툭툭 털어 버리고 씨-익 한번 웃고 내려올 줄 하는 조금은 바보스런 듯한 여유가 그립다. 동양화의 흰 여백이 남겨주는 그런 무심한 듯한 그러나 감히 더러운 손으로는 만질 수 없는 그런 멋스러운 여유가 두분 남정네에게 있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철 없는 소녀처럼 꿈을 꿔본다. 두분 남정네가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참으로 탁 털어버린 마음으로 두 손을 마주 잡을 것을---. “그래. 친구여!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우리 화해하자. 정말 화해하자꾸나!” 그런 기쁜 소식이 신문에 실리는 날, 나는 두분 남정네를 위해 살찐 암탉을 잡아 소박한 자리를 마련하리라. 그리고 내가 두분께 보내는 갈채와 함께 암탉이 버릇 없이 울어댄 사과도 함께 하리라.
황근화
▲월간 순수문학 수필 신인상
▲제16회 해변문학제 백일장장원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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