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유권자 등록 없앤다’유권해석
선거는 룰(Rull)의 게임이다.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게임의 법칙이 작용해야 하는 경쟁이다.
제32대 워싱턴한인연합회장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주영진)가 회장 선거관리 시행세칙에 대한 새로운 유권해석을 10일 내렸다.
오는 11월20일 실시되는 선거부터 적용시킨다는 새 방침의 골자는 종전에는 유권자 사전 등록이란 절차를 거쳐야 했으나 올 선거부터는 선거일 당일 신분증만 지참하면 누구나 투표를 할 수 있게끔 한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유권해석의 근거로 몇가지 이유를 들었다.
우선 그동안은 선거일 15일 이전에 회원등록(유권자 등록)을 마친 자에 투표권이 주어졌으나 막상 선거 당일 각 후보측의 합의 아래 유권자 등록을 하지 않은 한인들에도 개방된 사례가 있다는 점을 꼽았다.
두 번째는 31대에 걸친 회장 선거를 치르면서 등록한 회원의 정확한 명단과 인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이 거론됐다.
셋째는 한인연합회가 회원 등록을 필한 자에게 회원증을 발급한 사례가 없어 회원을 증명하는 길은 오직 거주지 증명 ID로만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유권자 등록 문제는 역대 선거때마다 불거진 골칫거리였다. 그것은 유권자등록을 자진해서 하는 한인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각 후보자들이 품을 팔고 다니며 수백명에서 몇천명씩 유권자 등록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총회 절차 무시, 자의적 해석 비판
역대 선거 명부 유실, 은폐 의혹도 제기돼
당연히 많은 인력이 소요되는데다 그 과정에서 밥도 사야하며 상대 후보에 대한 험담이 쏟아지는 등 과다한 선거비용과 과열선거를 조장하는 한 요인으로 찍혀왔었다. 또 얼마나 많은 유권자 등록을 하느냐가 그 후보진영의 세를 보여주는 척도가 되기에 허위 및 이중등록의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
개정의 필요성은 대부분 공감하나 그럼에도 유권자 등록이란 선거절차가 바뀌지 않은 건 등록절차 없이 투표할 경우 이중투표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데다 총회에서 회칙을 개정해야 한다는 절차상의 번거로움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30대 한인회장 선거부터 본격적으로 컴퓨터시스템이 도입돼 회원등록을 전산화시킨데다 수만명이 입력된 자료가 남아 있어 이중투표에 대한 우려는 상당부분 해소되고 실제는 선거법 개정이란 형식적 절차만 남은 단계였다.
이번 선관위의 방침을 두고 그 취지를 떠나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먼저 총회라는 합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선관위가 자의적으로 시행세칙에 대한 유권해석을 내려 이번 선거를 이끌고 가려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이사회에서도 유권자 등록조항을 없애려는 논의가 있었으나 이사회는 회칙 개정위를 구성, 임시총회에서 선거관련 회칙을 개정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결국 선관위가 이사회 결정사항과 정면배치되는 유권해석을 감행한 것이다.
선관위가 든 유권해석의 근거 자체도 합리적이기보다 억지가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비판은 선관위가 역대 선거에서 등록된 회원의 정확한 명단과 인원(선거인 명부)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힌 점이다.
주영진 위원장은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김영근 회장으로부터 자료를 인수받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는 선거관리라는 막중한 책임을 진 선관위가 직무를 태만히 했거나 김영근 현 회장이 자료를 유실했다는 뜻으로 그냥 넘길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들 자료들은 선거때마다 막대한 경비를 들여 축적한 한인사회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만일 김 회장이 고의로 넘겨주지 않았다면 이 또한 향후 선거와 관련 큰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한인사회에서는 이번 선관위 방침의 배경을 두고 갖가지 해석과 논란이 분분하다.
무게중심은 김영근 현 회장의 재출마설에 쏠려있다. 연임에 목표를 둔 김 회장이 현 회장이란 프리미엄을 십분 활용, 자신에 유리한 방향으로 선거법을 조정하려 했다는 것이다. 선관위원들은 물론 김 회장이 임명한 사람들로 구성됐다.
논란을 떠나 김 회장은 재출마할 합당한 자격을 지닌 예비 후보이지만 선관위는 분명 무리수를 두었다.
엄정한 선거 관리의 책임을 진 선관위가 선거 개막도 전에 특정 인물의 손을 들어줬다는 비판을 받는 건 전례가 별로 없는 일이다.
선관위의 임무는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는 판을 벌여놓는 것이다. 또 그 판을 지키는 것이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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