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웃에 부자 사이가 부쩍 좋아진 가정이 있다. 아들의 전화가 걸려오면 아버지는 연신 “그래, 그래”하며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고 한다. 아들이 대학에 진학해 1주일 전 집을 떠난 가정이다. 그 부인이 전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사건건 ‘웬수’같이 부딪쳐서 집안이 평온할 날이 없었어요. 그러던 남편이 요즘은 아들 전화만 기다려요. 아들 방에 가서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괜히 침대를 쓰다듬고 하며 여간 허전해 하지를 않아요”
그 가정의 부자 사이도 여느 사춘기 자녀를 둔 가정과 다르지 않았다. 요즘 사내아이들은 다 그런 건지 - 공부든 심부름이든 매사에 다부진 맛이라고는 없이 미적미적 하는 태도, 길바닥 먼지를 다 쓸고 다니는 너절한 옷차림, 식음·수면 전폐하고 매달리는 컴퓨터 게임, 옷에서 묻어나는 담배냄새 … 아버지 보기에 아들은 영 성에 차지를 않고, 보다 못해 지적하면 아들은 질세라 말대꾸를 하고 …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화를 참느라, 아들은 아들대로 불만을 누르느라 집안공기가 폭발 직전이던 순간들이 부지기수였다.
기분 좋게 외식하러 나갔다가 밥도 못 먹고 돌아오고, 몇 주전부터 잡혀 있던 가족 나들이가 돌연 취소되는, 아슬아슬한 기승전결을 사춘기 자녀 키운 부모들은 말 안 해도 이해를 한다.
9월은 그 감정적 곡예의 세월이 막을 내리는 때이다. 대학 신입생들이 하나둘 집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많은 부모들이 빈 둥지에 남겨진다. 이별의 계절이다. 아이들은 육체적으로 부모와 이별하고, 정신적으로 미성년의 성장기와 결별한다.
대학 진학하는 자녀와의 이별은 다시 못 만나는 영원한 이별은 아니지만 다시는 ‘내 품의 자식’으로 만날 수 없는 특별한 이별이다. 내 몸의 지체 같던 아이가 독립 개체로 분명하게 떨어져 나가는 이별이다. 그 이별이 부모에게는 해방이자 허전함인데 그 정도에 따라 빈 둥지 부모들은 3개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 유형은 집착형. 자녀의 일거수 일투족이 걱정이 되어서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이다. 몇 년전 딸을 대학에 보낸 한 주부의 경험이다.
“기숙사 음식이 입에 맞을까, 아침에 늦잠 자느라 수업에 못 들어가는 건 아닐까, 신입생들이 술을 많이 마신다던데 잘못 어울리는 건 아닐까, 몸이 아픈 건 아닐까…걱정이 끝이 없었어요. 한 이틀 전화 연결이 안되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지요”
걱정은 우울증으로 발전하며 어느 순간 “이러다 내가 못살겠다”는 지경에 이르더라고 했다. 아이의 삶은 결국은 아이가 스스로 헤치며 살아야 할 몫이라고 깨닫는데 반년이 걸렸다고 한다.
두 번째 유형은 방관형. 사춘기 때 아이에게 너무 데고 나면 더 이상은 신경 쓰고 싶어하지 않는 부모들이 간혹 있다. 가장 이상적이기는 격려형. 아이를 독립적 성인으로 인정하면서 뒤에서 조용히 격려를 보내는 유형 이다.
대학으로 떠나는 자녀는 큰물로 나가는 어린 물고기 같다. 모두가 자기를 알던 작은 시내를 떠나 갑자기 큰 강으로 나가는 작은 물고기이다. 부모 슬하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해방감, 흥분이 있는 반면 낯선 환경에서 혼자 살아야 하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
겉으로는 성인이면서 속으로는 또 어린아이이기도 이 이율배반적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한 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 학생들이 ‘부모가 해서는 안될 일’을 목록으로 작성했다. 부모들이 알면 참고가 되겠다.
우선 자녀를 학교 기숙사에 내려놓고 떠나면서 머리를 쓰다듬지 말 것 -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아이가 싸워야 할 싸움을 대신 싸워 주지 말 것 - 스스로 해결하도록 뒤에서 응원만 하는 것이 좋다. 제발 너무 조바심을 내지 말 것 - 아이에게서 전화가 없으면 바빠서 그러려니 하고 이해를 해달라는 부탁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 - 아이가 모처럼 집에 돌아와서 집에는 안 붙어있고 친구들만 만난다해도 부모는 상처받지 말 것.
자녀의 대학 입학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인생의 새 장을 여는 특별한 이별이다. 큰 강으로 나간 어린 물고기가 늠름하게 변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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