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가 1,000파운드가 넘는 남성이 ‘몸’을 덜어내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네브라스카에 사는 40대 초반의 이 남성은 거대한 몸의 무게 때문에 지난 7년간 외출 한번 못했다고 한다.
1,072파운드의 산 같은 몸을 가진 그에게는 외출은커녕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는 사소한 동작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에게서 ‘움직임’이 멈춘 지 오래이다.
비만이 극에 달해 지난해 가을부터 그는 침대에서 꼼짝 못하고 누워지내다가 생명이 위협을 받자 의료진에 도움을 청했다. 살을 빼지 않고는 더 이상 살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두달 간 의사들의 감독 하에 식이요법을 한 결과 그는 321파운드를 빼는 데 성공했고, 앞으로 450파운드를 더 빼는 것이 목표이다.
그렇게 되면 그는 소원을 이룰 수가 있을까. ‘살의 감옥’에 갇힌 그의 소원은 ‘걷기’이다. 퇴원할 때 걸어서 병원 문을 나가고, 저녁 어스름에 길거리를 걸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내 발로 가고 싶은 데 가보는 게 소원”이라는 말을 전에도 들은 적이 있다. 왕족의 가문에서 태어나 평생을 최상류층으로 사신 고운 할머니였다. 하지만 그 멋쟁이 인텔리 할머니도 생의 마지막이 되니 걸어서 외출해보는 게 소원인 소박한 할머니로 바뀌었다.
노쇠현상이 깊어지면 걷기도 호사가 된다.
언젠가 중년 여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부러운 여자’가 화제로 올랐다. 한국에서 떠도는 조크에 의하면 부러운 여자로 우선 꼽히는 것은 똑똑한 여자이다. 힐러리 클린턴이나 강금실 같은 똑똑한 여자는 분명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똑똑한 여자는 예쁜 여자를 당할 수 없고, 예쁜 여자는 돈 많은 여자를 당할 수 없으며, 돈 많은 여자는 건강한 여자를 당할 수 없다”고 해서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나이 들면 여자뿐 아니라 남녀 모두에게 그 순서는 맞을 것 같다. 여기저기 마음내키는 대로 훨훨 다닐 수 있는 건강이 은행 잔고보다 부럽고, 쌩쌩하게 걷는 모습이 어떤 미모보다 섹시해 보일 날이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걷는 기쁨, 걷기의 고마움을 모른다. 도무지 걷지를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도시에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날개가 퇴화한 새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동작인 걷기를 잃어버렸다.
새가 날지는 않고 먹기만 하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새라는 생명체의 자연적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도 본래는 들판에서 사냥하고 채취하며, 끝없이 몸을 움직이며 먹고살도록 만들어진 생명체이다. 문명이 몸을 움직이는 수고를 덜어주면서 몸에 고장이 생기고 있다. 비만,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증… 각종 성인병들이다.
우리가 걷기를 중단하며 잃어버린 것은 건강만이 아니다. 이웃을 잃었고 사색을 잃었다.
자동차와 TV가 주범이다. 차고에서 그대로 자동차를 타고 나가니 이웃 사람들과 인사 한번 안하고 몇 년을 지내는 일이 현실이 되었다. TV가 하루 24시간 오락을 제공해주니 이웃을 사귈 필요도, 사색할 시간도 없게 된 것이 또 우리의 현실이다.
걷기와 사색을 가장 즐긴 사람으로는 장 자크 루소가 꼽힌다. 그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며 걷기 예찬론을 펼쳤다. 실제로 창조적 생각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는 몸을 움직이며 명상할 때 잘 튀어나온다고 한다.
걷기는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운동이다. 즐거운 생각을 하며 걸으면 대뇌에서 기분 좋은 호르몬이 방출되어 심신을 건강하게 해준다. 애써 힘든 운동을 하기 보다 장시간 산책하는 것이 살을 빼는 데는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우리가 걸어야 할 이유가 된다.
나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일은 어리석다. 거리에 어스름이 깔리며 하늘은 코발트색으로 맑고, 나무 가지들이 부드럽게 흔들리는 저녁, 창 밖을 내다보면 문득 ‘걷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가. 나가서 걷자.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할 날이 곧 온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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