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 위해 1세·2세 손잡는다
미주 한인들 사이에 탈북자를 돕고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점차 조직화되고 있다. 한국 기독교 연합(KCC)이 이 운동에 동참하기로 한 데 때맞춰 젊은 한인 1.5세와 2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북한 해방’(Liberation in North Korea)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미국 한인 신세대들의 정치 참여가 갖는 의미와 향후 전망을 짚어본다.
탈북자 교수 강연이 2세들 삶의 좌표 바꿔
발족 수개월만에 60개지부 수천회원 확보
전국적 한인 권익 옹호단체로 성장가능성
이승규(UCLA 한인 학생회장/ 정치학과 4학년) 씨는 작년까지 만도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꿈꾸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던 것이 올 초 예일 대에서 열린 탈북자 출신인 김현식 교수의 북한 실상에 관한 강연을 듣고 삶의 좌표가 바뀌었다. 김씨가 들려준 탈북자와 북한 주민들의 현실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후 한국의 정치와 역사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김씨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었다. 미국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같은 피를 이어받은 북한인들의 참상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같이 강연을 들은 미주 한인총학생회(KASCON) 회원들과 함께 젊은이들의 힘을 한데 모을 기구 설립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그렇게 해서 발족된 것이 ‘북한 해방’(Liberation in North Korea)이란 단체다.
약자인 LINK는 영어로 ‘한데 묶는다’는 뜻도 된다. 남북한은 물론 미주의 한인들도 사실은 한 몸임을 알리는 의미도 있다. 발족한 지 이제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인 학생이 가장 많은 UCLA를 비롯, 하버드, 예일, 코넬 등 동부의 명문 대학, 스탠포드, UC 버클리 등 서부 주요대학을 포함해 전국 60개 대학에 이미 지부를 두고 있다. 한 챕터에 평균 수십 명 정도 회원이 있으니까 합치면 정회원만 수천 명에 이른다. 올해 안으로 이를 100개로 늘릴 계획이며 벌써 비영리 단체 등록도 마쳐 후원금을 내면 세금 혜택도 볼 수 있게 만들 었다.
이들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북한의 실상을 한인은 물론 모든 미국인에게 정확히 알리는 일이다. 예일대 김 교수의 강의가 있기 전에는 KASCON 회원 중에도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집에서 부모들도 이에 관한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고 학교에서도 한국에 대해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는 데다 대다수 학생들은 졸업과 취직 준비에 바빠 다른 일에 신경을 쓸 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각 대학 별로 북한 워크샵을 갖고 북한에 대한 강연회를 하자 호응도는 의외로 좋았다. 학생뿐만 아니라 직장에 다니는 40대 이상 일반인들도 “어떻게 하면 참여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그치지 않고 있다. LINK 관계자들은 지나치게 빨리 비대해져 순수성이 흐려질까를 염려해 오히려 성장 속도를 조절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INK 창립 소식이 전해지자 캐나다와 유럽 대학에서까지 챕터를 만들겠다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LINK측은 ‘북한 해방’이란 호전적인 이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목적은 북한 인권의 개선이지 전혀 정치색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치와 인권을 떼어놓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미 정치인들을 상대로 탈북자들을 돕고 북한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인데 이것은 분명한 정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하는 일을 도와주는 사람도 많지만 이에 반대하는 세력도 있다. LINK 홍보 담당 책임을 맡고 있는 이대건(UC 샌디에고) 씨는 “하루는 한총련 계통에 있던 분이 찾아와 ‘너희가 뭘 안다고 이런 짓을 하느냐’고 꾸짖고 간 적도 있다”며 “우리가 목표하는 것은 북한을 무조건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LINK 회원들은 ‘숨겨진 강제 수용소‘(Hidden Gulag), ‘평양의 수족관’(Aquariums of Pyongyang), ‘두개의 한국’(Two Koreas) 등 북한의 현실을 쓴 책들을 읽으며 한국 역사 공부를 하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지금 가장 큰 관심을 가져야 할 북한 인권 개선에 한인들은 지금까지 무덤덤 하고 오히려 유대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 이들을 부끄럽게 한다. LINK 주요 멤버로 적극적인 활동을 펴고 있는 김새움(UCLA 정치학과 4학년) 씨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참혹한 경험을 한 유대인들이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다’ 북한 인권 문제를 들고 나오는 데 정작 이에 앞장서야할 한국 정부와 한인들은 입을 닫고 있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LINK는 오는 13일 있을 다저스 ‘한국의 날’ 행사에서도 홍보 활동을, 20일에는 UC 어바인에서 남가주 대회를 할 계획이다. 다음 달 11일에는 뉴저지에서 미국 가수들이 LINK 기금 모금을 위한 컨서트를 해주며 13일에는 유대인들이 세운 ‘관용 박물관’ (Museum of Tolerance)에서 북한 심포지엄이 있다. 27일에는 LA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KCC 컨벤션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며 오는 11월에는 USC에서 열리는 전국 아시안 총학생회에서도 LINK 행사가 계획돼 있다.
LINK의 출현은 자칫 ‘돈 많이 버는 것이 최고’로 여겨지는 미국에서 젊은 한인들이 한국 주요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스스로 전국적인 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인 이민사상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만 하다. 이것이 1세 위주로 돼 있는 한인 교계의 탈북자 돕기 운동과 연결될 경우 장기적으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란 동화를 보면 임금님이 사기꾼에게 속아 벌거숭이가 돼 있는 데도 남의 비난이 두려워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오직 눈치 볼 줄도 세상 물정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 하나가 “임금님은 벌거숭이”를 외친다. 온갖 잡스런 이론과 핑계로 뒤덮이지 않은 새 눈을 가진 사람에게만 진리는 보이는 법이다.
LINK 발족과 함께 미주 한인 젊은이들은 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됐다. 이 단체는 앞으로 하기 따라서는 북한 인권만 아니라 미주 한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정치 단체로 얼마든지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잘못된 이데올로기의 노예로 전락해 가는 한국의 대학생들이 미주 한인 대학생들을 본받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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