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인타운에는 색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하다. 이민 한인들과는 외양이나 자세가 어쩐지 다른 한국 관광객이나 방문자들이 예전과는 달리 아이들까지 동반한 채 이곳 저곳에 넘쳐 흐른다.
원래 여름이면 휴가나 피서를 겸한 이들의 행렬이 부쩍 많아져서 비행기도, 호텔도, 국내 관광단도 대체로 한국서 온 방문객들로 거지반 찬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독 많이 눈에 띈다. 주변에서도 너나 없이 한국 친지들을 맞느라 정신이 없다. 이런저런 연고로 자녀들을 심어 둔 경우도 크게 늘어서 여름의 LA는 한미 이산가족 상봉장소가 된 것도 이유가 될 것 같다. 자녀 유학을 염두에 둔 부모나 유학 희망 학생들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한두 달간의 현지 체험을 위해 날라 오고 있다. 이제는 한국의 특별고교를 졸업한 재원들이 미국의 아이비 리그나 UC계열대학에 곧바로 입학할 수 있어 자랑스런 가족행렬이 더 보태졌다.
그뿐인가. 은퇴했거나 자의반, 강제반 퇴직을 앞둔 사람들, 최고 학벌로도 도통 취직이 안 되는 젊은 남녀들, 지독한 입시지옥이나 여러 경쟁에 자신 없는 젊은이들, 또 억대돈을 들고 미국에 비즈니스나 부동산을 찾느라 온 사람들이 북적이며 탐색전을 벌이는 것이 이제는 보통사람 눈에도 보인다. 그래서 한인 타운과 한인 사회는 갑작스런 활기랄까, 어쨋든 색다른 분위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방문자들과 관련된 비즈니스는 때 아닌 호황이다. 한인밀집 지역 주택이나 아파트 렌트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부동산 관련업이 상종가다. 도통 팔리지 않던 비즈니스들조차 한국에서 들어온 돈에 몇 배나 비싸게 팔리고 있다. 지극히 한국적인 새로운 비즈니스들도 우후죽순이다. 그들의 돈을 보관해주는 은행도 신바람이다. 어정쩡한 체류일정으로 아파트를 구할 수도, 호텔에 묵기도 힘든 방문자들로 숙식제공 하숙집들은 이른바 만선(?)이다. 옷가지만 있으면 꽤 오래 동안 사는데 적격인 하숙집에는 최근 어린 자녀의 어학연수등을 목적으로 집을 팔고 일단 입국한 가족들이 수개월씩 진을 친다.
그런 한편에서는 방문자들이 갑자기 늘어난 데 따른 부작용과 고름이 한꺼번에 터지며 악취를 풍기고 있다. 고의로 자금을 빼돌려 미국으로 도피하는 한국 기업인 급증 통계도 발표되고 이민관련 사기나 범법 케이스가 속속 적발되어 대문짝만 하게 보도된다. 밀입국자 체포나 남가주 인신매매등 속속 터지는 사건이나 경제비리에도 어김없이 한국인의 이름들이 떠오른다.
그뿐인가, 갑작스레 몰려드는 한국인과 한국돈은 모기지나 렌트, 자동차값과 생활비를 근근히 해결하고 사는 대부분의 남가주 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싼 렌트나 폭등한 집값으로 갓 온 부유층 유학생들은 집을 살 수 있지만 이민 10년이 넘게 살아왔던 한인가족들은 값싼 곳을 찾아 먼 외곽으로 밀리고 있다. 또 큰돈 들고 영주권 취득용이나 투자용으로 한인 비즈니스를 매입할 한국인들이 지천에 깔려 손작은 이민자들은 매입 오퍼조차 감히 낼 수 없다. 식당이나 마켓, 세탁소등 스몰비즈니스가 몇 년사이 가격이 몇 배로 뛰었다는 한숨으로 땅이 꺼질 것 같다.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열심히 노력하며 살던 이들까지도 공중에 붕 띄워놓는 것 같다.
엊그제까지 한국 전체에 충천하던 반미 정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왜 수많은 한국인들은 물밀 듯 미국에 들어오고 불법이든 합법이든 입국 기회만 기다리는가. 아무 것 없이도 미국에서는 맹목적 확신은 어디서 근거하는가.
이들은 한국의 정세 불안과 심각한 경기침체 때문이라고 엑소더스 배경을 말하고 있다. 가계부실이 IMF(외환위기)시보다 훨씬 심각하며 청년실업이 무려 38%이고 빈부격차는 더 커져 도저히 못살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치인들 하는 꼴을 보니 현재의 어려운 고비를 천신만고 노력으로 견딜 만한 희망이나 가치가 없다고 이구동성이다.
국민이 국토에 발을 굳게 붙이지 못하고 정서 불안자들처럼 외국땅 위에서 떠다니게 만드는 조국의 현실에 고통과 비애가 느껴진다. 공중부양 상태로 이리 저리 흩날리는 한국인이나 이민자들이 하루 빨리 어느 땅으로라도 내려와 성실하게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다.
이정인 국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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