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동족고통… 이젠 교회가 나설때
1,500개 미주 한인교회 하나로 결집
미국·유엔등 탈북자 정책변화 압력
손인식(베델교회 담임목사, KCC 결성 순회 담당자)
옥세철(한국일보 미주본사 논설실장)
“결코 고아처럼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한 분, 한 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고귀한 분입니다. 더구나 우리와는 피를 나눈 형제 자매입니다. 그들이 노예와 다름없는 처지에서 짐승 취급을 받고 있는데 4,500만 동포가 못 본체 했습니다. 우리 곁에 데려와야 합니다. 그 상처를 싸매 주어야 합니다. 형제의 고통에 무관심했고,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 죄를 회개하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통곡의 기도를 드릴 때입니다. 목회자가 먼저 회개해야 성도들이 회개합니다. 단 하루 밤만이라도 함께 모여 통곡으로 새 역사를 쓰자는 것이지요. 이 연합 운동에 참여해 주십시오…” 손인식 목사를 만났다. 화제는 줄곧 탈북자, 북한 동포에 머물렀다. 관련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한국교회에 주어진 사명. 복음의 본질. 한인 2세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중간, 중간 이야기는 멈추어졌다. 뭔가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한 영혼에 쏟는 간절함이 마음으로 전해져서인가. 왜 한국 민족을 흩으셨을까. 왜 이 땅에 수천 개의 한인 교회가 세워졌을까. 결국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생각이 미쳤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에스더는 민족 구원에 나섰습니다. 이 시대의 느헤미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짓던 슬픈 노래가 들린다. 그 노래가 어느 순간 변했다. 기도가 된 것이다. 비전이 보이는 듯했다. 불꽃이 번지는 모습이다. 작은 불꽃이 하나 둘 모여 거대한 불꽃으로 타오른다. 뒤이어 나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승리에의 행진을 선도하는 장엄한 나팔소리다.
-미주한인 교회연합(Korean-American Church Coalition·KCC)이란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은 생소하게 들릴 것 같습니다. 이 연합운동의 목적은 무엇인지요.
▲미주의 교회가 연합해 북한 동포를 돕자는 것입니다. 그들은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 땅의 기독교인들은 엄청난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수십만의 탈북자들은 버려져 있습니다. 이들을 돕고 구하기 위해 교회가 하나가 되어 기도하는 운동입니다. 또 각종 북한 인권법안의 미국 의회 통과를 위해 교회가 힘을 합치자는 것입니다.
-탈북자를 돕는 단체들이 많습니다. 북한 동포를 돕는 NGO, 선교회 등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KCC 운동은 뭐가 다른가요.
▲많은 분들이 탈북자를 돕기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미국 의회를 움직이고, 유엔을 움직일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개별적 사역도 펼쳐져야 하지만 동시에 정책에 변화를 주는 운동도 있어야 합니다.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북한 동포들 전체에 영향을 줄 운동이 필요합니다. KCC 운동은 이런 면에서 구분될 수 있습니다. 탈북자를 돕고 북한동포를 구출하는 정책결정에 영향을 주는 파워 베이스 역할을 교회가 맡아야 합니다. 그리고 미주의 한인 교회가 하나가 된 것을 미국에도, 중국에도, 그리고 세계에 알려야 됩니다. 탈북자를 돕는 법이 미국에서 제정돼 중국, 유엔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북한 동포를 미국으로 데려오자는 것입니다. 탈북자 문제의 흐름의 방향전환을 하자는 운동입니다.
-교회연합이 가지는 의미가 상당히 크다는 생각입니다. 분열의 영이 지배하고 있다고 할까요. 이런 교회의 현실에서 볼 때 더 그렇습니다. 연합운동이 상당히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풀뿌리 운동차원에서 미주의 교회들이 모두 참여하는 대 연합운동이 펼쳐지기를 소망하고 있고, 또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북한 동포가 맞은 참상이 그만큼 위급한 시점에 와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이 절박한 때에 이 땅의 교회가 하루 밤만이라도 함께 모여 눈물로써 역사를 만들자는 겁니다. 민족의 위기를 맞아 이스라엘은 미스바에 모여 회개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했습니다. 목회자가 먼저 회개해야 성도들이 회개를 합니다. 분열됐던 교회. 동족의 고통을 외면했던 죄 등을 철저히 회개하자는 겁니다.
-이 연합운동 결성을 위해 미국과 캐나다를 수 없이 방문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가능성이랄까, 그런 게 보입니까.
▲큰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목사님들이 마음으로는 벌써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죽어 가는 북한 동포와 탈북자를 돕는 이런 교회연합운동을 기다려 왔다고 해요. 처음에는 300∼400교회만 동참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아니었어요. 이 연합운동에 동참을 약속해온 교회가 벌써 800을 넘었지요. 오는 9월27일 KCC 1차 전국대회 날에는 1,200∼1,500교회가 참여하리라고 봅니다. 가난한 사람, 소망이 없는 사람을 잘 돕는 게 우리의 민족 아닙니까. 거기다가 복음으로 훈련이 돼 있어요. 한인 교회의 순수성, 저력을 새삼 발견했습니다.
-고무적인 말씀입니다. 그토록 많은 교회가 참여를 약속해 왔다니 말입니다. 교파가 다른 목회자들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모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 않습니까.
▲목사님들이 얼마나 바쁩니까. 그저 편지나 내서 모입시다 하면 오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찾아가 이 운동에 참여해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인가 보아요. 한 지역을 찾아갔더니 목사님들이 40명 이상 모이셨어요. 멀리서 찾아갔더니 그만큼 모이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침묵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다. 모르는 척 하는 것도 죄라고요. 모두 한 마음이었어요.
-그야말로 전 교계가 망라된 운동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형교회 중심의 운동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목회자들이 교회 밖의 일에 매달린다는 점에서 외부의 비판도 있지 않을까 우려도 듭니다.
▲결코 대형교회 중심의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미국 사회에 진정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인 교회는 대형교회가 아니라, 교인 수 100명 미만의 교회들입니다. 이 교회들이 사회 곳곳에 파고들어 영적 훈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참 귀한 교회들입니다. 이런 교회가 주축이 된 풀뿌리운동이어야 합니다. KCC 회원 조건은 그러므로 교인 수와 관계없이 모든 참가 교회가 동일합니다. 한인 유권자 수는 적지만 한인 교회가 미국 교회와 연대해 커뮤니티의 여론을 전할 때 그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외부의 비판이나, 방해 같은 것에 대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는데.
▲특별한 방해는 없었습니다. 저도 여태껏 교회 밖의 일에 눈을 돌린 적이 없습니다. 교회 울타리를 넘어가는 일인데 잘 할 수 있는지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죽어 가는 북한 동포를 돕는 문제는 신앙인의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죽어갑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해갔지요.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했습니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 갇힌 자에게 먼저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들을 돕는 게 복음전파의 시작입니다. 그게 선교이고 전도입니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시고 행동도 보이셨습니다. 주님의 복음은 행동으로 완성됐습니다.
-북한 동포를 돕는다는 목적에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방법은 다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이견은 없었습니까.
▲처음에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교단이 다를 때 교회간의 연합이 잘 안 되는 경향이니까요. 다녀 보니까 그런 벽이 없었어요. 정말 교파를 초월해 탈북자를 돕는 데 동참하시겠다는 목사님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바알에 절하지 않은 선지자가 7,000명이 있다는 말씀이 정말 실감됩니다.
-이 운동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지어야 할까요. 아무래도 회개운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운동입니다. 어디까지나 목회자들이 중심이 된 운동이니까 복음주의 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되어 회개의 기도를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 모습을, 전 미국에, 세계에 보이고, 그럼으로써 또 북한동포들이 맞은 참상을 세계에 알리자는 겁니다. 그리고 어둠의 땅에 빛이 전파돼 대대적인 북한 주민의 엑소더스가 일어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을 펼치게 된 계기가 있을 텐데, 그 계기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탈북자 문제에 보다 적극적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미국의 종교인 인권운동가들이 북한 자유연합(NKFC)을 결성한 소식을 듣고서입니다. 우리 민족을 살리는 일인데 한인 목회자들이 뭔가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러다가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한 미국인이 한 말이 저를 찔렀습니다. 너희 민족이 그토록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한인 목회자들은 뭐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이런 말도 해요. 침묵은 죄라고요. 그 말이 상당히 아프게 눌러왔습니다. 부담감이 되고 하나님의 손길로 느꼈습니다. 또 다른 계기도 있는데, 1년 전이던가요. 저희 교회에 탈북자를 돕는 분이 와서 강연을 했어요. 비디오로 보여진 그 비참한 광경에 눈물을 쏟았어요. 전 교인이 같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몇 달 전입니다. 탈북자의 참상을 담은 비디오를 또 보게 됐는데 눈물이 없어요. 무감각해진 거지요. 그런 자세가 문제입니다.
-탈북자를 돕는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이 강연차 처음 타운에 왔을 때 미 언론사 기자만 왔어요. 동족의 참상에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을까 하는 데에서 부끄러웠습니다.
▲생각이 많은 현대인입니다. 생각은 많이 하는데 행동이 없습니다. 비겁하다고 할까요. 생각은 하는데 행동은 옮기지 못한다. 회개는 생각만으로 그쳐서는 안되지요. 행동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그게 복음신앙의 핵심입니다. 탈북자들의 참상을 보고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습니다. 그래서 교계의 어른인 임동선 목사님, 박희민 목사님을 찾아가 이 문제에 대해 의논을 드렸지요. 두 분이 다 전폭적으로 지원하시겠다며 격려하셨어요. 저는 심부름꾼으로 나선 겁니다. 누군가가 심부름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말씀을 듣다보니까 탈북자를 돕는 일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운동, 이것이 코리안-아메리칸에게 주어진 일이고, 미국의 한인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이 운동이 한인 1.5세, 2세에게 정체성을 확실히 심어 주는 운동이라는 점입니다. 2세들에게 KCC 운동을 알렸더니 적극 동참해 와요. 동포를 돕는 일을 통해 한인 2세로서의 정체성과 프라이드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Who Am I’에 대한 답을 찾은 것입니다. 2세들이 지닌 자원, 능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느헤미야는 조국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왕비가 된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며 민족구원에 나섰습니다. 우리 1세는 물론이고 2세들에게서 이런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1세와 2세의 역할 분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데요.
▲1세 목사들은 Spiritual Body를 형성해 뒷받침해야 됩니다. 미 의회를 움직이는 일에 1세 목사들은 한계가 있지요. 그러나 영적으로는 얼마든지 뒷받침 할 수 있습니다. Operation Body는 2세들로 구성돼야 합니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움직임은 이들이 맡아야 합니다.
-탈북자, 더 나아가 북한 주민들이 억압의 체제에서 입은 상처는 실로 엄청납니다. 앞으로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지요.
▲독일은 동독인들이 입은 상처를 주로 경제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치료하려고 했습니다. 독일교회가 약한 탓입니다. 한국 교회는 강합니다. 교회가 그 역할을 맡아야지요. 이번에 미국 전역을 다니며 목사님들을 찾아뵈면서 이 점에 더욱 확신하게 됐습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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