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논설위원)
최근 상영되는 영화 중에 ‘The Story of weeping Carmel(낙타가 우는 이야기)’이 있다. 이 영화는 이 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배경과는 너무도 달라 역설적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영화는 몽고의 한 시골마을에서 주인이 낙타를 기르는 과정에서 생긴 아주 평범하고도 순박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 너무나 평화롭고 순수해 보여 마음이 움직인다.
영화의 내용은 낙타의 어미가 새끼를 너무나 힘들게 낳다 보니 그 새끼가 미워 젖을 먹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주인집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 악사를 부르게 된다. 그 악사는 악기로 아름다운 노래를 틀고 주인은 노래를 부르면서 어미낙타를 어루만져준다. 이에 낙타가 감동해 눈물을 흘리면서 결국 새끼와 화해하게 되는 감동적인 스토리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다보니 미운 감정이 없어지면서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 결과다.
이 영화는 배경이 집이 몇 채 안 되는 아주 평화스럽고 아름다워 보이는 목가적인 풍경이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심의 이 복잡함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이 영화와 달리 실제 세상은 너무나 혼탁하다. 영화도 대부분 살인적 공포와 치고 박는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 것도 웬만큼 극적이지 않으면 흥행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전율을 느낄 정도로 무섭고 혐오스
럽게 만들어야만 관객의 관심이나 눈길을 끌 수 있다. 그 만큼 지금의 세상은 불안과 공포의 도가니로 꽉 차 있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 ‘얼굴 없는 전쟁’ 때문에 한시도 편할 날이 없다. 미국은 이 보이지 않는 적들을 타도하기 위해 그동안 국내외에서 전쟁을 치르느라 온통 야단법석이었다. 9.11 테러가 일어난 지 3년, 그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제 또 다시 뉴욕에 그 때와 같은 수준의 오렌지색 경보가 발령됐다. 뉴저지, 워싱턴DC를 포함한 주요 도시에 있는 거대 금융기
관에 대한 새로운 테러공격 위협 정보가 입수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 뉴욕은 초비상 상태에 들어가 맨하탄 일대 진입로 곳곳의 통행이 차단되고 주요시설의 검문검색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9.11 테러로 인한 결과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속출했으며 경제는 또 그 동안 얼마나 망가졌는가. 그때 상황은 두 번 다시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너무나 끔직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4,000명의 인명이 불바다 속에서 죽어가던 그 악몽
의 순간. 우리는 그 날의 참극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날 이후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정신은 또 얼마나 마모됐는가. 그 상처와 아픔은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또 다시 오렌지 경보라니... 너무도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9.11사태 이후 사실 당국이나 주요시설 및 금융기관 같은 곳에서는 수시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고 한다. 빌딩을 올라 갈 때마다 가방이고 뭐고 다 뒤질 정도로 테러에 대비를 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테러위협에 대한 가능성이 있다는 발표가 있고 보니 모두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까 마음이 불안하다. 그러잖아도 살기가 어려운데 이런 두려움과 불안까지 우리를 가로막고 있으니 우리는 한순간도 편안할 수가 없다. 불안은 정신적인 황폐함 뿐 아니라 삶의 어떤 계획이나 꿈도 실천으로 옮길 수 없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하던 일을 그만 둘 수도 없고 어디로 다 두고 도망가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이래저래 우리는 놓인 여건에서 현실을 받아들이며 긴장 속에 살 수 밖에. 차라리 누가 쳐들어오는 것이 보이면 피난이라도 가건만 이것은 도무지 실체가 보이지 않아 꼼짝 달싹하기도 어렵다. 보이지 않는 적의 동태를 우리는 알 수 없어 그들이 공격하면 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잘못하면 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추리소설이나 탐정영화, 공포영화 같은 것도 따로 볼 필요가 없다. 그만큼 우리는 몸과 마음을 오싹오싹하게 하는 무서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언제나 이런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단순한 영화 ‘낙타가 우는 이야기’가 관객들의 마음을 끄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 땅에 아름답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날이 다시 또 올 수 있을까. 그
날이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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