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렬(건축가)
“윤정아, 아빠랑 ‘루비’와 ‘로미’(우리집 애완견) 데리고 앨리 팍으로 산책가지 않으련? 가서 그곳 연못에다 자라를 해방시켜 주고 오자”
지난 토요일 딸에게 물었다.
그러나 윤정이는 “아빠, 안돼요. 그럼 금방 죽는단 말예요” “죽기는 왜 죽니, 이렇게 가두어두니 얼마나 답답하겠니, 자연으로 돌려주자. 저렇게 밖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게 가엾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더 큰 용기(容器)에 옮겨주면 되잖아요” “그래도 연못만 하겠니? 죽을 때 죽더라도 자연속에서 한번 마음껏 자유롭게 살아보게 놓아주자”자라를 자연으로 돌려주기로 마음먹은 후 어디에다 방생시킬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 동네 가까운 곳에 연못이 두 군데 있다. 한 곳의 연못은 크나 도로가 인접해 있어 자라가 그곳을 벗어나 도로에 나왔다가 혹 차에 깔려 죽을까 걱정스러웠고, 다른 한 곳은 그보다 작으나 도로가 멀리 떨어져 있어 안전할 것 같아 그 곳으로 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딸아이가 “친구중에 브롱스 동물원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자라 40여마리도 기르고 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어요. 거기다 데려다 주면 어때요?” 한다. “그곳 역시 가두어서 기르는 곳 아니니? 물론 우리가 마련해준 것보다는 더 좋은 환경이겠지만…” “일단 그 친구 의견이나 들어볼게요” 하더니 전화를 걸어 몇마디 대화를 나누고 나서 “만약에 겨울을 보낼 안식처를 찾지 못하면 얼어죽을 수도 있대요” 한다. 나는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모든 생물은 자연속에서 잘 적응해가는 본능이 있어서 스스로 안식처를 찾아낼 것이고 물 속은 겨울에도 따뜻하지 않니?”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 작은 생물을 놓고 ‘자유를 누릴 권리’ ‘생명의 고귀함’ ‘평화’ ‘외로움과 그리움’ 이런 거창한 단어들을 머리 속에서 지우지 못한 채 망설이며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씩 서로의 등 위에 올라앉거나 돌 위에 올라앉아 밖을 내다보며 눈을 껌벅이고 때로는 그 높이에서 조금만 용을 쓰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걸 아는 이놈들은 안간힘을 쓰곤 한다. 세마리 중 한 마리는 어렸을 때 밖으로 기어나와 행방불명이 되었다. 온 집안 가구 밑을 다 뒤져봐도 찾을 수 없었다. 어딘가에서 굶어 말라 죽었을 것임에 안쓰럽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제각각 지고 갈 짐과 태어난 자리가 있다는 것, 이놈들은 태어날 때부터 애완용으로 태어난 팔자라고 생각하며 당분간 더 넓은 용기에 옮겨 기르면서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해 줄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게 우리의 몫이요, 이것도 인연이란 생각을 해 본다.
깔아놓은 조약돌을 놈들이 잘그락 잘그락 움직여대는 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어떤 선택이 너희들을 사랑하고 잘 보호해 주는 것인지도 헤아리지 못하는 안타까움, 그것만은 네 녀석들도 알아주렴. 자연이 인간에게 속해있는 게 아니요, 인간이 자연에 속해 있건만 착각하며 땅에다 멋대로 경계선을 긋고 땅을 빼앗고, 사고 팔고 멋대로 훼손하고 파괴하는 인간들…
심지어 동물도 아닌 사람, 그것도 같은 민족, 한 핏줄의 부모형제들을 짐승보다 못한 한 인간과, 그의 아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굴레 안에 반세기라는 세월을 묶어놓고 무언가 얻어내고저 할 때만 가끔씩 특정 장소에서 겨우 얼굴만 대면시켜 주는 반인륜적 집단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기막힌 현실, 그게 남의 나라가 아닌 바로 우리 조국이라는 사실, 그 한 사람의 심기를 자극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외면했던 ‘북한 인권’을 위한 특별법이 한국이 아닌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는 부끄러운 소식과 중국이 이난 제 3국 체류 탈북자 400여명이 제3국의 동의를 얻어 한국에 온 소식은 그동안 한국정부의 탈북자 정책을 두고 가졌던 우리들의 회의를 다소나마 씻어주는 일이어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여당의 일부 국회의원들이 미국을 향해 “북한 내정을 간섭하는 일”이라고 성명을 내고 반발했다는 어두운 소식은 한국의 앞날이 험난함을 예언하는 듯 해서 마음이 무거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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