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상<수필가>
당신은 행복한가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행동이 압도적으로 마음 안을 점유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길들여져 왔는지도 모른다.
샌프란시스코 이민 백년사를 혹처럼 달고 지나온 1년 몇 개월 동안, 편찬과는 상관되지도 않는 부수적 상황에 시달리다 보니 나의 세상 보는 눈도 변화 된 것 같다. 마치 나이 들어 고향을 찾아갔을 때 옛날에 그렇게 커 보이던 교회당이나 차부가 있던 본정통 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아주 작고 협소해 보이는 것처럼, 터무니없이 큰 것만 보아오던 눈의 측정감각이 확대되어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처럼 세상일들에 대하여 쉽게 화를 내고 실망하고 포기하는 버릇이 생겨난 것 같다.
실은 오늘 글제는 김근태 회장이었다. 사 반세기를 동포사회를 위해 자기집에 있는 소중한 도자기 그림을 내다 팔고 비즈니스도 거 덜 낸 참으로 특이한 사람, 식당 안에서 그와 안면만 있으면 식대를 지불해주는 사람, 아직도 월 800불 전세집에 살고 있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 모금을 위하여 서울에서 그림들을 얻어 들고 오다가 공항에서 변소에도 못 가고 그대로 서서 실례한 그의 이야기들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어제 백년사 출판기념회에 다녀온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진심으로 수고했다는 격려와 함께 기념회에 대한 소감을 전해 주셨다. 그래서 글제를 바꾸어 버렸다.
어제는 샌프란시스코 이민 백년사 출판기념회라고 해서 갔더니 이민백주년사업회 해단식 내지는 해명하는 자리였다. 그동안 힘들게 사업회를 혼자서 이끌어온 김근태 회장이 내게 전화했었다. 자료 수집비도 제대로 지급지 못하고 수고한 편집진을 위한 축하 파티를 하겠다고. 행사장에 가보니 입장료부터 내라 더니 즉석에서 만든 명찰 하나 달아준다.
예상대로 남발되는 감사패 명단에 편찬위원회 쪽으로 후원금을 낸 분들은 한 명도 없었다. 자료제공 해주고 먼 거리를 달려온 이들에게 박수한번 보낼 기회 마저 없었다. 일전에 그분들을 모시겠다고 초대장을 내게 보내 왔는데 입장료를 내고 오라는 거였다. 큰돈을 기부한 선배가 전화를 했다. 고맙다는 감사의 자리에 돈을 내고 들어가나?. 그분은 입장료가 비싸서 아니었다. 주최측에 전화를 걸어 보니 경비 때문에 누구에게나 공정해 입장료를 받겠다는 것이다.
그분들은 거의가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다며 참석치 않았다. 경비 조달이 힘들다면 설렁탕 한 그릇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준비하던지 숫제 출판기념회라는 타이틀은 떼고 책 판매행사였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목소리 크고 화를 자주 내야 대접받는 세상에 그분들이 나 때문에 소흘한 대접을 받게되어 죄송하다. 기회가 되면 이분에게 감사의 자리를 꼭 만들고 싶다. 비행기표 한 장 들고 서울에 나가 동가숙 서가숙하면서 편집 교정을 보고 와보니 공연이 취소되어 인쇄비도 없었다. 그때 이분들이 도와 주셔 책이 나온 거였다. 처음 자료를 구할 때 놀란 것은 대부분의 동포사회의 기관이나 단체가 기록을 남기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 때는 자료 협조를 애원해도 대답이 없다가 책이 나오니 왜 내가 또는 우리가 빠졌느냐고, 화를 내는 분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분들이 격려하고 어깨를 두드려주셔서 오히려 부끄럽다. 그분들께 고려 숙종 때 삼국사기를 쓰고 임금에게 바친 김부식의 글을 빌려 감사의 글을 보낸다.
저 같은 자는 본래 뛰어난 재주를 가진 것도 아니고, 또 깊은 학식도 없으며, 늘그막에 이르러는 날로 더욱 몽매하여, 글읽기는 비록 부지런히 하나 책을 덮으면 바로 잊어버리고, 붓대를 잡으면 힘이 없어 종이에 다다르면 써 내려가기 어려운 형편이 옵니다. 신의 학술이 천박한 것은 이와 같고, 예전 말과 지나간 일은 깜깜함이 저러하옵니다. 이런 까닭에 정력을 소모하고 힘을 다해 겨우 편찬을 끝냈으나, 별로 보잘것없어 스스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글의 앞머리에 행복 운운 한 것은 행복이 고갈되는 세상에 그동안 출판에 도와 주신 분들에게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였다.
살아있는 성자 달라이 라마는 행복에 이르는 길은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우리 마음 안에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행동은 대단히 해롭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한 개인 뿐 아니라 사회와 세계의 미래에도 해롭다는 것이다. 반면에 긍정적인 감정은 대단히 이롭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키워 나가겠다고 결심하게 되면 내면 속에 자연스럽게 의지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겨나는 것이 행복이며 내 손안에 달려있는 행복과 미래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행복을 지속시키는 확실한 방법은 그런 일을 일으키는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백년사 창간의 의미는 구술처럼 흩어진 우리들의 일상을 꿰어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고 우리들 앞에 펼쳐진 행복과 미래를 놓치는 실수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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