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00년 대통령선거 후부터였나. 아니, 아마도 훨씬 전부터였는지 모른다. 정치논쟁인가. 가치관 논쟁 같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은 신앙논쟁이다.
필그림이 세운 나라다. 이 나라에서 정치가 신앙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있을 법하지 않다. 그건 극히 비(非)미국적이기 때문이다. 타임지의 지적이었던가. 한 진보파 논객은 또 이런 탄식을 쏟는다. “무종교의 소신을 밝히는 대통령후보를 우리 생애에 볼 수 있을까”
무슨 말인가. 결국은 신앙이 문제가 된다는 거다. 올 대통령 선거의 가장 큰 변수는 신앙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의 신앙문제 말이다.
연초부터 나온 이야기다. 아니 대선 레이스 초장부터 번져온 논쟁이다. 그 논쟁이 대선 레이스가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가열되고 있다.
여론조사결과는 혼전의 연속이다. 한 마디로 예측불허다. 지금쯤이면 민주당의 케리가 상당히 앞서야 한다. 이라크 전후 처리가 엉망이다. 이라크 공격의 대의명분도 크게 퇴색됐다. 부시의 인기가 말이 아니다.
케리는 젊고 활기찬 에드워즈를 러닝메이트로 맞아드렸다. 뭔가 효과를 기대할만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여전히 박빙의 선거전이다. 지지도에서 다소 앞서기는 했다. 그러나 여전히 오차범위 안의 리드다. 무엇이 잘못됐나.
7%의 유권자만이 케리를 신앙심이 굳은 지도자로 보고 있다. 이 7%란 숫자가 그렇다. 재난에 가까운 숫자다. 뉴욕타임스의 데이빗 브룩스의 지적이다.
85%의 미국인이 크리스찬임을 공언하고 있다. 대통령의 신앙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과반수를 훨씬 넘는다. 그런데 7%만이 신앙문제와 관련해 케리와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헤매고 있는 부시와의 지지율 경쟁에서 케리가 고전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진단이다.
말하자면 이렇다. 유권자의 소득, 교육수준, 연령별 인구분포, 남녀 구성비. 모두 고려해야 할 상황이다. 표의 향방에 극히 중요하니까 그렇지만 더 중요한 변수가 있다. 종교다. 신앙문제다. 이 점을 민주당은, 케리진영은 간과하고 있다는 경고다.
처음 나온 경고가 아니다. 연초에 나온 ‘민주당 완패론’이 그렇다. 민주당 상층부는 신앙적으로 문맹에 가깝다. 종교에, 신앙문제에 대해서는 그리고 때로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거기다가 케리는 신앙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리버럴의 인상을 주고 있다.
이처럼 대중의 정서와 동떨어진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는 물론이고, 연방의회, 그리고 주지사 선거에서도 모두 패배한다는 것. 민주당 필패론의 요지다. 가톨릭인 케리가 보수성향의 가톨릭 교회 주교들로부터 파문선고에 가까운 비난을 받는 것도 민주당 필패론의 한 배경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가톨릭 신자가 선출된 건 사상 세 번째다. 1928년 앨 스미스가 첫 번째다. 당시는 그러나 가톨릭 신자가 대통령이 될 분위기는 아니었다. 두 번째가 존 F 케네디다. 케네디의 승리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세력에다가 아일랜드, 이태리, 동구계 등의 가톨릭, 그리고 남부의 보수 개신교 유권자 등이 연합한 결과다.
케네디만이 아니다. 전후 역대 민주당 후보의 대선 승리는 이 같은 종교적 보수세력연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트루먼도 그랬고 92, 96년 클린턴의 승리도 마찬가지다. 정치에서의 종교의 역할을 그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신앙문제를 표로 연결시키는 재주를 보인 게 클린턴이란 평가다.
민주당 필패론은 그 동안 가라앉았었다. 보수진영의 편향된 시각이 아닐까 하는 경계심리에서다. 게다가 이라크 사태가 날로 악화되면서 그 소리는 잦아들었던 것이다.
그 전망이 그런데 다시 제기되고 있다. 케리가 좀처럼 뜨지 않는 현상과 관련해 민주당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그 쟁점은 그리고 점차 이상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테러리즘보다 더 위험한 게 종교다. 이슬람 과격주의와 미국내 개신교 우파와 차이점이 무엇이냐는 식이다.
이런 주장까지 나오는 판이다. 21세기의 거대한 전쟁은 테러리스트와 서방과의 전쟁이 아니다. 과학·이성, 논리 등을 믿는 집단, 즉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는 그룹과 성경과 특정 종교의 도그마를 통해 계시된 진리를 신봉하는 집단과의 투쟁이다.
맞는 말일까. 각자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뭔가, 초조감이 엿보이는 느낌이다. 그 말이 너무 거대한 비약이고 또 과격하게 들려서다.
그건 그렇고 올해의 대선 선거구호는 혹시 이런 게 아닐까. ‘문제는 신앙이야, 바보야!’
옥 세 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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