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영화 ‘라이딩 자이언츠’ 개봉으로 서핑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서핑은 스릴과 운동효과 때문에 동호인이 크게 늘고 있다.
솟구치는 생명력, 기다림의 미학 절묘한 조화
한번 파도 맛보면 긍정적 라이프 스타일로 바뀌어
지난 2월, 바비 인형과 그녀의 남자 친구 켄은 할리웃의 어떤 커플보다도 세상을 시끄럽게 하며 헤어졌다. 이별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 바비는 새 남자친구를 만난다. Barbie.com에서 탄생시킨 새 남자친구 블레인(Blain)은 햇빛에 그은 구리 빛 피부와 빛 바랜 머리카락이 매혹적인 호주 출신의 서퍼. 바비 인형은 남성들이 꿈꾸는 이상적 여성상, 그녀의 남자친구 켄은 현대의 여성들이 갈망하는 남성상을 여러 각도에서 말해주고 있다. 세상 어느 여자가 강렬한 눈길로 다가오는 서퍼의 손길을 뿌리질 수 있을까.
엘 포르토 해안에 선 서핑 캘리포니아 회원들. 왼쪽부터 에드워드 김, 김동준, 강성훈, 소성.
지난 9일 개봉된 서핑 다큐멘터리 ‘라이딩 자이언츠(Riding Giants)’는 서핑에 대한 주류 사회의 관심을 잔뜩 부추겼다. 스테이시 퍼랄타가 감독한 라이딩 자이언츠는 세계적인 빅 웨이브 서퍼들의 삶과 열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70피트에 이르는 거친 파도를 넘나드는 빅 웨이브 서핑은 스릴이 넘치지만 그만큼 사고의 위험도 큰 서핑 종목이다. 선댄스 영화제의 오프닝나이트에서 라이딩 자이언츠를 본 서퍼들은 자신들이 서퍼라는 사실이 그때만큼 자랑스러웠던 적은 없었노라고 입을 모은다.
일생에 서핑을 직접 해보는 사람은 드물지만 ‘서핑 USA’라는 노래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서핑웨어 전문 브랜드인 쿡실버의 신발과 의류는 일반인들에게도 인기가 짱. 요컨대 실제로 서핑을 해보는 사람은 드물지라도 우리들 삶의 주변에 서핑은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얘기다.
과거의 어느 날, 바닷가 마을에 살던 모험심 가득한 청년은 나무를 깎아 판을 만들고 높은 파도를 타면서 쾌재를 부르짖었을 것이다. 1500년 전 타히티의 폴리네시아인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전해지는 서핑. 1778년 하와이 섬을 발견한 J. 쿡의 기록에는 왕족과 섬 주민들이 서핑을 즐기던 모습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서핑은 하와이, 미국, 호주의 해안 지대에서 활발히 행해지며 일반 스포츠로 발전하게 됐다.
지난 주말 남가주 한인 서핑클럽인 ‘서핑 캘리포니아’ 회원들을 따라 엘 포르토 해변으로 발길을 향했다. 이 시꺼먼 비치 보이들은 차를 세우더니 갑자기 타월을 허리에 두르며 치마를 만들어 입는다. 아니, 웬 치마 패션?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소가 여의치 않을 경우 남자 앞에서 몸을 기술적으로 가려가며 옷을 갈아입는 여성들처럼 이들은 어느새 감쪽같이 웨트수트로 갈아입고 난 후였다. 스트레치로 준비 운동을 마친 그들은 전도사이기도 한 에드워드 김씨의 인도로 함께 기도를 하고 물 속으로 들어간다.
서핑을 하려면 파도 높이가 무릎 이상이 되는 지점까지 나아가야 한다. 양쪽 팔을 나비처럼 움직이며 파도를 넘어 전진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리고는 가만히 기다린다. 나의 파도가 올 때까지. 주위를 살펴보니 검은 웨트수트를 입은 서퍼들이 물개처럼 파도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파도일까, 고도(Godot)일까.
드디어 큰 것이 하나 몰려오기 시작한다. 파도에 몸을 맡겨 위로 용솟음친 그들은 재빠른 동작으로 보드에 올라 날렵하게 파도를 타고 활강한다. 그건 한 편의 역동적인 드라마요 영화였다.
“서핑은 무척 동적이지만 말할 수 없이 정적이기도 해요.” 서핑을 시작한 지 5년여에 이른다는 강성훈씨(27·통관사)는 꿈을 꾸듯 먼바다를 바라보며 얘기한다. 서핑은 인스턴트 푸드에 길들여진 그에게 처음부터 재료를 다듬으며 조리해야하는 슬로우 푸드처럼 기다림의 미학을 가르쳐 주었다. 파도를 기다리는 그의 눈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이 들어온다. 자맥질치는 돌고래, 떼를 지어 이동하는 철새들, 끼룩거리는 갈매기, 뉘엿뉘엿 지는 해, 그리고 붉게 타오르는 저녁놀까지. 이 아름다운 자연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행복하다.
수영 선수였고 스케이트보드를 좋아했던 그에게 물과 보드를 결합한 서핑은 어쩜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이 피부에 와 닿는 관능적인 느낌을 그는 사랑한다. 서핑은 그에게 자연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갖게 했다. 서핑은 결코 파도를 정복하는 게 아니다. 파도가 나를 안아줘야 한다. 모든 파도는 항상 다르다. 일생을 통틀어 똑같은 파도는 절대 다시 오지 않는다. 삶의 모든 순간들을 충분히 만끽하고 감사해야 하는 지혜를 그는 파도를 통해 배우게 됐다고 한다.
서핑을 하기 전, 힘들기만 하던 아침 시간이 이제는 그에게 기대감으로 다가온다. 오전 시간의 좋은 파도를 놓치지 않으려면 새벽 5시30분 정도에는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서핑은 2시간 정도 하고 나면 녹초가 될 만큼 운동 효과가 크다. 심폐기능의 단련에도 그만. 무엇보다 매사에 긍정적이 되고 담력이 커지는 등 정신이 건강해진다.
서핑은 단순한 스포츠라고 할 수 없다. 이 말은 한번 파도의 맛을 보면 절대 이를 잊지 못하고 Surfing Bum이 된다는 뜻이다. 삶의 목적은 서핑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 삶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직업이며 결혼, 주택 장만 등은 그들에게 서핑을 즐기며 살기 위한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서퍼들은 물이라는 또 다른 차원을, 서핑이라는 또 다른 라이프스타일로 살아간다. 올해 78세가 되는 데일 웹스터옹은 1975년부터 서핑을 시작한 이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파도를 타 왔다고. 이밖에도 서핑의 중독성을 증명해 주는 에피소드는 수없이 많다.
하와이 파이프라인에서는 서퍼들의 사고 소식이 끊임없이 전해져 온다. 전 세계 다른 어떤 바다에서 희생된 서퍼들의 숫자를 모두 합해도 이곳에서 죽은 이들의 숫자를 따라갈 수 없다니 어느 정도 위험한 곳인지 상상이 간다. 북가주는 상어가 많기로 유명한 곳. 서핑을 하다가 상어에게 물려 팔이 잘려나간 서퍼들도 드물지 않다. 여성 서퍼 베다니 해밀런 역시 상어에게 팔을 잃은 희생자. 하지만 꾸준히 서핑을 하며 각종 대회에 참가해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그녀의 파도를 향한 오롯한 사랑은 많은 이들을 감동시킨다.
■ 서핑 첫 걸음
대부분 초보자들은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멋있는 모습을 기대하며 쇼트 보드로 시작하려 하는데 이러다간 평생 서핑을 못할 수도 있다. 롱 보드로 한 달 정도를 연습하면 비로소 일어설 수 있게 된다. 롱 보드와 쇼트 보드는 타는 방식이 전혀 다른데 어느 정도 지나 쇼트 보드로 전환을 하는 이유는 회전을 빨리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 잘 타게 된 이후에도 계속 롱 보드를 타는 서퍼들도 많다. 일주일에 3-4차례 한 달 정도 꾸준히 연습하면 파도를 타고 내려올 수 있게 된다. 일년 후에는 쇼트 보드를 가지고 기본적인 회전을 할 수 있게 되고 2~3년 정도 지나면 상당 수준에 오를 수가 있다. 이것도 열심히 해야 가능한 얘기다.
■ 장비
①웨트수트: 인조고무제가 개발돼 계절에 관계없이 서핑을 즐길 수 있다. 캘리포니아의 물은 차가운 편이라 여름에도 웨트수트를 입는 것이 좋다. 150~350달러 내외로 200달러 정도면 괜찮은 것을 구입할 수 있다.
②보드: 서핑 보드는 발사와 파이버글라스로 만들어진 가벼운 것 등 키, 몸무게, 개인기호에 따라 선택한다. 초보는 스펀지 보드(200~300달러)로 시작한다. 처음에만 필요하기 때문에 서핑 캘리포니아 동호회의 것을 이용하면 된다. 보드 가격은 천차만별이나 300달러 이상이면 쓸만한 것을 구입할 수 있다.
■ 서핑 스팟
말리부 아이스 포인트, 벤추라 카운티 라인, 주마, 말리부, 베니스, 엘 포르토, 맨해턴 비치, 토랜스 코브, 볼사 치카. 헌팅턴 비치 피어, 뉴포트 비치 등 남가주의 해안선을 따라난 바닷가는 모두 좋은 서핑 스팟이다. 매니아들은 완벽한 파도를 찾아내기 위해 웨이브 헌팅을 떠나기도 한다. 서핑의 참 맛을 아는 이들은 파도가 더 좋다는 이유로 겨울에 더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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