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좋을까
3박4일 나파 밸리로 취재여행을 다녀왔다.
“너무 좋겠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마시는 취재니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취재는 놀러 가는게 아니라 일하러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파 밸리는 이번이 네 번째인데 전에 갔던 세 번의 ‘여행’과 이번 한번의 ‘출장’은 완전히 준비와 기분이 달라서 개인적으론 결코 신나는 여행이 아니었다. 신경 쓸 일이 너무나 많고, 수집해야할 정보도 산더미 같으며, 다녀와서는 정리하고 기사로 써야하는 부담.
게다가 여기에 나오는 사진 20여장을 쓰기 위해 찍은 사진은 200장도 훨씬 넘으니, 다니는 곳마다 사진 생각, 음식이 나와도 먼저 덥석 먹었다가는 큰일나지, 사진부터 찍은 다음에 어려운 메뉴 이름들을 일일이 적어야 하고, 먹으면서도 재료는 뭐가 들어갔는지 살펴보는 일. 그냥 “야, 맛있다!”하고 먹으면 딱 좋겠는데 취재는 그게 안 된다는 말이다.
몇 년전에 언니들과 다녀온 자매여행기를 기사로 쓴 적이 있는데 그런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들은 아 좋다! 하고 지나가 버리면 그만인 곳들을, 우리는 아 좋다! 하고 한 줄만 쓸 수 없는 것이기에 자료를 챙기고 가는 길을 기록하며 경치를 머릿속에 찍어두고…이러니 이게 여행인가. 잘 모르고 지나치면 다시 가서라도 확인하고 써야되는 것이 레저 기사의 고충인 것이다.
아주 오래전 영화평 기사를 얼마동안 쓴 적이 있는데 이 때도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영화 실컷 보고 다니니 얼마나 좋겠냐”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영화 깨나 좋아한다던 사람이었지만 영화를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두편씩 보는 일은 고역이었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외국영화나 로맨틱 코미디 같은 것만 보는 것이 아니고, 대중의 관심도에 따라 폭력이 자심한 범죄영화나 스릴러, 싸구려 영화들도 고루 보아야 했으니 결코 즐겁기만 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명인이나 인기 스타를 인터뷰하는 것도 비슷하다. 한국과 미국의 왕래가 적었던 옛날에는 웬만한 배우나 가수가 LA에 와도 꼭 신문에 인터뷰를 하곤 했다. 사람들은 ‘스타를 직접 만나니 얼마나 좋을까’하고 부러워했지만 나는 좋은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스타들은 유명도가 낮을수록 잘난체를 하는 경향이 있어서, 지가 무슨 대단해서 인터뷰를 하는 줄 아나. 건방을 떨면 건방져서 밥맛, 하고 싶으면서도 괜히 빼느라 튕기면 취재에 애를 먹여서 짜증나게 만드는 것이다. 대개 진짜 스타들은 실제로 만나보면 무척 겸손한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취재의 고충은 요리클래스 취재를 다녀오면서 밥을 굶는 경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맛있는거 많이 먹고 다녀서 얼마나 좋겠냐’고 말하는 여러분,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요리를 취재하고 오면서 쫄쫄거리는 배고픔의 비애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눈물 섞인 빵의 의미를 모른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이유는 시간적 제약 때문으로 요리클래스는 모두 아침 10시~11시에 시작하여 한창 점심시간인 12시~2시에 끝난다. 그런데 이 클래스들이 모두 신문사에서 편도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먼 지역에 있기 때문에 강좌가 끝나기가 무섭게 완성된 요리의 사진만 찍고는 부랴부랴 달려와야 하는 일이 대부분인 것이다.
가끔은 학생들이 시식할 때까지 있는 남아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갑자기 얌전해지는 나로서는 절대로 밥 달라 소리를 못하기 때문에 마음에도 없이 사양하다가 그냥 돌아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그래도 한국사람들은 인정이 있어서 먹을 것을 챙겨주기도 하고 싸주기라도 하는데 미국 클래스에 가면 얄짤이 없다.
요즘은 선생님들과 낯을 좀 익혀서 곧잘 얻어먹지만 푸드 섹션 처음 만들던 몇 달간은 요리 취재 있는 날은 점심 굶는 날로 각오했을 정도니, 다른 취재도 아니고 음식 취재에 그랬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좋아 보이고 멋있어 보여도 그것이 ‘일’이면 결국은 ‘일’이라는 것, 그것이 가끔 나를 보고 ‘얼마나 좋을까’라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작은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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