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우리아이들…어떻게 기를까
공부 잘 하기 <104>
논술과 Critical Thinking
얼마 전에 한글을 공부하는 미국 학생을 만났다. 필자와 한국말로 오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말을 잘 했다. 그러면서도 그 학생 말이 한국말 배우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특히 한국의 촌수를 이해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 말에 필자는 한국의 촌수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를 자랑하려고, “미국은 족보가 한국의 호적 같이 되어 있지 않아서 자기 집안 내력을 알려면 ‘Family Tree’를 만드는데 우리는 호적이라는 책이 있어서 거기 가보면 우리 가족은 물론, 일가 친척까지 다 기록이 되어 있다. 미국은 먼 친척은 모두 한데 묶어 ‘Kissing Cousin’이라고 하지만 한국은 4촌, 6촌, 이종 사촌 등이라고 그 언어 자체가 아주 과학적이라고 한창 자랑 겸 설명에 바빴다.
열심히 듣고 있던 이 학생은 “그렇다면 한국에선 연인 사이가 어떻게 갑자기 brother가 되느냐? 또 이 ‘오빠’란 연인이 바뀌면 brother가 많아지느냐? 또 결혼을 하면 왜 모음만 하나 바뀌느냐?”고 물었다. 모음이 바뀐다는 말을 못 알아들은 이 필자에게 그 학생은 “한국에선 ‘오빠’가 ‘아빠’ 즉 ‘오’가 ‘아’가 된다”라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 학생 같이 미국 사람들은 그 언어 자체가 대단히 Logical하다. 미국 사람들은 서로 싸우거나 분쟁이 있으면 반드시 이런 말을 쓴다. “I will talk to my lawyer.” 아니면, “I will let you talk to my lawyer.” 변호사에게 가서 직접 면담을 하자고 은근히 공갈까지 한다. 아직 한국에선 그렇게 변호사에게 가서 말을 하라는 사람은 한사람도 못 보았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에겐 이런 법, 저런 법 등의 Logical한 것을 따지는 대신에 “길을 막고 물어 봐라!” 즉 ‘남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대인관계의 조화가 더 중요한 것이다.
Lawyer까지는 안 가더라도, 한국사람들은 싸울 때 “너 잘났다”라고 하는데 그 말 자체만 보면 그 내용은 어디까지나 칭찬이다. 즉, “잘 나셨습니다”인데 이것을 logical하게 따져보면 이것은 칭찬이지 욕은 아니다. 또 다음 욕은 “너! 그래 그리 잘났으니까 잘 먹고 잘 살아라”라고 한다. 그것도 “잘 태어나셨으니 잘 잡수시고 잘 사십시오”라는 축복의 말이지 욕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축복과 칭찬의 말이 어떻게 욕이 될 수가 있을까?
그런데 더 좀 생각을 하니 한국사람들은 ‘너 혼자 잘 태어났고, 너 혼자 잘 먹고, 너 혼자 잘 살고!’ 즉 남들 다 못 그렇게 하는데 혼자만 그러니 ‘조화를 깨는 놈’이다. 그러니 욕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써는 한국 학생들이 ‘왕따’를 당하는 것이 큰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교복이 자율화된 후부터는 똑같이 유명 brand name의 옷을 입어도 다른 학생들이 거의 다 입는 학교에 다니면 그 아이는 왕따는 물론 안 당할 뿐만 아니라 유행을 따르는 In-Group에 속한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로 아무도 그런 유명 maker의 옷을 못 입고 다니는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는 그 학생은 소위 ‘왕따’를 당한다. 미국의 어떤 옳고/그른 logic보다는 ‘조화를 깨는 놈’이 바로 이 왕따를 당한다.
몇 년 전에 프랑스 파리에서 비행기 기내식 박람회를 했다. 제일 좋은 음식 1,2,3등을 뽑았는데 한국의 비빔밥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그 뽑힌 이유가 더 놀랍다. 그 이유는 2가지였다. (1)이 음식은 음식의 영양의 조화를 제일 잘 이룬 음식이었다. (2)둘째 이유는 그 비빔밥의 양념이었다.
이 양념이 음식의 ‘양’을 ‘음’으로 만들고 ‘음’을 중성으로 만들고, 양념의 톡톡 치는 것으로 조화를 시킨다는 것이다. 이 양념의 어원을 공부해 보고 더욱 더 놀랐다. ‘양’은 원래가 ‘약’이라고 하는 ‘약’(medicine)이고 ‘념’은 ‘생각, 개념의 념’에서 왔다. 다시 말하여 많은 생각이 들어간 약=양념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양념을 가지고 조화를 이룬다는 그런 뜻이다. 다시 말해서 영양의 조화 맛의 조화 이 두가지 이유로 1등을 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이 조화를 왜 이리도 강조를 하느냐 하면 이것이 우리의 문화 속에 꽉 박혀 있기 때문이다. 문화와 언어는 우리가 분류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위의 소개한 학생에 따르면 한국말이 어렵다면서 영어는 wife 하나면 되는데 한국말은 wife 하나의 단어가 10개 넘는다고 한다! 이 학생은 “부인, 처, 집사람, 마누라, 여편네, 내자…” 등을 열심히 외우고 나서, 이제는 wife에 관한 비슷한 말은 다 외었나보다 하고 안심을 했더니 누가 자기 부인을 보고 “임자”라고 부르더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영어가 한국말로 통 번역이 안 될 때가 있는가 하면, 또 한편 영어로는 통 번역이 안 되는 한국말도 많다.
어느 한인 할머니가 한국말을 아주 잘 하는 2세 손자에게 병원에 함께 가 주기를 원했다. 할머니가 영어가 안되니까 미국 의사에게 통역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의사가 “How may I help you?”(어떻게 도와 드릴까요?)라고 친절히 물었더니 할머니 말씀이:
“허리는 콱콱 쑤시고, 엉치는 우리우리하구, 무릎 팍은 시큰시큰하구, 발목은 쩌릿쩌릿하고, 눈은 아물아물 하다네!”라고 했다. 손자는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통역을 못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반에서 일부러 단어를 익히지 않고 공부를 안한 단어이지만, 또 그런 표현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더라도 금방 알아듣는다. 이런 말의 표현이 바로 우리말의 양념이 아닌가 싶다. 이런 양념적인 요소가 가해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말의 맛을 안다.
이렇게 조화에 익숙해진 한국 사람은 글을 쓸 때도 이 조화가 먼저 그 중점을 차지한다.
“보드라운 흙더미를 제치고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따스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었습니다. 엄마 품처럼 포근했습니다.” -늘 푸른 소나무, 원유순 씀 -
이것은 이 우수 창작동화로 뽑힌 글의 첫 서두이다. 이 글만 갖고는 아직 무엇에 대해 쓰려는지 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글의 조화를 잡기 시작하는 것 같다.
반대로…
April Second was a very special day for my sister Teresita. She wore a beautiful white dress to a special church ceremony. Then she was the guest of honor at a big party with dancing, food, and gifts.
이 글은 몇 줄만 읽어도 금방 Teresita의 특별한 날에 일어난 일을 쓰는 것이라는 주제가 금방 잡힌다.
이렇게 한글로 글짓기와 영어로 글짓기는 이 언어가 가져다주는 문화적 차이 하나만 갖고도 대단히 다르다.
전정재 박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