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싶지 않던 역, 역시나…힘들어!
“정말 이 역할만은 안 맡으려고 1년간 버텼다.”
영화 ‘실미도’에서 사나이의 열정과 집념, 좌절과 눈물을 온몸으로 보여준 설경구. 그가 이번에는 ‘신화’의 사나이에 도전한다.
설경구는 영화 ‘역도산’(감독 송해성·제작 싸이더스)에서 ‘천황 아래 역도산’이란 칭송을 들으며 전후 일본인들에게 최고의 영웅이던 프로레슬러 역도산 역할을 맡았다.
역할에 따른 카멜레온 같은 변신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그였지만 이번 역할은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었다. 무엇보다 프로레슬러에 걸맞게 몸무게를 20㎏ 넘게 늘려야 했고 대사도 대부분 일본어,여기에 까다로운 심리묘사에서 190㎝가 넘는 진짜 프로레슬러와 맞붙는 격렬한 경기장면까지 연기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일부의 회의적인 시선을 불식하고 완벽하게 역도산으로 변신했다. 한창 ‘역도산’ 촬영에 몰입하고 있는 설경구를 일본 다케하라시의 촬영장과 후쿠야마시의 기자회견장에서 만나 이틀 동안 이야기를 들었다.
―역도산 역할은 여러 면에서 연기하기 힘든 부분이 많은데 어떻게 맡게 됐는가.
▲솔직히 이 역할을 맡고 싶지 않았다. 거친 액션을 연기하기에 나이도 적지 않고 체중 늘리고 일본어로 연기하는 등 여러가지가 부담스러웠다. 송해성 감독과 제작자인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가 부탁할 때 1년간 버텼다. 하지만 차대표가 ‘1순위 후보가 너고 안 되면 내가 한다’는 말에 ‘그것만은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손을 들었다.(웃음)
―그 이유 외 역할이 주는 매력도 있었을 텐데.
▲왜 없겠는가. 반대로 ‘나이를 더 먹으면 이런 역할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슬링과 일본어 연기를 하면서 체력전을 펼치는 연기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았다. 욕심과 매력이 컸지만 자신은 없었고 지금도 연기하며 ‘왜 승낙했을까’ 후회한다. 하지만 매 장면 정말 정성들여 찍고 있다. 치열하게 살다간 한 사나이의 모습에 공감해 주기 바랄 뿐이다.
―유달리 그늘지고 일그러진 삶의 인물을 자주 맡는데.
▲일부러 찾는 것은 아니지만 굴곡진 삶을 연기하는 게 배우로서 매력적이다. 직선적인 삶,단선적인 감정은 별 매력이 없다.
―연기를 하면서 역도산은 어떤 사람이라고 느끼는가.
▲이번에 입는 의상 한벌이 그동안 내가 출연한 영화 의상을 모두 합친 것보다 비싸다. 이전에 연기한 변두리 인생에 비해 역도산은 중심부에 사는 인물이다. 하지만 연기를 하면 할수록 모르겠다. 대중 앞에서의 모습과 내면이 너무 복잡하다. 그만큼 재미도 있다.
―촬영 전부터 몸무게를 엄청나게 늘린 것이 화제가 됐는데.
▲‘실미도’ 촬영 이후 하루 4시간씩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 전문코치와 함께 먼저 몸을 불린 뒤 운동으로 근육을 다졌다. 한 달 만에 72㎏에서 88㎏으로 늘렸다. 현재 95㎏이다.
―갑자기 몸무게를 늘려 건강에 이상이 있거나 불편한 점은 없는가.
▲건강에 문제는 없다. 갑자기 살찌는 것도 체질인 것 같다. 하지만 90㎏을 넘어선 이후 움직이는 데 불편하다. 얼마 전 발톱을 깎는데 뱃살 때문에 손이 발끝에 닿지 않더라.(웃음)
―영화촬영 때문에 4개월째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데 힘들지 않은가.
▲왜 안 힘들겠는가. 처음에는 음식부터 모든 것이 짜증이 났다. 그냥 바깥 풍경만 일본에서 찍고 내부는 한국세트에서 찍지,왜 이곳에 왔나 싶었다. 하지만 촬영이 진행되면서 지금은 “잘 왔다”는 생각을 한다. 시대극의 느낌이나 현장감각에서 도움이 되는 게 많다.
―그래도 그 정도 오래 떨어져 있으면 가족 생각이 날 텐데.
▲꼬마 애 얼굴이 엄청 보고 싶다. 곧 한국으로 가니까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사 대부분을 일본어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배우나 성우가 더빙하는 것도 고려했다고 들었는데.
▲내가 일본어 대사를 직접 하겠다고 했다. 내 역할이고 내 연기인데 내 목소리로 대사를 해야지 왜 남의 목소리를 빌리는가. 더빙은 죽기보다 싫다고 했다.
―한국에 가면 실제 경기장면을 찍는다고 들었다. 대역이나 특수효과가 있는가.
▲와이어 액션 같은 특수효과를 쓰지 않고 실제로 미국과 일본의 현역 레슬러들과 경기를 펼친다. 미국의 WWE의 상위랭커와 일본의 톱랭커들이 특별출연한다. 그때 와서 보면 내가 196㎝에 체중 140㎏이 넘는 미국 레슬러를 드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 있는 동안 대강 ‘합(액션장면에서 각각의 동작들)’을 맞춰 두었다.
/후쿠야마(일본)=김재범 oldfield@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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