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의 방학
“다음주부터 난 싱글이에요. 애들이랑 남편이 한국 가거든. 나말고도 그런 사람 여러명 있어요. 저기 A부장도 와이프가 애들 데리고 한달 동안 한국 나간대고, B위원도 식구들이 모두 떠난다지 뭐야. 한달 동안이나 싱글이면 참 좋겠죠? 나는 2주밖에 안 되는데…”
선배가 분명 나를 놀리고 있었다. 혼자 노는 시간이 ‘2주밖에’ 안 된다고? 부러움을 넘어서 약도 오르고,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는 내 신세를 생각하자 울적해지기도 하였다.
여름방학 때면 한국으로 아이들을 보내는 사람들이 주위에 적지 않다. 한국에 부모나 시부모가 계시는 가정에서는 긴긴 여름방학동안 그러잖아도 베이비 시팅이 고민인 아이들을 친정이나 시댁에 보내어 할머니 할아버지, 친척들도 만나고 한국말도 배워오도록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그동안 부모들도 휴가의 시간을 갖고, 겸하여 부부중 한사람이 아이들을 따라나간다면 상호간에 더할 수 없이 즐거운 방학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서울에 언니 세분이 살고 있어도 아이를 덥석 내보내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는 ‘친정’이 그곳에 있었지만, 4년전 돌아가시고 난 후 이제는 사뭇 마음이 다른 것이다. 시댁 역시 대부분 미국에 자리잡고 있는 터라 아이를 한국에 보낼 일이란 특별히 만들지 않으면 힘들게 되었다.
주부입장에서 남편과 아이가 함께 집을 떠나는 것만큼 좋은 선물은 없다. 그것은 ‘완전한 휴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으로부터의 휴가, 가족들로부터의 휴가, 잔소리와 신경 쓸 일들로부터의 휴가, 나만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시간적 휴가, 나 혼자 누리는 공간적 휴가, 즉 진정한 의미의 휴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끼리 얘기지만, 남편과 아이, 둘 중 한쪽만 떠나야할 형편이라면 솔직히 아이보다는 남편이 없는 쪽이 훨씬 몸과 마음이 편한 것을 어쩔 수 없다.
오래 전 남편이 타주에서 일해야했던 관계로 6개월간 떨어져 산 적이 있다. 그때 아들이 세 살쯤 됐었는데, 남편이 짐을 싣고 집을 떠나던 순간 나는 갑자기 이 세상에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로 그 때까지 그렇게 종종걸음치며 바쁘게 집안 일을 해댔는데 남편 한사람이 없어지자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나 혼자 먹자고 밥할 일도 없고, 세 살배기 아들을 위해 요리할 일도 없었다. 빨래도 너무나 줄었기 때문에 며칠동안 안 해도 아무 일 없고, 청소? 아기와 둘이 사는데 더러워질게 뭐 있어. 또 있다손 쳐도 누가 뭐랄 것도 아니니 청소할 일도 없었다.
그때 나는 처음 깨달았다. 집안 일의 대부분은 남편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물론 아이들이 크고 나면 사정은 좀 달라지지만, 여자에게 남자란 편하게 기댈 수 있는 기둥 같은 존재라기보다 오히려 끊임없이 보살피고 먹여 살려야 할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남자 입장에서 아내와 자녀들이 모두 떠난 생활이 어떠한지,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추측하기로 얼마동안은 아내의 바가지와 아이들 등쌀로부터 자유롭겠지만,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필요’에 의하여 아내를 찾게 되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밥해먹기, 빨래하기를 손쉽게 해결하는 남자란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니지만 우리 아들도 바로 얼마전 열흘 일정으로 보이스카웃 캠핑을 다녀왔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우리 부부도 방학을 갖게 되었지만 그 열흘이 얼마나 빨리 지나던지, 잔뜩 세워놓은 계획들은 거의 다 해보지도 못하고 어머, 어머, 하는 사이 어제 아들이 돌아왔던 것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가 없는 동안 남들이 재미있게 지내는 것을 싫어하는가 보다. 내가 친구들 만나 재미있게 놀다오면 남편이 괜히 시비를 걸 듯이, 아빠를 꼭 닮은 아들은 집에 오자마자 엄마 아빠가 뭐하고 놀았는지부터 묻는다.
그동안 우리가 함께 한 일이라고는 할리웃 보울 갔다온 일, 아웃렛 쇼핑 다녀온 일, 그리고 7월4일 친지 초대로 저녁 먹으러 갔던 일밖에 없는데 영화 한편 못보고 방학이 다 지난 것이다. 더구나 마지막 하루는 아들이 돌아오면 해주려고 부엌에서 지지고 볶느라 정신없이 보냈으니, 과연 부모들에게 방학다운 방학이 가능한 건지, 그것도 의문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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