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선 <본보 편집위원>
한국청년 김선일씨의 참수소식을 듣고 지난 2주간 나는 그의 죽음과 관련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느냐는 주변의 통탄에도, 뭐라고 한마디해야 되지 않느냐는 동료들의 권유에도 정말이지 전혀 동조할 기분이 아니었다.
어떤 이유로 그의 죽음을 설명할 것이며, 무슨 위로로 그의 영혼을 달랠 수 있을 것인가. 거저 침묵 밖에는 그 충격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의 죽음을 초래한 저간의 세상사정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알면서도 조금도 어찌 할 수 없는 ‘무력’과 ‘절망’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소리 없는 통곡뿐이었다. 이 ‘야만의 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 같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그는 종교와 공부밖에 몰랐던 24살의 순수한 청년이었다. 고교시절부터 이슬람 문화를 사랑해 아랍선교를 꿈꿔온 떼 묻지 않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이라크 근무도 학비를 벌 요량보다 선교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생사를 걸고 전쟁터를 넘나들며 물품을 배달하면서도 틈틈이 현지인들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했다. 이라크처녀를 사랑해 결혼도 고민했다.
그들은 그런 그를 목을 잘라 죽였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본 참수장면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고 한다. 절망적인 공포에 떨며 살고 싶다. 살려달라던 그의 비참한 절규를 누가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김씨가 죽고 난 다음에도 지난 2주간 세상은 여전히 가증스러웠다.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이용하기에 바빴다. 테러리스트들은 일말의 미안함도 없이 이번 만행의 효과에 흡족해 했다. 또 그 결과에 고무돼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 자신들의 주장을 세상에 알려 하고 있을 것이다.
전쟁을 시작한 측에서는 그것을 이유로 더욱 전의를 불사르고 있다. 그들의 눈엔 고 김선일이 단순한 한 명의 전사자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한국의 반미주의자들은 이를 계기로 한국군 파병반대와 미군 이라크 철수를 더 높이 외치고 있다. 다른 쪽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공수부대라도 보내 응징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검을 놓고 새삼 세상을 비관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죽음과 무관하게 세상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흘러갈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한국정부가 좀 더 기민하게 대처했다면 그를 살렸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그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의 행동은 너무 무책임했다.
그의 납치와 관련해 외국 언론사의 사실확인 전화를 여러 차례 받고도 그것을 그냥 무심코 넘겼다는 외교부 시스템의 안일함은 이 정권의 실체를 말해준다. 더구나 그 사실 자체를 숨기면서 태연하게 해당 언론사에 반박까지 한 비도덕성은 저들이 과연 국민을 위한 공무원들인가하는 절망까지 들게 한다.
국민적인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외교부장관이라는 사람이 한 주장은 더 더욱 듣기 민망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장관을 바꾼다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강변이다. 그래 그의 주장은 틀리지는 않는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사람을 바꾼다면 될 일도 안 된다. 당연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국민들이 화가 난 것은 담당 공무원들이 업무에 너무 소홀했으며, 또 그 사실을 속였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장관에 대한 책임을 묻는 국민의 분노에 발끈해 책임자로써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못한 것은 실망을 넘어 절망이다.
책임을 물어도 조사결과가 나온 후에 하겠다. 여론에 밀려 장관을 바꾸지는 않겠다 장관이 반발하자 대통령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대통령의 화답은 특유의 오기가 다시 발동한 것인가. 그냥 묵묵히 그렇게 하면 될 일을 왜 자꾸만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이번 사안은 정부가 실수 없이 최선을 다했다하더라도 성과가 없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정부는 한국군이 파병돼 있는 외국에서 자국민 보호에 실패한 것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이든 정부든 이제 차분히 흥분을 가라앉혀야 한다. 고 김선일씨는 미국과 그 협력세력을 응징하겠다는 테러 조직의 불행한 희생자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극단적 이기주의자들에 의해 어처구니없이 죽은 희생양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의 죽음을 더 이상 이용하지도 미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억울하게 죽은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할 때만이라도 전쟁이 어떻고, 테러가 어떻고 늘어놓지 말았으면 한다.
테러가 나쁜지 좋은지, 전쟁이 옳은지 그른지 나는 모른다. 다만 가슴이 미어지는 건 아무런 힘도 없고, 잘못도 없는 내 착한 아들이 그 틈바구니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울부짖는 부모와 그냥 함께 슬퍼해 주는 것이 도리다.
김씨가 이라크에서 온몸으로 경험한 전쟁은 참혹했다. 소름끼치는 전쟁의 참상에 치를 떨었다. 그가 살아있을 때 친구에게 보낸 이메일은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들의 참상과 그 전쟁을 시작한 미국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 차 있다.
하느님이 나를 여기 이라크에 이유 없이 보내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확실히 깨달은 것은 내가 이래 가지고 선교사가 되려고 했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냐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도 전쟁은 안 된다. 그래 그것이다. 그가 24살의 젊은 나이에 전쟁터에서 깨달은 것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를 더욱 절망하게 만든 것은 전쟁에 반대하면서도 파병에는 찬성해야하는 세상사의 모순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제 고향 땅에 묻혔다. 그럴싸한 이념과 명분으로 이기심을 포장한 이 야만스런 세상을 떠났다. 이제 그만 세상이 그를 놓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수라를 지나 천상을 나비처럼 훨훨 날아올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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