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과 닥터 옥이 달리는 열차 위에서 결투를 벌이고 있다.
영웅도 악인도 고뇌하며 사생결단
여름철용 팝콘영화의 범주를 마음껏 초월한 활기찬 액션과 진실된 감정이 고루 잘 배합된 대단히 재미있고 지적이기까지 한 영화다. 내용과 특수효과 그리고 액션과 주인공들의 성격묘사가 전편보다 월등히 나은 박진한 작품이다. 영화에서 특히 보기 좋은 것은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와 그가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감춰야 하는 관계의 대상인 메리 제인간의 화학작용. 세상에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피터의 자기희생과 상심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의 불확실성 때문에 고민하는 메리 제인의 안타까움과 동경으로 가득 찬 눈동자와 상호 감정이입 때문에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 영화가 전편보다 나은 것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 스파이더-맨의 적으로 나오는 닥터 옥. 악의 화신이 된 자신의 처지를 고뇌하는 그의 개성 그리고 닥터 옥으로 나온 알프레드 몰리나의 연기가 묵직해 영화에 무게를 준다. 영웅이나 그의 적이 모두 자신의 운명에 대해 고뇌하면서(비극성 마저 띠었다) 사생결단의 결투를 벌이는데 우리는 당연히 영웅을 응원하면서도 악인의 처지에 동정하게 된다. 전편에 나온 사악한 그린 가불린(윌렘 다포)은 닥터 옥에 비하면 광대에 지나지 않는다.
전편이 끝난지 2년 후. 대학생이 된 피터(토비 맥과이어)는 피자배달과 데일리 뷰글지의 고약한 편집국장 조나(J.K. 시몬스의 연기가 재미있다)를 위해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학비를 번다. 피터가 시간에 맞춰 피자를 배달하기 위해 여러 상자의 피자를 들고 뉴욕의 마천루의 숲 사이를 고속으로 날아다니면서 스파이더-맨의 빠르고 멋있는 공중묘기가 첫 선을 보인다. 무대배우가 된 메리 제인(커스튼 던스트)은 피터의 정체와 마음을 몰라 깊은 좌절감에 빠진다. 이로 인해 메리 제인은 우주비행사와 약혼까지 하게 되는데 피터는 메리 제인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운명 때문에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이번의 스파이더-맨의 적은 영구 에너지원을 창조할 기계를 고안한 닥터 옥테이비어스(몰리나). 그는 그린 가블린의 아들로 피터의 친구인 백만장자 해리(제임스 프랭코)의 재정후원으로 이 기계를 발명한다. 그런데 기계의 시범 실험이 잘못 되면서 선량한 과학자인 옥테이비어스는 몸에 4개의 독사 모양의 머리를 한 강철 문어발이 달린 괴물로 변한다. 그리고 신문에 의해 닥터 옥이라 명명된 옥테이비어스는 사악한 기계의 조종을 받아 뉴욕을 유린한다.
한편 피터는 메리 제인에 대한 사랑 때문에 또 다른 자신인 정의구현자 스파이더-맨의 구실에 대해 회의한다. 이런 고민과 회의 때문에 스파이더-맨은 공중비상을 하다가 초능력을 상실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피터는 마침내 스파이더-맨의 옷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메리 제인의 사랑을 되찾기로 결심한다. 이런 피터와 메리 제인의 갈등과 함께 자기 아버지를 죽인 스파이더-맨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해리와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아는 피터간의 불협화음이 곁가지를 친다.
스파이더-맨이 종적을 감추면서 뉴욕의 범죄는 75%나 상승한다. 그리고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해줄 영웅을 원하는 민심을 깨달은 피터는 회복기에 들어선 메리 제인과의 관계를 파기하고 다시 스파이더-맨의 옷을 입고 손에서 거미줄을 내쏘며 하늘로 치솟는다.
영화에서 가슴이 졸아들 정도로 긴장되고 숨막힐 만큼 박력 있는 액션장면이 뉴욕 시내를 고속으로 달리는 엘-트레인(시카고에 나 있는데) 위에서 벌이는 스파이더-맨과 닥터 옥간의 치열한 대결. 장시간 계속되는 이 장면에서 스파이더-맨이 손에서 내 쏜 여러 갈래의 거미줄로 달리는 열차를 정지시키는 모습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여기서 스파이더-맨은 사람들 앞에 자기 얼굴을 드러낸다. 결국 스파이더-맨은 세계 평화를 위해 사랑하는 메리 제인을 떠나 보내나(이별 장면이 심금을 울리는구나) 사랑의 힘이 궁극적으로 하는 일을 그 누가 알 것인가.
특수효과가 일품인데 스파이더-맨의 벽 기어오르기와 공중묘기 못지 않게 거대하고 압도적인 4개의 촉수로 역시 벽을 기어오르고 공중비행도 하는 닥터 옥의 모습도 장관이다. 연기들도 모두 잘 하는데 피터의 아주머니 메이로 나오는 로즈메리 해리스가 액션영화에 평화로운 기운을 제공한다. 감독 샘 레이미. PG-13. Columbia. 전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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