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혐의 등 전면 부인… 첫 재판 30분만에 끝나
쿠웨이트 국민은 개 극한 용어쓰며 침공 정당화
사담 후세인(67) 전 이라크 대통령을 단죄하는 세기의 재판이 1일 시작됐다.
바그다드 공항 내 미군기지 수용시설에 구금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후세인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12월 13일 미군에 체포된 이후 7개월만에 처음이다. 재판은 대통령궁이 있던 바그다드 국제공항 인근의 미군기지 ‘캠프 빅토리’내에서 진행됐다.
이라크특별재판소는 이날 후세인과 그의 고위 측근 11명을 차례로 소환, 혐의 내용을 적시하고 항변을 듣는 인정신문을 했다.
측근들에 앞서 가장 먼저 법정에 나타난 후세인은 예상대로 재판소의 정통성을 부정했다.
후세인은 아랍어로만 진행된 신문에서 재판관이 전쟁범죄 고문 반인륜범죄 집단학살 등 7가지 혐의사실에 대해 인정신문을 한 뒤 혐의사실이 적힌 법률서류에 서명을 요구하자 변호사가 동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거부했다.
그는 신분을 확인하는 재판관의 물음에 두차례나 나는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다라고 말했다. 재판관이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혐의를 지적하자 그는 쿠웨이트는 이라크 영토이며 따라서 침공이 아니다라며 이는 이라크 국민을 위한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쿠웨이트 국민을 ‘개(dogs)’로 지칭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 개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느냐고 반문해 재판관으로부터 허용될 수 없는 용어라며 제지를 받았다. 그는 또 이 모든 것은 연극이라며 부시가 악당이고 부시의 재선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세인은 재판 내내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신문과정에서 수차례 손짓을 한 뒤 누구를 위한 재판이냐며 따져 재판이 중단되기도 했으나 간간이 주머니에서 노란색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적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재판관에게 오히려 당신은 누구냐고 묻는 등 누가 신문하는 지 착각할 정도였다. 재판관이 다국적군을 대표한다고 하자 후세인은 다국적군을 대표한다면 당신은 자격이 없다. 이라크 국민을 대표한다면 좋다라고 재판관의 자격에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관이 후세인 집권 당시의 법에 의거해 재판한다고 하자 국민의 뜻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을 대통령이 만든 법으로 재판한다는 것은 모순아니냐고 따졌다.
CNN 등 미국 언론들은 재판과정을 지켜본 이라크 국민들은 후세인이 재판관을 압도하며 아직 대통령으로서의 당당함과 위엄, 논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재판은 혐의사실에 대한 재판관의 신문과 후세인의 변호를 들은 뒤 30여분만에 끝났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채 흰색 셔츠에 쥐색 재킷을 입은 후세인은 약간 야위고 눈가에는 긴 주름이 늘어졌지만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수염은 길게 길렀지만 깔끔하게 다듬은 상태였다. 이날 법정에는 극소수 언론사만 입장이 허용됐으나 재판이 끝난 뒤 재판모습이 일반에 공개됐다.
후세인은 앞서 수감된 미군기지에서 헬기로 법원 건물에 들어선 뒤 다시 호송버스를 타고 법정에 도착했다. 법정에 도착할 당시 수갑이 채워지고 다리와 허리에는 철제 포승으로 묶인 상태였으나 법정에는 모두 벗은 채 들어섰다. 호송버스에는 4대의 미군 험비차량과 앰뷸런스 한대가 뒤따랐다.
살렘 찰레비 재판소장은 이날 재판에 앞서 후세인을 비롯, 피고들 모두 건강상태가 양호하다고 말하고 후세인은 매일 의사로부터 건강상태를 검진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의 재판절차에 대해 2005년까지는 공식적인 기소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날 신문이 끝난 뒤 다음 절차로 후세인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수집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후세인 재판과 더불어 그 공정성과 처벌수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방전도 불붙었다.
모하메드 아불하산 쿠웨이트 정보장관은 이날 후세인은 이라크와 쿠웨이트 국민을 대량학살한 전범이라며 그에게 사형이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라크에 들어가지 못하고 요르단 암만에 머물고 있는 20명의 후세인 변호인단은 국제법과 제네바협정을 위반한 점령군에 의한 재판은 불법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와 유럽연합(EU)은 30일 사형이 EU의 대 이라크 관계정상화 추진을 가로 막아서는 안될 것이라고 극형 언도 방침에 대해 분명히 반대했다.
스콧 맥클렌런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과 측근들이 법의 심판을 받는 데 매우 기뻐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안준현 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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