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어린이들이 밝게 웃고 있다. 그들은 평양에서 서로 만난 것이다. 11명의 남한 어린이들이 순수하게 북쪽 어린이들을 만나보러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들이 평양에 간 까닭은‘평양 어깨동무어린이병원’준공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만난 어린이들은 서로 손잡고 노래를 부르고 선물을 나누며 즐겁게 지낸 것으로 안다. 이게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 병원을‘어깨동무’라는 단체가 지은 것이라니 놀랍다. 이 병원에는 서울대 어린이병원의 조언과 지원으로 최신 의료 장비를 갖췄고, ‘공동 육아와 공동체교육연구소‘가 놀이방을 꾸며주었다고 한다. 즉 주최측과 협력단체가 서로 힘을 모아 개가를 올린 것이다.
‘어깨동무’라는 단체는 이어서‘남북어린이어깨동무’로고가 새겨진 필기도구 등을 생산할 학용품 공장을 평양에 세우고, 고아들이 있는 원산‘애육원’에 콩우유 생산 장비를 설치할 예정이다. 또한 다른 민간단체와 협력하여‘어깨동무어린이병원’을 평양 이외의 다른 도시와 시골에도 세우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흐뭇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왜 이 단체‘어깨동무’는 북한 어린이를 위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 뜻이 분명하다. 그들은 통일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통일 연습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지금의 남북한 어린이들이 통일시대의 주역을 맡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의 기근이 절정에 달했을 때 어린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한 일이 없었다는 회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느낌은 오직‘어깨동무’만의 것인가. 그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한 쪽은 뜻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데, 다른 한 쪽은 속수무책으로 바라다보고만 있는 현상의 차이일 뿐이다.
또‘어깨동무’가 말하는 통일 연습은 필요한 것인가. 작은 일을 시작할 때도 사전에 연습을 해야 원활하게 실천에 옮길 수 있다. 하물며‘통일’같은 민족적 대사에 임하려면 다방면의 점차적인 연습이 필요하다고 본다.
독일의 통일을 보더라도 그 동안 통일을 위하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우리들같이 반세기 이상 다른 체제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함께 생활한다면 갖가지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사전에 그 충격을 줄이면서 화합할 수 있도록 다방면의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영화‘굿바이 레닌’은 동독 생활에 익숙한 노모가 받은 충격을 줄이려는 아들의 고심을 담고 있다. 결국 노모는 통일 후의 독일을 모른 채 세상을 뜬다. 동독의 생활이 더 행복했던 것이다.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통일 연습은 세계 여러 곳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언젠가 읽은 글에 따르면 예전의 동유럽 어느 나라 수도에 있는 학교에는 남북한 어린이들이 같이 다니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언니·오빠라고 부르며 지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북한 학생들이 유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다. 그들이 남한 유학생과 어울리는 일은 없을까.
언젠가 미국 서쪽에서는 남북한 학생들의 토론회가 열렸던 것으로 안다. 탈북자가 미국에 들어왔을 때 동포들이 그를 도와준 이야기도 있다. 용천 사건이 났을 때는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해외 동포사회에서 정성을 모았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통일의 연습이라고 본다. 어쩌면 아주 작고 부분적이지만 통일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평양에서 남북한 어린이들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어우러져 같이 지낸 것처럼 7,000만이 한 나라 안에서 생활하는 날을 이룩해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결코 분단된 땅을 인계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맡은 중대한 책임이다. 통일이란 부자연스러운 상태를 본래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되돌려 놓는 작업이다.
‘어깨동무’라는 하나의 민간 단체가 어린이 병원을 지었고 통일을 연습시키려고 남북 어린이들을 병원 준공식에 참가시킨 것은 어른들의 염원을 전달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들 하나 하나의 마음에도 현재의 부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려는 의욕이 자라날 줄 안다.
허병렬/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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