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을 어쩌나.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쩌나…”
이라크 테러단체에 납치되었던 김선일씨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어머니가 넋을 잃고 절규한 말이다. 그 말이 가슴에 걸려서 며칠이 지나도록 가슴 한가운데가 뻐근하다.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추모의 열기는 한국에서 정치적 사안들과 맞물려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의 죽음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비극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음이 일상사인 전쟁터에서 유독 그의 죽음이 특별한 것은 살해방식의 처참함이 주는 충격과 함께 그의 죽음이 안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죽임을 당할 만한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평범한 민간인이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미국의 우방국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제단의 제물처럼 희생이 되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를 ‘반인륜적 테러’라고 규탄하면서 “자유 세계는 그들의 짐승 같은 행위에 위협받지 않을 것이다”고 공언했다.
문제는 그것이 짐승의 행위가 아니라는 데 있다. 자신에게 전혀 위협도, 해도 되지 않은 대상을 그처럼 참혹하게 죽이는 짐승이 있을까. 인간만이 그렇게 할 수가 있다. 김씨를 살해한 무장집단은 지금쯤 일말의 양심의 거리낌도 없이, 성전을 수행했다는 자부심에 차 있을 것이며, 그 것이 테러와의 전쟁의 어려움이다.
미국에서 테러리즘과 핵·화학무기 정책 권위자로 제시카 스턴이라는 하버드대학 교수가 있다. 몇 년전 드림웍스가 제작한 영화 ‘화해의 중재자’에서 니콜 키드만이 핵물리학자로 나와 테러공격으로부터 뉴욕시를 구해내는 역할을 했는데 그 역의 모델이 바로 스턴 박사였다.
그가 얼마 전 테러에 대한 미국정부의 잘못된 접근방식을 지적했다. 김선일씨 보다 며칠 먼저 미국인 방위산업 사업가 폴 존슨 주니어가 참수된 후 딕 체니 부통령이 자신만만하게 공언했다 - “미국은 살인자들을 하나 하나 색출해서 모조리 없애 버릴 것이다”
스턴 박사의 지적은 ‘살인자들’이 모조리 없앨 만큼 정해진 숫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에 연루된 테러분자들을 없앤다 하더라도 그 뒤를 이어 속속 콩나물 솟아나듯 불어나는 테러리스트들을 일일이 색출해서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라크는 현재 테러리스트를 양성하는 온상이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21세기의 십자군 전쟁으로 비유하면서 이슬람권의 짓밟힌 자존심 회복을 위한 ‘성전’을 부추기는 알카에다의 선전이 젊은이들에게 먹혀들고 있기 때문이다.
먹을 것도, 할 일도, 앞날에 대한 희망도 없는, 그래서 분노만이 그득한 아랍권의 보통 젊은이들에게 ‘성전’은 사실상 매력적인 돌파구가 된다. 알라신을 위한 ‘성전의 전사’로 거듭나면서 먹을 것이 보장되고, 삶의 의미를 찾으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간 폭탄들이 되는 것이다.
종교집단 테러리스트들이 무서운 것은 ‘나만이 옳다’는 절대적 정의감 때문이다. “신은 우리 편, 우리는 신의 뜻을 수행한다”는 믿음 때문에 어떤 비상식적인 일도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다고 여긴다.
그들 그 사회의 ‘순교자’가 우리에게는 테러리스트들이다.
‘눈에는 눈’식의 보복 전쟁은 해답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는 이슬람권을 분노의 연대의식으로 결속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테러집단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들은 악의 집단이고 ‘나만이 옳다’는 자기 확신에 찬 나머지 민심을 계산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죄없는 한국인 청년까지 억울하게 희생이 되었다.
테러와의 전쟁은 국가와의 전쟁이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과의 전쟁이다. 테러집단은 민심이라는 물에 사는 물고기이다. 후원하는 민심이 없으면 그들은 발붙이지 못한다. 미국이 테러집단에 기우는 이슬람권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비로소 테러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눈에는 눈은 전세계를 장님으로 만들뿐이다”라고 한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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