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은<간호사>
‘가정(家庭)’이란, 한 가족이 살림하고 있는 집안, 집의 울안. 또는 부부를 중심으로 혈연관계자가 함께 살고 있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 이라고 국어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함께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단위마저 깨트리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실리콘 밸리의 끝자락에 살았던 이유로 종종 귀동냥을 할 수 있었고 실리콘 마운틴이라 불리는 이곳도 예외는 아닌 듯 싶다.
‘조기유학’. 예전엔 아이들이 유학생이 되고 엄만 여행비자를 육 개월쯤 받아 왔다갔다했다. 그러나 9.11이후, 여행 비자조건은 더욱 까다로워지고 공립학교에서도 아이들의 편 입학을 받기 전에 적법한 비자가 있는지 확인되어야만 아이들의 입학을 허락한다. 까다로운 절차를 충족시키기 위한 편법으로 사용되는 것이 엄마의 유학. 공부하면 누구에게나 뒤지지 않았을 엄마들의 열정은 용기 좋게 커뮤니티 칼리지를 노크하고, 엄마가 유학생 비자를 받으면 아이들은 자동으로 직계가족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엄마가 국제 학생으로 분류되어 비싼 등록금을 낸다해도 자녀들은 돈 한푼 안 드는 공립학교를 갈 수 있고, 엄마의 공부하는 모습을 솔선 수범해 보여주어 아이들 향학열을 고무시키고, 학생 비자를 받았으니 비자 기간도 넉넉하여 불안해 할 필요도 없고,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다고 할까.
생각보다 훨씬 많은 정도가 사회의 최소한 구성 단위를 유보해 둔 채 ‘맹모삼천지교’를 외친다. 사태의 문제성은 얼마 전 한국 T.V.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서도 방영된 적이 있다. 남편을 홀로, 가을에 왔다 봄에 가는 철새에 빗대어, 혹은 멀리 떨어져 산다는 의미로, 기러기 아빠라는 이름으로 두고 온 엄마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당위성이 있어 보였다.
한국 중학생의 사교육비 정도면, 해외에 나와서도 절약해 살면 아이들 학교 보내고 생활하기에 충분하단다. 또 그 젊은 엄마들은 그렇게 말을 이어갔다. 현지에 이민 와 있는 교민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생업에 매달린 채 아이들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태도는 이미 서울을 떠날 때 벗어 놓고 왔단다. 영어가 되든 안되든 상관없이 학교의 어떤 행사에도 참석하고 영악하리 만큼 학교에서 주는 모든 이익을 알뜰히 챙기는 것이 엄마들의 주임무이며 최대한의 지원이란다. 그들은 돌아 갈 곳이 있고 삶의 터전은 한국이라고. 단지 잠시 모든 것을 유보한 채 좋은 교육의 조건을 찾아 임시로 와 있는 것이라고. 조기유학생들은 교육환경을 좋은 것으로 바꾸는 것이고 이민은 삶의 방향 전체를 바꾸는 것이라고 그들은 강변하고 있었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아이들의 더 낳은 삶을 위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나쁜 일이냐고 되물으며.
아빠들의 정신상태도 많이 변하여 이젠 아내와 자식들을 유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내보내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이 안 되는 사람처럼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거나 주위로부터 무능력자의 취급을 받는단다.
한국 중산층 이상에서 부모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자녀들을 해외로 내보내려고 하고 있다. 그 시류에 떠밀리듯 사회 전체가 합심하여 사회의 최소 구성 단위를 밀어내려는 것을 보며 기초 구성이 깨지거나 동공 상태인 사회는 어떻게 쌓아질까.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자식의 교육이 중요하고 교육을 통한 인력 인프라가 중요한 것을 부인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한창 감성이 예민한 사춘기 때에 혼자 덜렁 인척에게 맡겨 놓는 다던지. 사추기를 바라보는 남편을 달랑 혼자 두고 떠나오는 것은 ‘자녀교육’이라는 한 단어로 모두 양해가 된단 말인가.
미국 사회도 그렇지만 한국의 사회구조 또한 만만치 않아 퇴근 후면, 정성스레 차려진 저녁 식탁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향긋한 차 한잔 놓고 마주앉아 하루의 이야기 들어 줄 상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친구와 동료를 만나 포장마차에서 쓴 소주잔을 기울이며 풀어내는 푸념보다는 건너 방에 불이 켜진 아이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따스한 눈으로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 볼 수 있는 것이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을까, 라고 말한다면 나의 사고 방식은 고려장을 면치 못할 구닥다리라고 돌을 맞을 것인가.
교육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의 어쩌면 이런 일을 거론한다는 것은 극히 개인적이고 일방적인 관점에서 회자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꼭 유학을 와야한다면 엄마의 과보호 속에 아직 덜 자란 여린 잎들로 가정의 버팀목을 잃고 사회의 동공 상태를 만들며 밀려나듯 떠나오는 것보다는, 스스로 마음도 몸도 튼튼한 청년기에 오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준비된 자세로 청운의 꿈을 안고 오는 젊은이들은 길가에 핀 들꽃은 보며 가슴이 쓰려 어쩔 줄 모르거나 하늘을 쳐다보며 후드득 눈물을 떨구며 자칫 흔들리기 보단 좀더 씩씩하게, 바르고 옹골찬 걸음으로, 앞을 보며 걸어나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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