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기념 도서관을 찾아 레이건이 주지사 선거 출마시절 캠페인에 사용했던 자동차를 둘러보는 한인 김원홍, 백은순씨 부부.
드러매틱한‘위대한 삶’과의 만남
5천만 페이지의 각종 문서
150만장의 사진 등 한눈에
“우리는 위대한 대통령이자 위대한 미국인, 위대한 한 인간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정한 친구 하나를 잃었습니다.” 미합중국 제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와 함께 냉전 종식의 주역을 담당했던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는 레이건을 잃은 슬픔을 이렇게 얘기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 존 F. 케네디처럼 누군가의 총에 맞아 요절한 것도 아니고 천수를 누렸지만 그를 보내는 미국 국민들의 슬픔은 컸다. 당신의 정치적 입장이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그가 현대사를 엮어간 굵은 산맥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게다.
레이건의 삶을 한 눈에 보여주는 영화 장면들.
실물 크기로 재현된 레이건의 백악관 집무실.
닷새 동안의 국장을 마치고 시미밸리의 가족 묘역에 시신이 안장된 이후 로널드 레이건 라이브러리(Ronald Reagan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가 일반에게 재개된 14일. 프레지던트 드라이브에 들어섰을 때가 오전 10시, 도서관이 위치한 산길로 올라가며 차의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도대체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한참을 기다리고 섰는데 관리 요원이 다가와 더 이상 주차 공간이 없으니 주변 칼리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셔틀버스를 이용하라고 지시를 한다.
그 날 로널드 레이건 라이브러리에는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엄청난 애도의 물결이 몰려들었다. 오전 11시 무렵에는 시미밸리 프리웨이의 평균 속도가 시속 1마일로 떨어지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기 위해 4시간이 걸렸다니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도서관 입구에는 그동안 시미밸리 주민들이 놓고 간 꽃다발과 성조기, 촛불들이 “We love you” “We’ll miss you” 등 사랑이 가득 담긴 메시지와 함께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장식해 주고 있었다.
레이건 라이브러리는 5,000만페이지의 문서, 150만장의 사진, 수많은 영상 자료들이 소장돼 있는 도서관이기도 하지만 대통령,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레이건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뮤지엄이기도 하다.
전시물들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인간 로널드 레이건의 일생을 재조명해 볼 수 있다. 가난한 술주정뱅이의 아들로 태어나 평범한 대학을 졸업한 B급 배우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말년에는 알츠하이머로 고생하기까지 그의 인생은 극적인 반전의 연속이었다.
첫 전시실. 우리들은 그가 소년 시절을 보낸 1911년 일리노이 주 딕슨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강보에 싸여있는 갓난아기 적 사진, 모험소설을 좋아하던 개구쟁이 소년 로널드의 모습을 대하며 관람객들은 따뜻한 미소를 짓는다. 수영을 잘했던 그는 훗날 구명대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풋볼팀의 선수로 맹활약을 했다. 라디오 아나운서로서의 경험은 훗날 그가 위대한 커뮤니케이터가 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
그의 배우로서의 인생은 1937년부터 시작된다. 당당한 풍채, 정확한 이목구비의 미남이었지만 그가 맡은 역할은 늘 주연 뒷전이었다. 20년 동안 무려 50편이 넘는 영화에 등장했던 레이건. 정말 배우이긴 했던 건가 확인할 길이 없던 그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영상물이 반가웠다. 그가 이상을 제대로 펼칠 무대가 은막보다 훨씬 넓었음은 훗날 증명된 셈이다.
미국 영화 배우 협회(SAG) 회장 등 정치적 역량을 키워가던 그는 19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된다. 8년간의 주지사 시절을 지낸 후 한 발짝씩 백악관으로 전진해나가는 그의 발자취를 지켜보는 건 웬만한 정치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하다. 드디어 그는 1980년도의 선거를 통해 미국 제 4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원의장이었던 오닐은 레이건을 향해 자신이 만나본 가장 무식한 정치인이란 혹평을 서슴지 않았다. 극단적 친 기업주의, 무리한 감세정책, 군비경쟁은 모두 막대한 재정적자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임기 말년에 터진 이란 콘트라 스캔들은 그의 도덕적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힌다. 냉전의 해체를 가져오고 미국의 새로운 아침이라는 낙관적 희망을 심으며 침체 일로에 있던 경제를 회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그에 대해 내려졌던 평가는 인색하기만 했다.
죽음 이후 그에 대한 평가는 180도로 바뀌었다. 부시 행정부의 대립과 갈등의 리더십에 신물이 난 미국인들은 이제 타협과 포용의 레이건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실에는 레이건 임기 때의 대통령 집무실도 실물 크기로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백악관의 만찬’이라는 전시 공간에서는 100명의 준비 위원이 8주간 준비한 백악관 만찬 세팅 과정을 영상물로 볼 수도 있다. 세계의 다른 지도자들이 보내 온 선물, 스포츠팬이었던 그에게 보내졌던 미국인들의 스포츠 관계 선물, 그밖에 보통 미국인들이 보낸 크고 작은 마음의 선물들을 지켜보며 그를 향한 미국인들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영부인의 삶을 조명해보는 전시실도 따로 마련돼 있다. 그녀가 백악관 시절에 입었던 옷들이 전시돼 있는 ‘백악관의 옷장’ 코너 앞에는 유난히 여성들의 발길이 잦다. 1952년에 결혼해 50년이 넘는 세월을 레이건과 함께 했던 낸시, 남편이 그녀에게 가져다 준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삶은 스크린에서보다 훨씬 화려하고 의미 깊었다.
레이건은 루스벨트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지지도를 유지했다. 그의 전기를 쓴 페기 누넌은 레이건의 인기와 성공의 비결은 바로 인간미라 말한다. 위대한 지도자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뛰어난 지성도 기민한 정치감각도 아닌 따뜻한 인간미라는 것, 그것이 ‘영원한 낙관주의자’ 레이건이 세상을 떠나며 21세기 지도자들에게 남겨준 교훈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