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달도 다 지났지, 달력을 흘낏 쳐다본다. 아니, 아직도 6월이지 않은가. 이상하게 길게 느껴진다. 6.25, 6.10, 6.29. 뭔가 또 있는데. 그렇다. 6.15다. 월드 컵 4강. 그리고 붉은 악마다.
무의식의 심층에 가라앉자 있었다.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의식의 표면에 떠올라서인가. 여하튼 6월에 전해지는 뉴스들은 뭔가 심상치 않게 들린다 .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았다. 어렵게 학위를 3개나 땄다.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였다. 선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김선일이라는 한 평범한 한국의 젊은이 이야기다. 그 아름다운 스토리가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영혼구제 사역을 펼치기를 그토록 원했던 아랍 땅에서 아랍 테러리스트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되면서다. 동시에 그 스토리는 엄청난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아랍권 선교사를 꿈꾸던 한 한국인 통역사가 저항세력에게 납치된 후 참수됐다…” 김선일씨 피살과 관련된 뉴욕타임스 기사의 서두다. 계속해 이렇게 이어진다.
“그의 죽음을 알리는 비디오는 한 검은 깃발을 보여준다. 알 카에다의 세포조직인 ‘일신(一神) 지하드’의 깃발이다. 그 깃발의 상단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 있다. ‘일라 외에는 신이 없고 무하마드만이 참 예언자다’…”
이슬람의 구호가 새겨진 깃발 아래에서 아랍권 선교사를 꿈꾸던 김선일씨가 죽음을 맞이했다. 상당히 상징적인 묘사다. 그의 죽음은 순교(殉敎)라는 암시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 땅의 영혼구제를 위해 준비하다가 그 땅에서 무고한 피를 흘렸으니까.
또 다른 의미는 없을까. 뭔가 다른 상징성이 떠오르는 듯 하다. 뭘까. 문명의 충돌. 너무 거창한 건 아닌지…. 광명 세계에 대한 암흑 세력의 도전. 뭔가 그런 생각이 스친다. 한반도의 상황과 오버랩 되면서.
1920년대, 30년대 초반의 상황과 흡사하다. 한반도 상황을 보는 일부의 시각이다. 나치 히틀러와의 협상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결국은 히틀러에게 질질 끌려 다니다가 엄청난 재앙을 맞았다. 북한 핵 협상도 흡사한 코스를 달리고 있다는 거다.
협상은 90년대부터 시작됐다. 6자 회담도 벌써 세 차례다. 그러나 항상 같은 결과다. 뭔가 진척되는 듯 했지만 결국은 원점이다. 비유가 암시하듯 한반도 상황은 대파국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경고가 들어 있다. 한국은 당시 프랑스와 비교된다. 불안과 눈치보기, 몽상적 평화주의에 젖어 유화책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게 그렇다는 거다.
20년대의 상황과 흡사하다. 한반도뿐이 아니다. 이라크 상황, 확대하면 아랍권 전역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미국이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어떤 결과가 올까. 국제 평화시대가 열린다. 몽상에 가깝다.
암흑시대가 올 수도 있다. 그 암흑시대라는 게 그렇다. 파시즘이 발호한 30년대 유럽보다 더 암울하고 위험한 시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당시에 비해 인구가 훨씬 많아졌다. 게다가 핵 등 대량 살상무기가 개발되고 널리 확산돼 있어서다.
뉴욕대학의 퍼거슨 같은 역사학자들의 견해로 국제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전체주의 불량국가의 연대 가능성을 토대로 그 같은 불길한 전망을 하고 있다.
이 경우 열강의 주변지역, 예컨대 한반도, 중동지역 등에 돌아가는 피해는 더 크다. 최악의 시나리오이지만 이런 지역에서는 제한 핵전쟁 발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명세계는 오늘 날 수세기 동안 보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파괴의 세력에 직면해 있다. 국제사회가 하나가 돼 대처하지 않을 때 인류는 불안정한 장래를 맞게 될 것이다’-. 잇단 민간인 납치, 드리고 연이은 목베기 테러와 관련해 나온 지적이다. 공연한 말이 아니다.
가난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 중에 살아온 한국인 청년이 그 꿈을 펴보지 못하고 이라크에서 무참한 죽음을 당했다. 이 죽음은 그러면 무슨 의미를 던져 주고 있을까.
테러와의 전쟁은 현대문명과 문명을 거부하는 세력의 전 지구적 충돌이다. 말하자면 자유 민주주의 세력과 광신적 전체주의 세력의 싸움이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이 사실을 한 의로운 죽음을 통해 한국인에게 새삼 인식시키려는 섭리는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있다. 이 거대한 충돌의 최전선에 놓여 있는 나라가 어쩌면 한국일 수도 있다는 사실의 재확인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시작에 불과 할 수도 있다.
옥 세 철<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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