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화가>
대학 때 선택과목으로 법학개론을 공부한 적이 있다. 담당 교수님은 법과는 거리가 먼 듯 선한 분이셨다. 그래서도 잘 기억하고 있는데 법을 공부한 남편도 법에 관한 얘길 자주 한다. 차를 타고 오가는 길 위에서나 식탁에서도 그의 법철학을 가끔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새로 공부하라면 법 공부도 할만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법에서 정의하는 자유의 범위는 <자기가 두 팔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으되 그곳은 남의 코가 시작되는 곳 앞까지 만이어야 한다>고 한다. <자신도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서 육법전서 좀 안다고 너는 무기(無期), 너는 사형(死刑)이라고 타인을 심판할 수 있는가? 도저히 그리할 수 없는 회의 때문에 법복을 벗고 강단에 섰다>는 교수얘기도 들려주었다. 지금 지구 위에서는 사형제도가 사라져가고 있다. 고대 바비로니아 왕의 하무라비 법전에서 비롯된 인과응보적 법 감정에서 연유되었던 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는 106개국, 지금도 두고 있는 나라는 89개국이다.
사회심리학자 머즐로는 인간의 욕구가 다섯 단계로 변화한다고 했다. 1단계는 먹고 입고 사는 생리적 욕구단계이고, 2단계는 그것이 충족되면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안전욕구의 단계, 사랑도 하고 삶의 의미도 추구하는 존재욕구가 그 다음단계이며, 네 번째 단계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싶은 명예욕구가 오고, 그 다음이 자기의 뜻을 실현하고 싶은 5단계라고 했다. 인간의 욕구가 그러하다면 이 욕구의 실현과정에서 빚어지는 범죄도 그러할 것이다. 이를 입증한 콜린 윌슨의 얘기는 못 먹고 살아 남의 것을 훔치는 생리적 욕구범죄가 1단계이고, 자신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려 저지르는 죄가 2단계의 안전욕구 죄요, 성범죄가 3단계에서 많이 발생하고, 가정과 학교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저지르는 죄가 4단계이며, 자기실현의 욕구로 저지르는 범죄가 5단계라고 한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모두 원천적으로 서로가 적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경치 좋은 곳을 산책하면서 다른 사람이 눈에 뜨이면 못마땅해한다. 저 혼자였다면 하는 생각을 하고, 극장 앞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 때 앞에 선 사람들은 모두가 경쟁자가 된다는 것이다.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만원이니 다음에 오시오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은 동종(同種)을 혐오한다. 저 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다른 종(種)은 더욱 혐오한다. 자기 자신과 처자식 외에는 모두 별종으로 치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이종(異種)혐오의 대표적 예로 나치의 유태인 혐오나 학살을 들 수 있다. 저 모래벌판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자행되고 있는 살상, 그것도 이와 다를 것 하나 없는 것이다.
영화 ‘실미도’를 보았다. 미국에서 비디오가 아닌 영화를 극장에 앉아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들을 들뜨게 하고도 남는다. 극장 문을 나서기 전 화장실에서 마주친 분은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지인이라도 만난 듯 이런 얘길 했다. “우리 아들이 한국말을 모르거든요.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겠다고 해요. 데려오길 잘 했어요. 아주 잘했지 뭐예요.” 나도 아주 잘된 영화 같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가 어쩌구 저쩌구 할만큼 아는 게 없다. 그러나 어두운 화면 앞에서 극장 밖의 일은 한 순간도 떠오르지 않았다는 말로 제작진이나 연기자들에게 찬사를 보낸다면 부족할까? 우리 영화의 수준이 세계적이라는 말을 이제는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극장 문을 나서서 지금까지 삭지 않는 덩어리가 목에 걸려 있다. 실미도-. 머릿속에 한자로 ‘失尾島’라 써본다. 영화를 보고 나올 때의 그 허전하고 쓸쓸했던 내 마음처럼. 인간의 꼬리를 영원히 잃어버린 섬의 이야기? 기실 꼬리가 사라진 순간부터 인간의 죄와 불행이 시작되었으므로. 신과 인간, 그리고 생명과 존재에 대한 물음, 그것은 우리들 삶의 영원한 모티프가 아닐까?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불쌍하고 벙어리로 살아온 게 억울하다. 머즐로의 얘기나 콜린 윌슨의 얘기나 사르트르의 얘길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눈처럼 깨끗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누군가 그 기능을 맡을 수밖에 없다면 그이가 말한 교수의 말처럼 형량을 정하고 심판함에 있어 스스로 겸허하고 신중해야할 것이다. 그들 또한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죄인들이므로. 하물며! 몇 몇 상위 정치권의 눈짓 하나로 매일 매일의 사선을 넘어온 질긴 목숨들을, 하나하나 살아야할 이유가 있는 목숨들을, 한 순간에 재로 만드는 5단계와 2단계의 범죄, 동족까지 이종으로 보는 시력의 오류가 김일성 부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꿈에도 그리고 있는 내 조국에도 시력불구자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 몸서리치게 한다. 정치는 누가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언제면 불필요해 질는지? 허물어져 더욱 아름다운 로마의 콜로세움에 네로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커다란 스크린이 밤하늘을 밝히면 세상은 한 걸음 나아졌다고 감격해도 좋으리라. 콜로세움에 여든 아홉 번째 마지막 불이 켜지는 날 지구 위에서 사형제도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땐 우리도 아픔을 묻고 녹슨 서류함을 버려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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