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올림픽대회가 개최되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는 고대 도시국가 시대에 그리스의 중심 도시였다. 그리스는 여러 개의 도시국가로 나뉘어져 있으면서도 민족적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아테네가 그 중심에 있었으니 오늘날의 수도에 비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가 마케도니아에 멸망한 후 로마시대, 이슬람 세력의 지배시대를 거치면서 아테네는 보잘것없는 도시로 몰락했다. 그 후 프랑스 혁명 후 민족주의 운동의 물결을 타고 그리스가 오스만 튀르크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게 되자 1834년 아테네가 그리스의 수도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도 아테네에 못지 않게 유서가 깊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 도시국가로 시작하여 인류사상 전무후무한 대제국으로 발전했고 서기 455년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1천년 이상 세계의 중심지였다. 로마에서는 그 후 교황청이 무소불위의 교권을 누렸지만 도시 자체는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등 피폐 일로를 걷다가 이탈리아 반도가 통일된 후 1871년 통일왕국의 수도로 이탈리아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역사가 오래된 나라는 모두 이렇게 유서 깊은 도시를 수도로 삼았다. 런던은 잉글랜드가 통일된 직후 11세기부터 수도가 되었고 1066년 노르만 정복을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계속 수도의 면모를 지켜왔다. 모스크바는 13세기 모스크바 대공국의 수도가 되었다. 1712년 피터 대제가 페테르스부르그로 천도했지만 나폴레옹은 수도가 아닌 모스크바를 점령했다. 러시아 혁명 후 모스크바는 러시아뿐 아니라 전 소비에트 연방의 수도가 되었다.
한국에서 수도의 역사를 따지자면 3국 분열시대의 수도였던 경주, 평양, 부여가 있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국가의 수도로는 고려의 개경과 조선의 한양밖에 없다. 조선을 세운 태조가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를 한 것은 구 지배세력의 영향을 무력화시키고 새로운 지배세력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한양이 지금의 서울인데 이제 또 천도 문제가 나와 시끄러워지고 있다.
행정수도의 이전문제는 수도권의 인구 유입을 억제하기 위해 3공 시대부터 구상되어온 방안이다. 서울에 모든 정부기관이 집중되어 있고 따라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가 서울에 편중됨으로써 서울은 인구과밀로 몸살을 앓아왔다. 일부 정부기관을 다른 곳으로 분산함으로써 인구분산을 꾀하고 지역의 고른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 행정수도를 이전하자는 취지이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 이 문제가 다시 제기된 후 최근 추진과정에서 입법, 행정, 사법 등 모든 정부기관을 이전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수도의 이전, 즉 천도인데 이런 사안은 국가의 백년대계와 관계 있고 지역 주민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기 때문에 충분히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모든 정부기관이 한 곳으로 가고 따라서 모든 민간활동이 그곳에서 이루어지게 되면 시간문제일 뿐 서울과 같은 문제점이 또다시 발생하게 된다. 인구를 분산하고 지역을 고루 발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충청지역의 몇 곳이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것 같은데 새 수도가 되는 지역은 큰 혜택을 받게 되지만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은 급격히 쇠퇴하고 말 것이다.
수도 이전과 관련해 또 생각할 점은 서울의 상징성이다. 남한이 북한에 비해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상징으로는 대한이라는 국호와 태극기, 그리고 수도 서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울이란 말은 한국 수도의 고유명칭이지만 순 우리말의 수도라는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수도를 모두 옮긴다면 지금 서울에 서울이란 지명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야 한다.
이미 서울시와 시의회는 정부의 수도 이전에 크게 반발하여 반대운동을 벌이기로 했다고 한다. 행정수도의 이전 구상이 서울의 인구 과밀을 분산시키자는 취지에서 정부기관을 분산 이전하는 것이라면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기존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음모라든지, 신수도 건설로 정치자금을 조성하기 위한 것 등 불순한 동기에서 기존 서울을 황폐화시키려고 한다면 그 천도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기영/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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