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1일 메모리얼 데이에는 내가 살고 있는 일리노이의 작은 마을에서도 예년처럼 기념행사가 있었다. 참전용사들이 행진도 하고 참전 기념비가 있는 공원에서 기념식도 가졌다. 마을 밴드의 일원인 나도 예년처럼 행사에 참가했다.
이라크에서 거의 매일 미군이 몇 명씩 죽고 있는 요즈음이기에 이번 행사는 더욱 근엄했고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그 어느 때보다도 감사하는 모습이었다.
같은 날 수도 워싱턴에서는 2차 대전 참전 국립 기념비가 공식적으로 제막되었다. 40만 명 이상의 미군이 전사했던 2차대전이 끝난 지 반세기가 넘도록 미국은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념하는 국립 기념물을 갖지 못했었는데 이제 살아있는 참전용사들이 얼마 남지 않은 오늘에야 기념비가 건립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만시지탄(晩時之歎)을 느꼈지만 한 편으로는 피 흘린 용사들을 잊지 않고 감사를 돌리면서 그들의 희생을 마음속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지난 6일은 2차대전의 큰 고비가 되었던 연합군의 노르만디 상륙 60주년 기념일이었다.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인사들이 현장을 방문하여 추념했는데 마침 이 날은 20년전 노르만디 상륙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같은 장소에 왔던 FP이건 대통령의 서거소식이 겹친 날이었다. 물론 6월6일은 한국의 현충일, 즉 한국의 메모리얼 데이이고, 또 이 달 25일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54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처럼 5월말에서 6월말에 이르는 이즈음은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나라를 위해, 또 자유와 독립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특히 미국에서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고 불리는 6.25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한국전쟁이 많은 한국인들에게도 그리고 코리안 아메리칸에게도 ‘잊혀진 전쟁’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6.25를 경험하지 않은 전후세대들이 주류가 되어 있는 오늘날 한국전쟁의 기억이 점차 잊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특별한 역사적 사건들을 기념하는 이유는 글자 그대로 우리의 생각 속에 이를 기록함으로써 오래 동안 잊지 말자는 뜻에서이다. 그렇다면 공산침략으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 흘린 사람들을 기리는 것은 이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소홀히 할 일이 아니고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잊을 일도 아니다.
특히 미국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한국전쟁에서 죽은 5만4,246명의 미군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바야흐로 한국의 젊은 세대들 사이에 반미감정이 치솟고 있고 주한미군의 이전과 감축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미동맹관계가 크게 변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 때는 6.25의 잿더미 속에서 “중공 오랑캐의 침략을 받아...”라고 울분으로 노래하던 우리였는데 이제는 그 오랑캐의 나라 중국이 미국보다 더 가깝고 중요한 나라가 되었단다.
그래서 더 이상 미국과 미군을 고마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젊은 세대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한국전에서 치른 미군의 희생에 대해서 그동안 충분히 감사했다”고. 반면에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미국과의 관계를 최악으로 몰아간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은 노르만디 기념식에서 “우리는 미국의 희생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고 늘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감사했다가 아니라 앞으로도 감사할 것이라고.
주한미군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를 논하는 것이나 한미동맹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모색하는 것과는 별도로 우리는 그동안의 공(功)을 공으로 인정하고, 희생을 희생으로 기리며, 감사할 곳에 감사를 돌려야 하겠다. 평소에도 ‘Thank you’라는 말을 잘 못하고 안하는 우리들이라 그런지 한국인들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부끄러운 지적을 받기도 한다.
미군의 주둔으로 그동안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도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능력과 의지와 땀흘림 이외에 미국의 도움이 있었 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 메모리얼 데이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면 이번 6.25를 전후해서는 꼭 시간을 내어 한국전쟁 기념물을 방문하여 주변을 청소하고 꽃을 꽂아 주고, 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찾아 위로와 감사를 표시해 보자. 우리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한국전은 절대로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자.
장석정/일리노이주립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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