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MBC ‘불새’ 왜 휘청거리나
에릭만 집중 부각…’지은-세훈’ 관계 뒷전
역할 바꾸기 통한 긴장구조 갈수록 느슨
시청률·작품성 두마리 토끼 다 놓칠 위기
‘인기 드라마 불새 대본 긴급수정’ ‘불새 이은주 짝짓기 갈팡질팡’….
MBC 월화드라마 ‘불새’(극본 이유진, 연출 오경훈)와 관련된 소식들이다. 불과 2주 전만해도 시청률 30%를 넘어 1위에 올랐던 ‘불새’는 5월 31일 17회분부터 시청률이 하락하며 불길한 징후를 드러냈다.
경쟁 드라마인 SBS ‘장길산’의 추격이 거세다고 하더라도, 시청률 30% 내외의 안정권에 접어든 드라마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7일 19회의 시청률은 25.3%로 추락세가 진정되고 있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다. 비상(飛翔)하던 드라마 ‘불새’에 왜 비상이 걸린 걸까?
▲ 불새가 하늘을 난 이유
‘불새’는 현실을 밀도 높게 그려내거나 고고한 이상을 제시한 ‘명작 드라마’가 아니다. 청춘남녀의 사랑을 다룬 통속 멜로드라마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불새’에 대해 ‘뻔하다’ ‘상투적인 사각관계’라고 비판하는 건 오히려 진부하다.
‘불새’가 빠른 속도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역할 바꾸기’라는 매력적인 장치 때문이었다. ‘불새’는 초반 오렌지족인 지은(이은주)이 세훈(이서진)을 유혹하는, 여성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성 역할 바꾸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4회부터는 ‘사랑의 역할 바꾸기’를 보여주었다. 부잣집 딸이었던 지은은 몰락하고 가난한 고학생이었던 세훈은 벤처기업 CEO로 성공해 재회한다.
옛 사랑과 재회하는 동시에 지은은 서린 그룹 후계자인 정민(에릭)의 구애를 받게 된다. 역할만 바뀌었을 뿐 10년 전 풋사랑과 판박이인 정민과의 관계를 통해서 지은은 과거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훈의 감정과 아픔을 느끼게 된다.
정민과의 관계 맺음은 지은이 세훈과 다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정화 과정인 셈이다. 현재의 사랑이 과거의 사랑을 고스란히 투사하는 재연 장치인 동시에 타이밍을 놓친 옛 사랑을 완성하는 절차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불새’는 ‘새롭다’는 수식어를 얻는다.
▲ 비상에 왜 비상이 걸렸나
문제는 이런 역할 바꾸기를 통한 사랑의 완성이라는 드라마의 본질이 극이 진행될수록 헝클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어디까지나 세훈과 지은의 사랑을 반추하고 완성하기 위한 장치로서 한정돼야 할 정민_지은 관계는 그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백마 탄 왕자님’의 결정판인 정민은 지은이 세훈을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매력적이다. 지은도 더 이상 정민과의 관계를 통해서 세훈을 떠올리지 않고 그 자체의 사랑에 몰두한다.
세훈은 빛 바랜 옛 사랑의 주인공인 동시에 과거를 탐문하는 ‘수사반장’으로 전락하고, 이야기는 기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결국 도를 넘어 발전한 지은_정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정민의 아버지 서문수 회장(박근형)이 지은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무협지 같은 상황설정 튀어나온다.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오는 “불새가 정민의 1인극이냐” “지은이는 세훈에게 돌아갈 수 없는 것이냐”는 불만은 그래서 나온다. 정민의 부피만큼 세훈의 발목을 잡는, 광적인 미란(정혜영)의 역할이 과도하게 커진 것도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는 요인이 된다.
▲ 논란과 작가의 반론
작가 이유진씨는 정민의 비중이 너무 큰 것을 두고 “정민과 미란은 지은과 세훈이 10년 전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라며 “그 산이 가파르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들이 완전한 사랑을 얻는다고 말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그의 비유를 ‘불새’에 고스란히 적용하면 지은은 ‘금강산’을, 세훈은 ‘칼산’을 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지은은 도무지 정민과의 관계를 끝내려 하지 안는 반면, 세훈은 일찌감치 미란과의 고통스러운 관계에서 벗어나 지은을 기다리고 있다. ‘불새’의 긴장감이 떨어지는 또 다른 이유다.
이씨는 ‘대본 수정’ 논란에 대해서 “1회부터 줄곧 대본을 수정해 왔다. 작가라면 최선의 작품을 쓰려는 욕심이 있다”며 “하지만 시청률을 의식해 갑작스럽게 세훈의 비중을 늘린 적은 결코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 7일 방송에서는 긴급 수정한 대본의 주내용으로 알려진 ‘세훈의 비중 강화’가 없어 그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씨는 또 드라마 결말을 두고 무성한 소문에 대해 “네 명의 주인공이 죽는다는 설정은 말도 안 된다. 이제까지 멀어지고 힘들어진 지은과 세훈이 22회부터는 사랑을 완성하게 된다”며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주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다”고 말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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