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전 한국에서 발생한 한 사기사건 때문에 실소한 적이 있다. 일명 ‘맹물사기’로 불린 이 사건은 보통 물을 차세대 대체연료로 만들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했다며 투자자들을 유혹해 수십억원을 챙긴 케이스였다. 사기범들은 시연회라고 사람들을 불러모은 후 조잡하게 만든 기계에 물을 붓고 고체연료를 이용해 불이 솟게 하는 수법으로 참석자들의 눈을 속였다.
이런 엉성한 사기에 수백명의 피해자들이 생겼다니 어처구니가 없지만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기범들과 피해자들은 같은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이었다. 시연회가 “놀라운 기술을 발명할 수 있게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기도로 시작된 것은 물론이다.
일부 목사는 사기범들에게 수천만원의 사례비를 받으며 투자 교인 모집에 적극 나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목사가 권유하는 데다 획기적인 기술을 발견했다는 사람들이 매주 교회에서 만나 함께 ‘아멘’하던 교우들이니 안 믿기도 힘들었겠다 싶다. 게다가 수십배의 수익 보장 약속은 일단 귀가 솔깃해질 만하다. 사기범들은 대단한 심리 전문가들이다. 이 사건은 신뢰관계를 교묘히 이용해 저지른 전형적인 사기였다.
잇달아 터지고 있는 대형 사기사건으로 한인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차떼기’니 뭐니 해서 웬만한 액수에는 상당히 무감각해 졌는데도 최근 발생하고 있는 사기규모에는 입이 벌어질 정도다. 고수익을 보장하면서 한인사회에서 돈깨나 있는 비즈니스 업주들로부터 거액의 투자금을 받은 후 지능적으로 이를 빼돌리고 도주한 C+ 인베스트먼트 사건이나 한국에서 투자벤처 회사 자금 수천만달러를 횡령한 후 미국으로 도주했다가 체포된 김경준씨 케이스는 대형 사기사건의 전형적인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두 사람의 투자 실력이 남들보다 얼마나 뛰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심리를 읽는데 아주 탁월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쉽게 이끌어 냈으며 자신을 실제보다 커 보이게 하는데 귀재들이었다.
C+ 인베스트번트사의 찰리 이씨는 LA 다운타운에 첨단 사무실과 초호화판 집무실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이 곳에 한번 다녀오면 자연스럽게 “대단한 젊은이”로 여기게끔 뛰어난 연출력을 발휘했다. 또 다른 소품으로는 최고급 승용차가 동원됐다. 김경준씨는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타운 유명 인사의 동생이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사람들은 그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다. 여기에다 샐러리맨의 전설로 불리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한때 그와 함께 사업을 했고 개인적으로도 친한 사이였다. 이런 사실이 투자자 모집에 어떤 효과를 가져다 줬을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이것을 전문가들은 ‘후광효과’(halo effect)라 부른다. 수많은 전문사기범들이 사무실을 호사스럽게 꾸미고 유력 인사들과 찍은 사진들을 즐비하게 늘어놓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사기범들에게 유력 인사들과의 관계, 그리고 고급 승용차, 호화판 집무실 등은 후광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동원되는 소도구들이다.
후광효과를 잘 분별해 내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기피해를 당할 위험이 높음을 의미한다. 최근 연방정부는 노인들과 함께 소규모 자영업자, 그리고 이민자들이 사기범들의 가장 좋은 표적이 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인사회에는 그만큼 사기피해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현명한 투자는 권장돼야 하지만 여기에는 투자대상의 거품을 걷어낼 수 있는 냉철한 안목과 후광을 지워볼 수 있는 지우개 같은 통찰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지 머니’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손쉽게 돈을 불릴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가정이 흔들리고 친구 관계까지 금이 가는 사례들을 주위에서 수도 없이 접하게 된다.
잇단 투자사기 사건들은 여러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 줬지만 동시에 땀흘려 번 돈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계기도 됐다. ‘대박의 환상’에 잘못 빠지면 ‘쪽박의 추억’만 남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윤성<특집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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