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아줌마’로 인해 LA 한인사회가 요즘 좀 시끄럽다.
한국의 KBS-TV는 지난 주말 인기 생방송 프로그램인 ‘아침마당’ 4000회를 기념해 LA 특집을 제작했다. 전체 3부로 제작된 특집 중 1부인 ‘안녕하세요! LA 아줌마’가 지난 23일 밤 LA에서 방영된 후 방송을 본 한인들 중 상당수가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식당, 세탁소, 화장품 가게 등을 하는 자영업 주부 5명이 출연했는데 내용이 너무 고생담 일색이어서 “같은 LA 한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한다”는 지적들이다.
방송을 시청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한마디로 기분 나쁘다. 저런 방송이 나가면 한국에서 미주 한인들을 어떻게 보겠는가”“부끄러운 내용들이다. 여자는 죽어라 고생하고 남자는 바람이나 피우는 이상한 동네 같은 인상을 준다”“주류사회에 진출해 성공한 여성들도 많은 데 왜 한쪽 분야의 사람들만 골랐을까. 출연진 선정이 잘못 되었다”“고생스런 면만 부각시켜서 한국 사람들에게 묘한 우월감을 주려는 의도는 아닐까”…
일부 언론과 한인단체들은 ‘한인사회에 대한 왜곡’이라며 KBS에 항의 서한을 보내겠다고 나설 정도로 지금 ‘LA 아줌마’에 대한 여론은 좋지가 않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그럴까”- 나는 TV 방송을 못 보았기 때문에 뒤늦게 KBS 인터넷으로 들어가서 문제의 생방송을 보았다.
비난 여론 중에 수긍이 가는 부분들이 있었다. 지금 미주 한인사회는 층이 두텁다. 이민 연륜에 따른 수직의 층도 깊고, 직업에 따른 수평의 스펙트럼도 넓다. 주부들만을 예를 들어도 갓 이민 와 막노동하는 여성들로부터 ‘가진 것은 돈과 시간뿐’이어서 전세계로 골프 여행 다니며 유유자적하는 여성들까지 삶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LA 아줌마’ 출연자들이 모두 노동 집약적 자영업 종사자들로 채워졌다는 것은 미주 한인여성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이기에 적합하지가 않았다.
사회자가 “낯설고 물선 땅에서 얼마나 흘린 눈물이 많았을까”“지금의 웃음 뒤에는 땀과 탄식, 한숨이 있었을 것”이라며 분위기를 ‘눈물 바다’로 몰고 가는 것도 미국에 사는 우리로서는 기분이 상하려면 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일부에서 지적하듯 “미주 한인들을 지나치게 비하했다”거나 “추한 모습만 보였다”는 주장들에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내가 본 5명의 출연자들은 모두 강인한 정신력으로 역경을 이겨낸 건강하고 밝은, 아메리칸 드림의 산 증인들이었다.
내가 받은 느낌과 LA의 다른 시청자들이 받은 느낌이 왜 그렇게 다른지를 알게 된 것은 출연자중 한사람인 양복희씨(48)와 통화를 하면서였다.
“60분 생방송을 끝내고 집에 오니 그날 밤 KTE에서 방송을 하더군요. 그런데 내용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어요. 내가 봐도 편집이 잘못 되었구나 싶더군요”
KBS 지사인 KTE가 제한된 방송시간에 맞춰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성공한 모습들은 잘려나가고 주로 고생한 이야기만 들어갔다고 그는 전했다. 60분 프로그램 전체가 나갔다면 지금과 같은 ‘거의 인신 공격성 비난’은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보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시청자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아도 “오늘 출연한 분들은 전부 다 성공을 하신 분들이지만 실패한 분들도 많이 있으리라 본다. 부의 나라 미국에서도 노력과 땀이 없이는 성공하기 불가능하다는 교훈이 있었던 좋은 프로그램 같다”는 반응이다.
우리는 무엇을 부끄러워하는 것일까. 제작사가 다양한 직종의 여성들을 선정하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출연 여성들에 대해 ‘부끄럽다’며 쏟아지는 비난은 부당하다.
이민 초기의 몸을 돌보지 않는 노동, 미국생활 적응 과정에서 겪는 가족간의 갈등, 그리고 그 모든 어려움을 마침내 과거로 돌려낸 성공담은 분명 한인 이민사회의 모습이고, 때로 그것이 너무 억척스럽다고 해서 부끄러움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본다. 대부분의 한인이민 여성들은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는 팔자를 타고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일하는 만큼 얻는 것도 많다. 내 삶을 내가 주도하는 당당함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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