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의 진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브롱스 지역에 최근 한국어 학습이 꽃을 피우고 있다. 지난해 가을 브롱스 과학고등학교가 한국어를 정식 제2외국어 선택과목으로 개설한데 이어 올 3월부터는 브롱스 베이체스터 지역의 MS 142 중학교에서 방과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브롱스 과학고 한국어 과목 수강생들이 대부분 한인학생인 반면 MS 142 중학교는 수강생 전원이 흑인 및 히스패닉계 학생이라는 것이 특이할만하다. 이에 MS 142 중학교 한국어 수업을 참관했다.
기자 선생님?
MS 142 중학교 정문을 통과해 학교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히스패닉계 남학생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다가와 물었다. 그 학생을 따라 마침내 도착한 작은 교실. 책상 주위에는 흑인학생 6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고 한인 조미경 교사는 칠판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기자가 들어서자 모든 학생들이 일제히 일어나 상체를 90도 각도로 굽히며 힘차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전체 수강생 7명 중 한 명은 이날 결석했단다. 기자가 찾은 장소는 매주 수요일 방과 후 오후 2시30분부터 4시까지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흑인학생들의 교실.
지난 3월부터 공부를 시작했으니 아직 3개월을 미처 못 채웠다. 하지만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은 실로 놀라웠다. 이미 한글의 모음과 자음을 익혔고 글자를 보고 소리를 만들어낼 줄 알았으며 아직 의미는 파악하지 못해도 한글을 읽는데는 그리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또 각자 영어 이름을 한글로 표기해 기자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날의 학습 주제는 가족 관계.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단어는 이미 지난 시간에 배웠고 이날은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삼촌, 사촌까지 배우는 날이란다.
수업 도중 학교 관리인이 복도를 지나가자 학생들은 또다시 일제히 일어나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고 관리인도 머리 숙여 한국식으로 답했다.
우선 흑인학생들이 어떻게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됐는지 물었다. 당연히 한인교사가 시작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흑인학생들이 먼저 조 교사를 찾아와 한국어를 가르쳐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방과 후 한국어 학습을 시작하게 됐다는 것.
한국어를 배우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 학생들에게 물었다.한국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아예 한국식 이름까지 만들었다는 재원(6학년)이는 커서 경찰이 되고 싶다. 경찰은 지역주민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일하는 직업이다. 어디에 배치돼 근무할지는 모르지만 한국어를 구사한다면 한인들에게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재원이는 고교 진학 후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택하고 싶어한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앤토니(7학년)도 내 꿈은 우주항공사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최초의 흑인 우주항공사는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또 길을 잃은 한인 노인들을 도와줄 수 있고 한국을 여행할 때도 편리할 것이라며 언젠가 한국 방문의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답했다.
반면 히스패닉계인 헥터(7학년)는 난 이미 서반아어를 말할 줄 아는 이중언어 구사자다. 여기에 한국어까지 구사하게 된다면 남보다 특이하기도 할 뿐 아니라 아무도 날 놀리거나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라며 비교적 또래다운 이유를 댔다.
한국어를 배운 뒤 뭐가 좋아졌는지에 대해 물었다. 매튜(7학년)는 마켓에 갈 때마다 한인들과 한국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도 재미있고 또 엄
마 아빠가 이용하는 세탁소의 한인 주인 아주머니는 매번 내게 새로운 한국어 단어를 가르쳐주는 또 다른 나의 스승이라며 자랑했다. 매튜는 태권도까지 배우고 있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대단하다.
그렇다면 한국어가 다른 제2외국어와 어떠한 면에서 다르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제이슨(7학년)은 한국어는 상당히 `쿨’한 언어다고 한마디로 정의를 내렸다. 특히 상대에 따라 달리 사용되는 존대어와 경어 표현들이 다른 언어와 가장 다른 점이라고 꼽은 제이슨은 친구들이 못 읽는 글씨를 자신이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어 공부가 재미있다고.
이에 헥터는 한글은 철자법과 발음에 있어 무척 특이하다. 특히 모음과 자음이 합쳐서 소리가 나는 방법이 제일 신기하고 또 `~요’로 문장이 끝나는 반복되는 법칙들도 친근감이 든다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꼽히는 칸로이(7학년)도 한국어를 공부하는 친구들끼리 한국어로 대화를 주고받을 때는 마치 우리들만의 비밀 언어를 갖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너무 재미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렇다면 그들 부모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학생들은 모두 부모님들도 우리가 한국어 공부하는 것을 무척 반기고 있으며 또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계신다고 입을 모았다.
수업이 끝나갈 즈음 교실을 찾은 앤토니 엄마는 색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 아니겠는가? 남들이 갖지 못한 기회를 갖게 된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라며 기회만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국어 공부를 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수업을 마치면서 학생들은 한국어 공부를 좀 더 하게 되면 플러싱에 가보는 것이 1차 소원이고 그 다음으로는 한국을 방문해 직접 둘러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가면 공부를 잘할 때마다 조 교사가 상으로 줬던 한국산 껌을 맘껏 먹어보고 싶다는 이들 흑인학생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미국 최초의 블랙 코리안’이라며 깔깔댔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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